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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눈 뜬 장님 벗어나기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8 조회수733 추천수12 반대(0) 신고

 

 

 

연중 6주간 수요일 - 눈 뜬 장님 벗어나기

 

가끔 손님이 오면 저는 주로 바티칸을 가이드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바티칸 바로 옆이고 몇 번 하다 보니 바티칸 전문 가이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겨울에도 몇 번 손님들이 와서 바티칸 박물관과 성당을 순례시켜 드렸습니다. 성탄 때면 바티칸 광장에 커다란 구유와 수십 미터에 달하는 트리를 만들어놓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구유만 보고 그 옆에 서 있는 트리의 의미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하고, 혹 조금 열심한 신자는 그 나무가 ‘생명나무’를 상징한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러나 그 생명나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실 때 따먹지 말도록 한 열매는 선악과였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자 또 따먹어서는 안 되는 나무가 하나 더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생명나무를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으로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세례로 인해 죄가 없어진 상태라면 그 생명나무를 먹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떤 분은 생명나무가 십자나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은 틀립니다. 왜냐하면 십자나무를 아무리 먹는다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씻겨진 사람이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너희들이 내 몸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생명나무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불과 몇 년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오랜 세월 신학을 배웠어도 성탄 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명나무가 무엇인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눈 뜬 장님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탄트리가 예수님으로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해줍니다. 사람들이 그의 눈에 손을 얹어 치유해달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도시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더니 눈에 침을 발라주시고 머리에 두 손을 얹어 안수를 해 주십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냐고 했더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얹었더니 완전히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벳사이다로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점차적인 치유를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치유는 완전히 다른 치유입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눈을 띄워 주시는 것이고 그 다음이 사람들이 원했던 대로 육체의 눈을 띄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절대 불완전하거나 점차적일 수 없습니다.

침을 발라주는 것이나 안수를 해 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시는 상징적인 제스처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넣어주시려는 것은 그것이 물로 상징되든 안수로 상징되든, 은총, 즉 성령님입니다.

어쨌거나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영적인 눈을 성령강림으로 먼저 띄어 주시니 그 사람은 사람을 나무로 보게 됩니다. 구약에서의 상징 중에서 ‘나무’는 ‘사람, 인성, 육체’를 상징합니다. 만약 나무가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생명나무가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영적인 눈을 한 순간에 띄어 주시고 다음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그의 눈에 손을 얹어 육체의 눈을 치유해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벳사이다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벳사이다는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죄로 가득차고 완고한 세 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죄의 도시로 들어가 죄를 지으면 찾았던 영적인 눈을 다시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않으면 정말 우리는 눈 뜬 장님들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모든 것을 새로 보게 되었듯이 우리도 성령의 임하심으로 영적인 눈을 떠야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요구하는 기적이 바로 내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고 성경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목표는 ‘성령 충만’임을 잊지 말고 매일매일 새로운 성령강림을 맞는 삶을 살아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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