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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큰 착각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28 조회수552 추천수7 반대(0) 신고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큰 착각 - 윤경재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0-35)

 

  어제 복음처럼 오늘 복음 내용도 여전히 ‘일한다’라는 주제로 전개됩니다. 예수님의 뜻과 군중이 서로 겉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요한 저자가 쓴 언어의 유희를 깊게 음미해보죠. 그리스어 본문이 도움이 됩니다. 영어로도 그 참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일’에서 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ergon’입니다. 또 ‘힘써 일하다’의 동사는 ‘ergazomai’입니다. 이 두 단어의 어원은 양식, 음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ergazomai’는 양식을 벌려고 애써 일한다는 뜻에서 나온 동사이고, ‘ergon’은 음식물을 소화함에서 일이란 뜻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6,27절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ergazomai).”라고 말씀하시니까 군중은 곧바로 어떤 일(ergon)을 하라는 뜻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곧이어 6,28절에서 “하느님의 일(ergon의 복수형 erga)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ergazomai)?”라고 똑같은 동사를 사용하여 질문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먹는 문제와 결부시킨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먹는 것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을 단절하시고자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라고 방향을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군중은 ‘하느님의 일들’이라고 복수형을 썼으나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일이라고 단수형을 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아드님을 보내신 일뿐이니 그분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군중은 여전히 먹는 문제에만 매달렸습니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군중은 아예 탈출기의 만나 이야기를 꺼냅니다. 모세의 기도로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자기들 조상이 애써 만나를 거두어 모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예수께 질문합니다. 숫제 노골적으로 6,30절에 “(당신은)무엇을 힘써하시겠습니까?(ti ergaze)”하고 묻습니다. 이 말에는 심한 오해와 모욕이 숨어 있습니다. 군중은 여전히 양식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어떤 노력을 지속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거두어 모은 행위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는 듯 한 말투입니다. 당신은 하느님도 모세도 아니니 우리 조상이 만나를 애써 거두어들였듯이 빵을 거두어들이는 행위를 계속 해보이라는 뜻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었고 자기들이 할 일을 예수께 미룬 셈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다 읽으셨으나 여전히 참으시고, 만나를 내려주신 분이 모세가 아니라고 정정하십니다. 그분은 내 아버지인 하느님이시며, 그것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며, 날이 지나면 썩어버리는 만나보다 썩지 않는 참된 빵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이라고 덧붙여주셨습니다.

  군중은 이 말씀을 듣자 아예 생명의 빵을 늘 달라고 마술적인 요구를 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뻗치는지 보여줍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기적에 따른 믿음은 늘 거듭해서 더 큰 기적을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과연 예수께서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고 증명하시고자 실제로 빵을 하늘에서 비 오듯 쏟아내려야 하시겠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의 일마저 자신들이 실천해야 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일들이라고 복수형을 썼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이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뿐입니다. 인간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느님께만 달렸습니다. 이런 오해는 뿌리가 깊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들은 어쩌면 하느님의 일축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일만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칭호를 받을 것입니다.

  인간이 할 일은 오직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분을 믿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 자체도 하느님께서 맡아 하시는 것이지 인간의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예수님과의 만남 안에서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서 그 사람 안에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사람은 단지 이 가능성을 붙잡아야 할 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믿음마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찾는 공로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인간의 일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오로지 감사할 뿐입니다. 차마 하지 못함(不忍人之心)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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