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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일 야곱의 우물- 마태 25,31-33.41-46 묵상/ 주님, 저희가 언제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02 조회수451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님, 저희가 언제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 25,31-­33.41-­46)
 
 
 
 
◆우리는 무언가 변명할 때 “내가 언제?”라는 말을 곧잘 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을 때, 특히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또한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선의로 했던 행위에도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전자는 따지는 듯한 반응이고, 후자는 언제 내가 그런 일을 했느냐는 겸양의 태도에서 나온 반응이다.
 
최후의 심판은 결국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장 작은 이웃을 사랑했는가에 대한 심판이다. 그 사람은 길거리의 걸인이나 장애자를 뜻할 수 있지만 아내나 남편, 수도 공동체의 가장 연로한 이들, 자녀, 남 앞에 내세우기가 부끄러운 형제 또는 나와 믿음 생활을 달리하는 타종교인일 수 있다.
그 사랑은 바로 지금 여기, 현실과 역사 안에서 가장 가난한 이에 대한 애덕의 실천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뜻한 눈빛, 격려하는 말 한마디, 함께 있어준 시간, 기억해 주고 기도해 주는 사랑의 마음도 훌륭한 애덕 실천이 될 것이다.
오늘도 최후 심판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은 계속된다.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보이는 반응에도 차이가 있다. “제가 언제?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요?” 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위에 가장 가난한 이들을 주님으로 알아보고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제가 언제 당신께 해드렸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하늘나라를 사는 행복한 사람이다.
배미애 수녀(착한목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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