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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자렛 예수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1 조회수778 추천수1 반대(0) 신고
나자렛 예수 | 영상시
2005.07.01


 


믿음 속에 만남과 사랑



    나자렛 예수 - 구상 [, 1919.9.16~2004.5.11]

     

    나자렛 예수!
    당신은 과연 어떤 분인가?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기구망측한 운명의 소유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상놈들과 창녀들과 부역자들과
    원수로 여기는 딴 고장치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기를 즐긴 당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하다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고
    누명을 쓰는 사람들에게
    `행복된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하느님 나라는 바로 당신들 차지'라고
    엄청난 소리를 한 당신,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문둥이를 말짱히 낫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도

    스스로의 말대로
    온 세상의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쫓기다가
    마침내 반역자란 누명을 쓰고
    볼꼴 없이 죽어간 철저한 실패자,

     

    내가 탯줄에서 떨어지자 맺어져
    나의 삶의 바탕이 되고, 길이 되고
    때로는 멀리하고 싶고 귀찮게 여겨지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까지를 안겨주고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생판 낯설어 보이는 당신,

     

    당신의 참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당신은 사상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도덕가가 아니었다.
    당신은 현세의 경륜가가 아니었다.
    아니 당신은 종교의 창시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치 않았다.
    당신은 어떤 규범을 가르치치 않았다.
    당신은 어떤 사회 혁신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당신은 어떤 해탈을 가르치치도 않았다.

    한편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공적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어느 누구의
    과거 죄악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고
    당신은 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뒤엎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고통받는 인류의 해방을 선포하고

     

    다만,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시요,

    그지없는 사랑 그 자체이시니
    우리는 어린애처럼 그 품에 들어서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서로를 용서하며
    우리도 아버지가 하시듯 다함없이 사랑할 때

    우리의 삶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고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그 사랑의 진실을 목숨 바쳐 실천하고
    그 사랑의 불멸을 부활로써 증거하였다.



나자렛 예수 - 구상
  
  
침묵의 샘(피정의 집) *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침묵의 샘 : 매일 11:00-15:00 피정(月 휴정)
       ♪  http://cafe.daum.net/99songsr  


 
 작성 . s.사도요한

 

노 시인의 신앙고백 구상 [, 1919.9.16~2004.5.11]

 

 

답답하다. 이런 때 필자는 한 노 시인(老 詩人)의 신앙고백에서 위로를 발견한다. 몇 달 전 필자는 구상 시인을 병문안 갔다가 귀한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생활성서」(2001/5)에 게재된 원고를 손수 복사해 곱게 준비해두신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라는 제목의 신앙 고백문이었다. 그것은 『종교다원주의의 시대에 내가 왜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 왜 가톨릭인으로 남아있어야 하는가』를 대변해주고도 남는 것이었다. 고백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내가 왜 크리스천인가?」라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이올시다…그래서 그리스도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각(知覺)이 들기 이전, 크리스마스 밤에 산타클로스가 머리맡에다 선물을 가져온다는 설화를 그대로 믿었을 때 말고는, 철이 나면서부터는 가톨릭신자이기 때문에 평안 속에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정신적인 고뇌 속에 있었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신적인 고뇌」라는 말마디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이는 신앙이 요구하는 삶을 그대로 살지 못해서, 달리말해 「신앙과 삶의 괴리」 때문에 겪는 갈등을 뜻하지 않는다. 노시인의 말을 빌면 이는 오히려 『세속적인 고민이 아니라 구경(究竟)적인 고민』 곧 구도(求道)적인 고민이었다.

 

『그래서 저는 동경으로 유학 가서도 종교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불교의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학 커리큘럼 중 절반 이상이 불교경전에 대한 주석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고민은 신의 실재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와 아울러 신의 섭리라든가, 교리 자체 등에 대한 많은 회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평안보다는 고뇌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난 저주받은 영혼이 아닌가」하며 극단적인 생각으로까지 치닫곤 했습니다』

 

만리장성을 쌓을 만큼의 구도여정을 짧은 문장에 담고 있기 때문에 단어들에 배어있는 사연이랄까 속내랄까를 더듬으며 내려가는 것이 괜찮을 성 싶다. 시인께서는 한 때 사제직을 꿈꾸며 신학도가 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길을 바꾸어 일본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를 줄곧 고민에 빠트린 것은 불교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사이의 차이였다. 하여 시인께서는 좌정(坐定)하여 미소 짓고 있는 부처의 「평안」과 십자가에 매달려 괴로워하고 있는 예수의 「고뇌」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저주받은 영혼」으로 생각할 정도로 치열하게 갈등하셨다.

그러던 중 시인은 「폴 클로델」 시인을 만나면서 그리스도교의 정수(精髓)에 맛들이게 된다.

 

『그런데 유학 중이던 당시 제가 크게 위로와 위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20세기 노벨상 수상자의 한분인 폴 클로델이라는 시인의 글을 통해서입니다. 그분은 열아홉 살엔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신비 체험을 했는데 어느 정도 강렬한 체험인가 하면 자기는 성서에 씌어진 것보다도 더 명백히 하느님을 체험했다고 증언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만일 그대들이 신을 참되게 알았을 때, 신은 그대들에게 동요와 불안을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평안」이 아니라 「동요」와 「불안」을 주는 신(神), 그분이 시인께서 폴 클로델을 통하여 알게 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자 가톨릭의 하느님이었다.

 

 
폴 클로델
 
     
 

폴 클로델Paul Claudel(1868-1955)은 일생을 거쳐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문학사에 남을 많은 시, 연극, 평론 등을 써낸 드문 외교관 - 작가이다. 그가 얻은 작가로서의 큰 영광은 대부분 그의 연극 작품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강렬하고 종교적인 시들도 우주적인 깊은 뜻과 신비로운 사상, 독창적인 시법으로 당대에도 시단의 거성이었으며 현대의 저명한 몇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클로델은 샹파뉴 지방의 한 지방 공무원의 경건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사했으며 유명한 루이 르 그랑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이때부터 이미 글을 쓰기 시작했다. 파리 대학에서는 법학 공부를, 정치학 대학에서는 정치학 공부를 했다. 1890년, 그가 22세 때 프랑스 외무성 외교관 채용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이 후 약 40년간 그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남미 등 거의 전세계에 걸쳐 영사, 공사, 대사로 일하며 외교적으로도 활약한 바 적지 않았으나 도리어 문학계에 있어서 그는 더욱 찬란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떨쳤다.

 

그의 작가로서의 창작 활동도 연극 작품과 시 작품으로 나뉘는데 그는 이미 1890년 이전 외교관이 되기 전부터 영근 <황금의 머리>, <도시> 등을 지었고, 외교관으로 유럽, 남미 제국, 일본, 워싱턴에 근무하는 동안 그의 주요 극 작품을 완성했다. <인질>, <마리아에게 주어진 계시>, <굳은 빵>, 그리고 그의 대표작 <사틴 천의 신발> 등이 출판되고 상연됨으로써 그는 위대한 사상가-작가로 추앙받았다.

 

시인으로서 클로델의 창작 활동은 주로그가 극동 지방에 체재한 1895년부터 1909년에 이르는 14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는 이동안 중국의 상해, 복건, 북경, 천진 등과 일본에 영사로 있었는데 당시 이국 만리 타향에서 고독과 신앙의 명상 가운데 많은 중요한 시를 썼다. ><5대 송가>, '두 편의 이름 시', '3성 칸타타' 등이다. 이 외에 재1차 세계 대전 중에 쓴 '전쟁 시집'과 '성도의 나뭇잎' 등이 있다.

 

1936년 주 벨기에 대사를 끝으로 하여 40여 년의 외교관 생활을 은퇴한 그는 만년에는 시골에 있는 그의 소유지에서 주로 성경의 연구, 해석과 주석에 정력을 쏟았다. 그러나 이 저작들은 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서정적이며 신비적인 것이었다. <현존과 예언>, <묵시록> 등이 있다.

 

1946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피선되었고, 1952년에는 그의 <사틴 천의 신발>의 100회 공연이 있었다.

1955년에는 파리의 국립 극장에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늙은 시인-극작가에게 최후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공화국 대통력 임석하게 <마리아에게 주어진 계시>의 특별 공연이 있었다.

그 후 얼마 안되어 클로델은 86세를 일기로 영광과 추앙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시인으로서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1886년 그가 20세 때 랭보를 발견한 일이며 다른 하나는 같은 해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가 우연히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경험한 신비로운 충격이었다.

 

19세기 부한 사상계에서는 물질주의와 기계주의가, 문학계에서는 자연주의가 지배하던 때에 소년기의 신앙을 잃은 클로델은 허무적이며 부도덕하고 생의 목적을 찾지 못했다.

 

이때에 그는 랭보의 <일뤼미나시옹>과 <지옥의 계절>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진리의 빛을 보았고 물질주의의 수용소에서 벗어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분명하고 거의 물리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또 한 가지는 이 해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는 성탄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노트르담 성당에 간 일이다. 믿음에서가 아니라 일종의 호기심에서였다.

 

교회 내진에 다른 신도들과 함께 서 있었고 합창단 어린이들이 성모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그의 가슴은 무엇에 접촉되고 자기가 신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전 존재가 공중으로 실려 올라감을 경험했고 이 순간 그는 믿음을 얻었다.

이 믿음은 확실하고 강력하여 그 후 일생 동안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마치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의 회심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클로델의 중심 사상은 현존한 사물 가운데 초자연적인 것을 보는 것이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합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혼돈과 우연의 연속 뿐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받쳐질 때 비로소 현실성과 참뜻을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는 신으로서 신 없는 세계는 불완전할 뿐 아니라 그 때 세계는 무산될 것이며 무의미하며 허무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에게 시는 은총의 행위이며 신에 대한 기도, 우주를 창조한 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끝없는 기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전통적인 시형이나 운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리듬, 자연과 정신의 맥박과 호흡을 쫓아 세계와 인간과 신의 리듬을 기록하는 소위 클로델 시절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 시와 믿음은 완전히 일치되어 있으므로 그는 "시인은 신의 모방자이며 시는 창조의 모방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시는 시형의 단조로움, 자기 도취, 판단의 조잡하고 난폭함, 저속한 취미 등 많은 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우주적인 통찰력, 강력하고 진실된 독창성, 지성이나 기교를 넘어선 천재적인 서정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많은 사람은 그를 프랑스 낭만파의 거성 빅토르 위고와 견주고 있다.

 
   
  폴 클로델의 시를 참조하십시오.  
     

불시 감상

 
폴 클로델의 시
 
     
 

닫혀진 집

 

땅은 이제 몇 줌의 모래에 불과하며 당신이 지으신 하늘만이 항상 가림 없이 눈에 보이는 이 땅 끝으로 저를 인도하신 하느님,

그들의 말도 모르는 제가, 이 미개한 백성들 가운데서

저의 처나 자식과 똑같은 모든 사람들, 저의 형제들을 잊게 하지 마옵소서.

 

천문학자가 뛰는 가슴으로, 마치 교태의 여인이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듯, 감동된 호기심으로 화성의 모습을 살피며 측성기 앞에서 밤을 새는데, 저에게는 이 가장 유명한 별보다도 당신의 형상 따라 지으신 가장 작은 당신의 아들이 얼마나 더 소중한 것입니까?

 

자비는 너무 많이 가진 것을 무심히 내주는 일이 아니라 학문과 같은 정열입니다.

 

자비는 학문과 같이 당신이 지으신 이 가슴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찾는 발견입니다.

 

당신의 모든 성신이 저에게 필요하다면 저의 모든 형제들은 얼마나 더욱 필요할 것입니까?

 

당신은 저에게 먹여 살려야 할 빈자도, 고쳐주어야 할 병자도 주지 않았습니다.

 

나누어야 할 빵을 주시지 않았고 저에게는 빵과 물보다도 더욱 온전하게 받아들여진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혼 가운데 용해될 영혼을. 제가 이 말씀을 저의 맘 속에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열매 맺게 하소서.

 

땅이 있는 곳에는 어디어나(길 가운데 떨어진 이삭까지) 계속 자라게 하는 수확과 같이.

 

그리고 맺은 열매로부터 명예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가능한 열매를 내주는 성스러운 무지 속의 나무와 같이.

 

그 나무의 열매를 따는 것이 사람들이건 하늘의 새이건 상관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가능한 것을 줍니다. 어떤 사람은 빵을, 다른 사람은 빵의 씨앗을 줍니다.

 
     
 

La maison fermee

Mon Dieu qui m'avez conduit a cette extremite du monde ou la terre n'est plus qu'in peu de sable et ou le ciel que vous avez fait n'est jamais derobe a mes yeux.

Ne permettez point que parmi ce peuple barbare dont je n'entends point la langue,

Je perde memoire de mes freres qui sont tous les hommes, pareils a ma femme et a mon enfant.

Si l'astronome, le coeur battant, passe des nuits a l'equatorial,

Epiant avec la meme poignante curiosite le visage de Mars qu'une coquette qui etudie son miroir,

Combien plus ne doit pas etre pour moi que la plus fameuse etoile

Votre enfant le plus humble que vous fites a votre image?

Le misericorde n'est pas un don mol de la chose qu'on a trop, elle est une passion comme la science,

Elle est une decouverte comme la science de votre visage au fond de ce coeur que vous avez fait.

Si tous vos astres me sont necessaires, combien davantage tous mes freres?

Vous ne m'avez pas donne de pauvre a nourrir, ni de malade a panser,

Ni de pain a rompre, mais la parole qui est recue plus completement que le pain et l'eau, et l'ame soluble dans l'ame.

Faites que je la produise de la meilleure substance de mon coeur comme uns moisson qui va poussant de toutes parts ou il y a de la terre(des epis jusqu'au millieu de la route),

Et comme l'arbre dans une sainte ignorance qui lui-meme n'attend pas gloire ou gain de ses fruits mais qui donne ce qu'il peut.

Et que ce soient les hommes qui le depouillent ou les oiseaux du ciel, cela est bien.

Et chacun donne ce qu'il peut ; l'un le pain, et l'autre la semance du pain.

 
   
  폴 클로델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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