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월 1일 야곱의 우물- 마르 1,21ㄴ-28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1 조회수498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마르 1,21ㄴ-28)
 
 
 
 
광야에서 돌아온 예수님은 이제 갈릴래아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십니다(마르 1,14-­15). 세례자 요한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과 다릅니다. 그분은 요한처럼 하느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전하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기쁜 소식)을 믿어라.”(1,15)

 
첫 제자들인 시몬과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고(1,16-­20),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 활동을 펼치십니다. 그 첫째 이야기가 카파르나움이라는 마을에서 펼쳐집니다. 장소는 유다인들의 종교 생활 중심지인 회당이고, 때는 그들에게 거룩한 날인 안식일입니다(1,21). 회당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요,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읽고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랍니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22절) ‘권위’ 곧 ‘엑수시아’는 ‘존재로부터’를 뜻하는 말로, 존재로부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가르침에 ‘권위’가 있고 없고는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있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한테서 그 내용이 그대로 실현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8-­19.21; 이사 61,1-2 참조)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씀 그대로 사십니다.

거룩한 날, 거룩한 장소에 더러운 영들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습니다. 더러운 영들이 거룩한 분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는 거룩한 존재 앞에 자신의 존재가 처한 위험을 알고 두려움에 외칩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마르 1,24) 예수님께서 악령 들린 사람을 보십니다. 불쌍하고 가엾은 그입니다. 그분께서 더러운 영에게 명하십니다.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니 당장 그곳을 떠나라.’ 악령이 떠나갑니다. 모든 피조물을 만들고 살게 하는 참 주인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가던 악령이 그 말씀에 쫓겨납니다(26절). 더러운 영은 거룩한 영 앞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 1,9-­10). 인간과 하느님의 참모습을 왜곡시키고 사람을 속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더러운 영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갑니다. 악령이 떠나간 그 사람은 이제 다시 참다운 자기 자신으로 돌아옵니다. 하느님의 영이 머무시는 존재가 됩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사도 2,32-­33).

이에 사람들이 놀랍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1,`27) 예수님의 이 치유 행위, 곧 인간 구원 행위는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생명을 살게 하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만들지 못하고 죽은 말씀으로 만드는 율법학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힘 있는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계명일 뿐이니.”(이사 29,13)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종교 행위만으로는 악령이 활동하지 못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낼 수 없습니다. 하느님한테 받은 사랑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되돌리며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고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탄의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예수님과 함께 오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몸소 살아내는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이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집니다(마르 1,28).

“당신 법이 놀랍기에 제 영혼이 그것을 따릅니다. 당신의 말씀이 열리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이들을 깨우쳐 줍니다. 당신의 계명을 열망하기에 저는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시편 119,129-­131). 당신의 말씀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2­3)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