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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을 사랑이 되게 하시다 [순종의지] 겨자씨, 누룩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8 조회수490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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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을 하느님의 나라에 비유하십니다. 자라고 부풀어서 사람의 큰 쉼처가 되고 사람의 큰 식량이 됩니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큰 그늘을 제공해 주는 쉼터의 나무로 자라나고, 누룩있는 빵을 기다리면 부풀어서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결과를 가져다가 줍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믿음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믿음과 기다리는 희망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주 깨어있슴과 기다림 (준비함)을 명령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맞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가 어떠한지 정확하게 설정하지 못하는 한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나 인간의 의문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뿐만아니라 어떻게 성령으로 예수님께서 잉태되시고 육신의 몸이 어떻게 부활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인간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믿음과 희망 뿐입니다.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모든 신비 전체를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다 알지 못하면서도 편협적으로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는 모순을 가집니다. 성령과 부활을 인간적인 방식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우주의 신비에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성령과 부활의 측면까지도 이미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우주에는 육(물)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까지도 포함한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내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우주에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영적인 측면도 '온 우주'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인간의 나라에서는 사람의 자녀들이 살 수 있고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의 한 존재에 불과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실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으며 육신의 몸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배제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무한한 우주에서 하나의 점과 같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다고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 말씀에 비추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 표현으로 '사랑의 나라'인 것입니다. (근거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하느님의 자녀들은 사랑의 자녀들입니다.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도 말하였듯이 인간은 '사랑의 모상'입니다.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바로 사랑의 모상이다는 설명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랑으로 하느님에게로 일치하며 하느님의 자녀 곧 사랑의 자녀가 되어지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사랑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간은, 사랑의 모상만이 자격을 갖춘다 할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께서는 그래서 인간을 '사랑이 되도록' 하셨습니다.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의 탄생도 바로 이 사랑의 탄생이셨다고 예전부터 말하여 왔습니다.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땅에서 사랑의 탄생과 사랑의 죽음 그리고 사랑의 부활을 보여주십니다. 

사랑으로 탄생하신 사랑은 사랑의 모상인 인간의 땅에서 사랑이 미움을 받고 사랑이 죽임을 당하지만 결국 사랑이 부활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믿음과 희망은 사랑으로 하느님께로 향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며 이는 깨어있슴입니다.

자유의지에 따라 아담의 인간은 불순종로 첫째 죽음(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예수님의 인간은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에게서 드러나신 순종의지로 둘째 죽음(영적인 멸망)을 피하게 됩니다.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순종의 차이입니다. 첫 창조의 창세기 때처럼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새 창조의 예수님에 의해서 순종의지로 바뀌어집니다. 자유의지에서 순종의지로 변화되어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리하여 믿음에서는 '믿음의 순종'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고, 순종은 이 말씀을 믿는 바(믿음)을 행동으로 실행한다는 의지 곧 순종의지를 나타냅니다.위로부터 다시 새로 나는 하늘의 사람들은 사랑을 실행하여, 사랑의 나라에 적합한 사랑이 됩니다. 태초부터 사랑의 모상이었던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에게서 드러나셨듯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모습을 말합니다.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사랑의 모상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차원이다는 것을 잊어버린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온 사랑(1요한 4, 7 참조)이신 예수님의 사랑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이 사랑은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으로 부활하게 하십니다. 

이같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이미 인간의 땅에서도 맛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죄,악스런 배경)을 물리치면 진정한 구마로 사랑의 나라를 맛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의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순종의지가 없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고 불릴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가짜 제자들을 의미)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 4 참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 9 참조) “너희가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8, 31, 32 참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또 예수님의 사랑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안에 머물지 않는 제자는 가짜 제자들이다 할 것입니다. 사랑의 나라는 사랑의 사람들에 의해서 인간의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하겠습니다.죄,악을 서로 공유하는 제자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마땅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의 나라는 사랑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공동체에 있습니다.버려진 이들의 고통과 결합되는 그리스도적 고통(사랑 때문에 겪는 수난)에 일치하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또한 간절하게 희망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화요일, 제1독서 참조> 그러나 가짜 제자들은 이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없는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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