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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독서 와 복음묵상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13 조회수1,251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49,29-31.33 ;52,15-26ㄱ)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50,19-20)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이 문장에서 '내가'(아니' ;ani)라는 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어 요셉 자신의 의지를 강조한다.

'~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로 번역된 '하타하트'(hathahath; in the place of) '대신 하리이까?' 라는 뜻이다. '하타하트'의 기본형 '타하트'(thahath)다른 사람의 지위를 계승할 때도 사용된다.

 

따라서 본문은 '심판은 하느님께 속한 것인데, 어찌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서 대신 형들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라는 반어적인 뜻으로, 이것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이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참된 신앙이 드러난다.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로 번역된 '하샤바흐 레토바'(hashabah letoba)에서 '레토바'라는 단어의 후미에 '아'(a)가 붙으면 어떤 '방향'이나, '장소'를 향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레토바'는 '선으로', '선한 방향으로'의 의미이다.

또한 '바꾸셨습니다'로 번역된 '하샤바흐'의 기본형 '하샤브'(hashab)'만들다', '고안하다'(탈출28,6)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요셉의 형들은 악을 도모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그대로 두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어서 가장 선한 결과를 주셨다는 뜻이다.

이것을 보면, 믿는 이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라도 꿋꿋이 신앙을 지켜야 한다.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다니3,17-1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8,28)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로 번역된 '레마안 아소 ~ 레하하요트 암 라브' (lemaan aso ~ lehahayoth am rab)에서 '큰 백성'에 해당하는 '암 라브''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며, '살리'에 해당하는 '레하하요트'는 전치사와 부정사 연계형이 결합된 전치사구로서 '살게 하는 것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신앙적 구원이 아니라 기근에서 살아남아 육체적 모습을 이어간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시려는'에 해당하는 '레마안''~할 목적으로'(2열왕8,19)라는 뜻이 있는 '마안'(maan)여기에 목적을 나타내는 전치사 '레'(le)가 덧붙여져 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직역하면 '구원하실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했지만(창세37,12-28),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요셉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실 목적을 가지고 계셨음을 회고하는 것으로서 요셉의 성숙한 신앙 고백을 드러내고 있다.

요셉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함께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철저히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0,24~33)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28~30)

 

마태오 복음 10장 28절사탄과 하느님의 능력의 차이분명하게 비교하여 제시해 주고 있다.

 

사탄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탄의 한계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지도 파멸시키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욥기 1장에 나오는 데로, 인간의 육신도 하느님의 허락없이는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 사탄의 한계이다.

 

사탄이 주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육신' ('소마'; soma; body)에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은 '영혼'('프쉬케'; psche; soul)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10장 28절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참 두려움의 대상이 사탄이 아니고 바로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구절이 박해와 그로 인한 고통을 다루는 문맥에서 나오기 때문에 복음 전파자들이 사탄의 사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박해를 받을지라도, 적대자들이 주는 고통 그들의 육신에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이란 표현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에 해당하는 '아폴레사이'(apolesai; to destroy; can destroy)의 원형 '아폴뤼미'(apollymi) '없어지다', '사라지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사물에 대해 사용될 경우는 '없어지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인격적 존재에 대해 사용될 경우는 존재 자체 보다는 존재의 가치를 없앤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따라서 이 구절은 복음 전파자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잃어도 그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므로,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사실을 암시하고, 동시에 사탄을 두려워하며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분께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는 평안히 살지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10장 29절에 나오는 참새는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흔하고 값이 나가지 않는 날짐승이다.

 

이 구절에서 참새 두 마리의 값으로 제시된 '한 닢'에 해당하는 '한 앗사리온' (assarion; a penny)은 당시 가장 가난한 계층이었던  노동자의 하루 품삯해당되는 한 데나리온(denarion)의 16분의 1에 불과한 돈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하찮은 날짐승조차도 당신 섭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돌보시는 세심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10장 30절'머리카락'에 해당하는 '하이 트리케스 테스 케팔레스'(hai triches tes kephales; the hairs of your head)'앞절의 날짐승중의 참새처럼 사람의 신체의 일부분 중에서 '가장 흔하고 값어치 없는 것'인데, 이것을 다 '세어 두셨다'고 한다.

 

여기서 '세어 두셨다'에 해당하는 '에리트메메나이 에이신'(erithmemenai eisin; are nembered) '에리트 메메나이'(erithmemenai; nembered)분사 완료 수동형으로서 이미 세신 행동이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이 구절은 무수히 많으며, 날마다 빠지고 새로 생겨 수효가 변하는 우리의 머리카락을 다 세실 만큼 전능하신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당신이 지으신 인간을 세심하게 보살피며 사랑하신다는 뜻을 나타낸다.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전하다가, 제자들이 비록 육신이 찢기고 상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배후에 계시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두려움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조건에서 올 수 있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자상하고 세심하게 보살피시는 주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서 옴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그 한계와 영역 안에서 설치는 사탄과 그 하수인이 자아내는 헛된 두려움에 속아 넘어지지 말고, 삶의 어떤 고난속에서도 끝까지 주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신뢰하며, 인간 전존재의 생사대권을 가지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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