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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은이는 누구인가?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02 조회수558 추천수11 반대(0) 신고
 
 

작은이는 누구인가? - 윤경재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4-40)

 

  예수님께서 ‘내 형제들인 작은이’들에게 해 준 것을 칭찬하셨는데 과연 작은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묵상해 봅니다.

  어제 여러 가지로 일이 잘 안 풀려 힘들어하는 아들 녀석에게 한 소리 하였습니다. 제 말을 듣던 아들의 안색이 잠시 어두워지더군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한마디 하는데 순간 아이쿠 잘못했구나 하는 심정이 들었습니다. 공연히 힘들어하는 애를 보듬지는 못하고 부담만 주었구나하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작은이인지, 누가 스스로 작은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릅니다. 자칫 노숙자, 병든 이, 가난한 사람, 실직자, 불구자 등을 떠올리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제 아들과 이야기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작은이란 나와 비교해서 작다고 생각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나와 비교하면서 스스로 작다고 느끼는 사람이 바로 작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교하며 살게 됩니다. 그것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두 사람이 마주치면 한쪽은 우월해지고 한쪽은 기운다고 생각합니다. 또 내가 누구를 무시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며 용서하지 못할 때 나는 그를 작은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왜 이렇지 못할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를 나와 비교해서 작은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외시키는 순간 그는 가장 작은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러저러하게 베풀었으니 이제 그만큼 나에게 대접하고 받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를 작은이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유대의 위대한 랍비 메모니데스는 자비나 자선에는 여덟 가지 차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덟 번째 차원은 자선을 베풀 때 남는 것을 주며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증인을 세우면서까지 감사의 인사를 챙기는 차원이고, 일곱 번째는 똑같이 하면서 감사의 인사는 받지 않는 것, 여섯 번째는 도움을 청하기 전에 기꺼이 주는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는 열린 마음으로 주되 남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바로 자신에게도 필요한 코트를 내어주는 것, 세 번째는 자신의 코트를 주지만 누가 주었는지 모르게 주되 자신은 아는 것, 두 번째는 누가 받았는지도 모르지만 자선을 베푼 사실은 아는 것, 가장 으뜸인 첫 번째는 자신의 것을 주되 아무도 모르고 자신도 까맣게 잊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비록 여덟 번째 차원의 자선이라도 베풀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범하기 쉬운 죄가 바로 우리 이웃을 작은이로 만든 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웃은 예수님과 한 형제이었는데 나는 무심코 나의 하인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무리 자선을 베풀었더라도 예수님과 한 형제인 우리 이웃을 작은이로 만든 죄 만큼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이웃은 먼데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이 이웃일 텐데 저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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