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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5 조회수1,106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2월 25일 재의 수요일 나해
 
 
 
 
When you give alms,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is doing.
(Mt.6.3)
 
 
제1독서 요엘 2,12-18
제2독서 2코린 5,20─6,2
복음 마태오 6,1-6.16-18
 
 
자신의 선행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욕망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회사 사장 비서가 이웃돕기 성금을 가지고 서울 시내 모 일간 신문사를 찾아 갔습니다.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한 그 비서는 “이 성금을 내신 우리 사장님 사진을 신문에 실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지요. 이에 신문사에서는 신문에 얼굴을 낼 수 있는 성금의 한도액을 말해주며 이 액수가 되지 않으면 사진을 실어 주기 어렵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비서는 “그러면 그 성금을 돌려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다시 되찾아 갔다고 하네요.

아무리 명예가 귀중하고 본능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기탁한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다시 찾아갔다는 이 사실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이 정말로 기분 좋을까요? 보이기 위한 행동은 결코 나를 편하게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11년 동안이나 숨기고 살았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11년간 매일 아침 읽지도 못하는 신문을 펼쳐 들고 읽는 시늉을 했답니다. 남의 눈에 그럴 듯해 보이고자 했던 그 사람의 눈속임은 과연 자신에게 어떤 만족감을 줄 수 있었을까요?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지도 모르는 신문을 펼쳐들고서 있는 시간은 그에게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 모습이 슬프게도 우리 각자 안에도 있습니다.

겉치레 말, 겉치레 선행, 겉치레 기도, 겉치레 웃음, 그 밖의 많은 겉치레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신앙생활 안에 없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선적인 신앙생활이 정말로 나를 기쁘게 했었는지도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위선을 정말로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신앙심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증인의 상징인 ‘왼손’까지도 자신이 행한 행위를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대신 하느님께 더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자선, 기도, 단식은 유다인들이 종교적인 신심을 발휘하는 선행으로서 예부터 지켜오던 의무였습니다. 이는 율법을 넘어선 한 단계 위의 선행이기에, 이러한 선행을 하면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잘못 지킨데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마지막 심판 때 이 공로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지요. 즉, 나중에 받는 보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는 열심히 한다는 인정이라는 보상을 먼저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부터 우리들은 회개와 속죄를 행하는 사순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순시기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께 인정받는 은총의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의 인격이나 인품이 아닌 것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사실 그대로 자신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하며, 즐겁다(리챠드 세실)




위선자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가 바위 틈새로 삐쭉 나와 있는 호랑이 꼬리를 발견했다. 그는 집으로 줄행랑을 치고 싶었으나 결국 그 꼬리를 움켜쥐고 말았다. 일단 호랑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겠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바위틈을 사이에 두고 호랑이와 농부사이엔 필사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런 상태가 얼마간 계속 되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는 중이 있었다. 농부로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농부는 중을 향하여 소리쳤다.

“스님, 저기 있는 저 낫으로 이 호랑이를 찍어 죽여주십시오. 제가 이 꼬리를 붙들고 있는 한 스님 에게는 절대로 위험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중은 근엄하고 온화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농부여, 불교의 계율에는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이 있소이다. 당신의 처지가 딱하기는 하나 내 어찌 평생을 지켜온 불살생의 계율을 범할 수 있으리오.”하고는 아미타불을 연발한 뒤 자기 길을 갈려고 했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농부는 이제 지칠 대로 지쳐 하는 수 없이 쥐고 있던 꼬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농부는 중을 향하여 말했다.

“스님 저는 지금 너무 지쳐서 이 꼬리를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호랑이는 저나 스님중 하나를 잡아먹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보시다시피 뼈와 가죽만 남은 저보다는 살이 퉁퉁한 스님을 잡아먹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님이 정말 계율 때문에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면 제가 잠깐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스님께서 이 호랑이 꼬리를 잠시 동안만 함께 잡아주십시오.”

이에 한참을 생각하던 중은 ‘그래 계율에 호랑이 꼬리를 잡지 말라는 것은 없으니 내 잠시 함께 잡아주지.’하면서 크나큰 자비를 베푸는 양 한껏 뻐기며 호랑이 꼬리를 잡았다. 농부는 중이 호랑이 꼬리를 확실하게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잽싸게 꼬리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이에 당황한 중은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여보게 제방 부탁이니 저기 저 낫으로 이 호랑이를 찍어 죽여주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농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스님 저희 집안도 사실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집안인데 이제 와서 불살생의 계율을 어길 수 없습니다. 혹시 이곳에 살생을 예사로 여기는 망나니가 지나가거든 그때 부탁을 해 보시지요.”하고는 농부는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Take care not to perform righteous deeds
in order that people may see them;
otherwise, you will have no recompense from your heavenly Father.
(Mt.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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