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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건 후 피로증후군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4 조회수609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건 후 피로증후군 - 윤경재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 9,30-37)

 

 제자들은 예수님과 생활하던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을 체험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스승님은 메시아라고 고백했을 때 확실하게 긍정하셨다고 받아들였고, 산 위에서 예수님께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것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이런 사실에 고무되었습니다.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수난을 이야기하시니 제자들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 흥분의 잔향을 더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잔향효과’와 ‘사건 후 피로’라고 부릅니다. 이때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에 따라 해석하고 드러내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 원인은 사건을 내재화하는 과정을 밟아 한 단계 성숙하여야 하는데 외현화하려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난 주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하느님 대전에 들어가시며 보여주신 일련의 놀라운 사건을 목도하며 어떤 흥분상태를 체험하였습니다. 교우들 각자에 새겨진 감동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 선종 때와 또 달랐습니다.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종파와 남녀노소 이해득실을 떠나 전 국민과 언론이 한데 집중하며 칭송하는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욱 피부에 와 닿았고 좀 더 극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변모 사건을 체험하고 나서 제자들이 겪었던 감정이 우리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칫하면 제자들처럼 ‘사건 후 피로증후군’에 걸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특히 추기경님의 뜻과 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려 들고 그것이 자신을 내세우는 계기가 될까 염려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섬김의 자세는 우리에게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사시고자 노력했던 모습도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어쩌면 교회 바깥에서 김 추기경님의 삶을 폄훼하려드는 시도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시도에 우리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대응하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그들의 시도에 동조하는 듯한 자세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빌미를 주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내부에서 일치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곧바로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체험을 내재화하여 각자 신앙을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각자가 꼴찌가 되고 종이 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듯 하지나 않은지 먼저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은 누가 큰 사람인지 다툰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손가락질 하며 그 틈새를 타고 비난의 목소리를 키울 것입니다. 

 돌아가신 민성기 요셉 신부님께서 ‘하늘로부터 키 재기’라는 묵상글을 통해 지상에서 가장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가장 키가 큰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머리를 쳐들면 쳐들수록 하늘로부터는 키가 작아집니다. 또 도토리 키 재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시며 남기고 가신 놀라운 은총의 기적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그분의 뜻을 진정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실천하려는 결심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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