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말씀의 기적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3 조회수56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루카 4:38-40)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St. Cyril of Alexandria, 378-444) 주교 학자는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예수님께서 말씀과 생각만으로도 그런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 육화(肉化)의 개념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병자에게 안수(按手)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신체적인 접촉을 전혀 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대목에는 안수를 하셨다고 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1:31)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되어 있으며
마태오 복음(8:15)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치유를 하시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고 있으며 신체적인 접촉으로 치유하시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의 초기 수세기 동안에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is)의 영향으로 주님의 신성(神性)뿐 아니라
그분의 인간성에 대하여 구구한 해석이 설왕설래하였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참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그리스도 가현설(假顯說, Docetism)을 주장하였다. “Docetism”은
“..인 듯하다(to seem)”는 뜻의 그리스어 “dokeo”에서 나온 말이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취하신 육체는 진짜 육체가 아니라 환상이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육체가 수치와 같은 더러운 것을 갖고 있으므로 말씀이 육체에 의하여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하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속이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적입니다.”(2요한 1:7; 1요한 4:2-3 참조)로 기록되어 있으니 가현설은 분명한 이단(異端)이다.
 
 이와 반대로 치릴로 성인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만드신 거룩한 살[육화]에 말씀의 힘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했다.
바오로 사도는 몸은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1코린토 6:13),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성전입니다.”(1코린토 6:19)하고 말했다. 물론 이 몸의 성전은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고쳐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주님을 죄를 통하여 추방하려고 하는 성전이 되었다.
 
옛날의 성경해석자들은 복음에 언급된 병은 죄의 결과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예레니모 성인(St. Jerome)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에 대하여
우리 모두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는 화에게 길을 내어줄 때마다 열병을 앓습니다.
우리 모두 잘못과 악덕만큼 많은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과거의 설교자들은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방법으로 죄와 수치심을 많이 이용했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우리가 간절히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어할 때에도 주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나중에 고백해도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주님의 안수(按手)의 효과를 더 빨리 알았더라면 죄의 고백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미처 씻지 못한 죄를 갖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치유능력을 말해주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꼭 같은 죄를 계속하여 저질러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인이 회개하여 일어서기까지 기다리시지 않고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마르코 1:31)
 
우리는 죄로 우울해 있을 때일수록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려고 애써야 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