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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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3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2 조회수415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 22주간 수요일]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과 동일한 내용인 마르코 복음(1,38-43)을 묵상한 당시 기억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모습은 측은지심으로, 마귀들을 꾸짖는 모습은 시비지심으로, 마귀들이 물러나는 모습은 수오지심으로, 붙잡아도 떠나시는 모습은 사양지심과 공을 세웠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功遂身退의 모습으로 묵상하였던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안식일 날 예수님의 행적임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식일에는 병을 치료할 수 없으므로 병을 치료 받는 것도 율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시몬의 장모의 병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해 질 무렵에는 갖가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낮에는 뭐하고 왜 해 질 무렵에 앓는 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까? 그 이전에도 데리고 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안식일의 규정 때문에 치료 받을 사람들을 낮에는 데려 오지 못하고 해 질 무렵에 데려 온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하루는 지금 우리처럼 0시부터 24시를 기준한 것이 아니라 해 질 때부터 다음 날 해 질 때까지가 하루였습니다. 따라서 해가 지면 다음 날이 되므로 안식일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 해 질 무렵까지 기다린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도 부득이 한 사유로 주일 미사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에는 토요일 저녁의 특전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하루 계산법에 의하면 토요일 저녁에 봉헌하는 미사는 그 다음날이 되므로 특전미사를 주일미사로 대체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에서 갑자기 특전미사가 떠오르는 것은 특전미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의 장례미사는 토요일 오후 7시 명동성당에서 봉헌되었습니다. 장례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현관문을 나서자 집사람은 잘 다녀오라며 이어서 하는 말은 "특전미사에 참례하므로 내일 주일미사에는 가지 않겠네" 하였습니다. 주일이면 성당에 늘 함께 갔으므로 특전미사에 참례하고 오면 내일은 혼자 성당에 가야하므로 허전하다는 그런 뜻에서 하는 말 같았습니다. 저는 장례미사만 생각하고 특전미사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으므로, 또 국장으로 치루는 장례이므로 특전미사가 아닌 오로지 장례미사만 봉헌되는 줄 알았기에 특전미사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미사의 안내문도 분명히 장례미사로 되어 있고 전례해설에서도 특전미사는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전례가 끝나고 봉헌 금을 봉헌 받기 시작하여 순간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장례미사에 봉헌 금을 봉헌 받는지, 그것도 비신자인 내빈들이 많이 참석한 장례미사에서 말입니다. 장례미사에서 봉헌 금을 받지 않으면 성당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운영이 어려운 명동성당도 아닐진대. 알고 보니 특전미사와 겸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봉헌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미사에 참례하려 왔지 특전미사에 참례하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있지만 오늘 복음 주제와는 관련이 없으므로 더 이상 언급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신자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미사 때는 영정이 조화 속에 파묻혀 있었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의 영정에는 조화 한 송이도 없이 장례미사를 봉헌하는 무성의와 함께 앞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질 무렵에 사람을 데리고 오면 안식일 법은 어기지 않으므로 규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였을까요? 혹시나 예수님이 그 이전에 떠나실까 무척 걱정하였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료해주신 모습은 바리사이들이 시비를 걸어 왔을 때에, 그 때만 행하신 것으로 알았으나 오늘 복음에서도 안식일 법을 어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도 3년이란 공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아마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지엄한 국법 때문에, 바리사이들보다 더 지독한 바리사이들 때문에 1년의 공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을 사람들이 데리고 온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지금 이런 아픔을 가진 우리 이웃들이 우리 교회 장상께 찾아와 면담을 요청한다면 우리 교회 장상은 그들을 이렇게 맞이 할 수 있을까요? 당시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예수님을 만나 뵙고 아픔도 치유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의 실정은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요한 13,18)는 말이 무색하기만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법이 있어도 법은 치장에 불과 하듯이 복음 말씀도 교회의 치장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 말씀을 지금 우리가 이렇게 버젓이 묵상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예수님의 행적과 다른 모습들을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지, 교회마저 이러므로 우리 사회의 다른 모습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변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요즘은 자주 들곤 합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재개발로 성당이 철거 위기에 처하자 추기경님께서는 현장을 방문하여 성당 철거를 반대하는 기자 회견을 하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 가재울 성당을 방문하기 이전에 용산참사 현장을 먼저 찾아가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하루빨리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정부 당국에 촉구했어야 했습니다. 교회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교회를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 교회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부터 외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런 소식은 예수님이 알려주지 않아도 유대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이를 알려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루카 4,18)하신 이사야서 말씀을 봉독하며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기쁜 소식을 바라는 가장 절실한 곳이 어느 곳인지를 우리 교회 장상만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어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하셨으므로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으므로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집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서 왜 성당에는 나오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라에 불만이 많다고, 대통령을 욕한다고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냐? 세상의 불의를 지켜보는 것도 이제 지쳐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혹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입니다. 그나마 이런 하소연이라도 들어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늘 감사드리며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습니다.

벌써 마무리 할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마침기도로 그만 마무리해야 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율법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국법과 교회법을 어길망정 측은지심, 시비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만큼은 나날이 키워나가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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