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권위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1 조회수474 추천수7 반대(0) 신고

 

 
“몹시 놀랐다.”
영어 성경엔 astonished 라고 번역되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surprise, “기대·준비가 없는 사람을 갑자기 놀라게 하다.”는 뜻이고,
astonish “불가능 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 따위를 실현하여 놀라게 하다.”
amaze는 astonish와 비슷하나 “그저 어이가 없다, 두 손 들었다.”와 같은 어감을 띄고 있다고 한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서 몹시 놀라다, 경악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친 것에 놀랐다고 하니,
예수님의 권위가 어떤 것일까 싶다.
어떤 권위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붙어있다.
율법학자들 하고 달랐다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은 법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오직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법이 사람위에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법위에 있다고 하신다.
이런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권위다.
곧 이어서 회당에 왔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회당에 온 사람중에 더러운 영, 마귀들린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놀라운 권위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알아보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타난 즉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빛에 가장 민감한 것이 어둠이라고 했듯이,
빛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자 마자 곧 바로 어둠의 영, 더러운 영, 마귀가 즉시 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두 번째 권위는 이런 것이다.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더러운 영”을 식별하고 물리치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권위다.
이것은 지난 주 복음강론에서 알아보았듯이, 회개해야 할 사람은
비단 권력자, 장사꾼들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잘못을 하고 살아도
힘 없고 가난하다고 체념하는 가난한 사람들 역시 회개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즉, 이제껏 그 동네(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자기들 가운데에
그런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는줄은 꿈에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더러운 영에 오염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자 비로소 악이 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데체 있을 수 없는 일, 이제껏 아무 문제 없이 같이 살고 있던 어떤 누가 알고 보니,
더러운 영,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인 것을 알게 되자 경악한 것이다.
바로 예수님이 그런 것을 밝혀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권위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권위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행일치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지만 권위는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언행이 일치할 때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언행이 일치하지 않아도 강제로 일치시키는 것이 권력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언행일치다. 그것을 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회개하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언행이 일치하고 그래서 권위있는 사람이 된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 만연하고 있는 마귀적인 행동을 물리치고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귀의 행동은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다.
사람을 사로잡아 마귀 뜻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이 제 의지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
사람이 저 하고 싶은대로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짓이다.
 
또 마귀가 하는 짓은 다른 사람의 정체를 폭로해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이다.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나자렛 촌놈 예수야, 우리한테 뭔짓 할려고 하냐?
니 우리를 깨부술려고 왔지? 난 니가 누군지 않다. 니는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이라고 한다지?”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마귀가 예수님께 한 말은 “니 어젯밤에 내 주머니 뒤졌지? 니가 뭐 했는지 내 다 안데이!.” 하는 것이다.
“예수야, 니는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분,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 돌로 빵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줘봐,
그러면 사람들이 너한테 열광할거야. 그러니 넌 빵 왕이 되야 해.
십자가는 무슨 십자가, 그 딴거 지지마.
넌 마귀두목이 되야 해” 하는 것이다.
마귀가 하는 짓은 하느님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것이다.
그런 마귀의 유혹에 대해 예수님은 단 한마디로 제압하신다.
“주둥아리 닥치고 썩 꺼져라!”
나한텐 그런 말 하지마라, 난 그런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니 입닥치고 썩 나가거라 하신 것이다.
이런 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권위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의 권위를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칭찬한다.
이젠 우리가 그런 권위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회개하고 우리 안에 침투해 있는 마귀 짓을 깡그리 몰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땅에 하늘나라가 서게 될 것이다.
묵시록 마지막에 “오소서 예수님”하고 외치고 있지만,
하늘나라는 그저 주어지기만 하는 것,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나간 분이 예수님이고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경악할 권위였다.
사실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것은
천사들마저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
이번에 인사이동되었습니다.
2월 6일 구미 종합사회복지관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부족한 제가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제가 올린 글이 몇갠가 세어보니 218개 정도 되는군요^^
맘에 안드는 글 읽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제가 빈들에 인연을 맺고 너무나 부족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방장님의 언니되시는 분이
제개 재활원, 들꽃마을에 있을 때 많이 도와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올린 것입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보답이 될까 싶습니다.^^
여건이 되면 계속해서 글을 올릴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뜸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 제가 올린 글 중에 제가 다시 읽어보면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을 만한 글이 있어서
다시 옮겨봅니다.
굿뉴스에 김혜경 안젤라님이 올린 걸로...
=================================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자주 성전에 나와 기도를 드렸던가 생각해본다.
    그분은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셨다고 하는데,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 연상된다.
    모세는 거기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비로소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관계를 맺었다.
    예수님도 그런 마음으로 비로소 당신의 새 백성을 구성하기 위해
    산으로 가시어 장고의 기도를 드리셨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그리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그분이 핵심 제자들로 부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리도 오랫동안 기도하실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학식과 재능이 있고 재력과 인품과 덕망이 있고
    총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죄인 취급받는 사람도 있었다.
    명문대 출신, 의사, 변호사, 교수, 재벌들이 아닌
    정말로 힘도 빽도 없는 사람들로
    당신 제자들을 구성하신 것을 보니,
    기도가 절로 나올 법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충분한 가운데 당신 사업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부족한 사람들로 당신 백성의 중심을 세우셨다.
    최소한의 것으로 시작하면서 너무나 위대한 일을 하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어쨌든 이 부족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쳤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짐하셨을 것이다.
    부족한 가운데에서 시작하는 당신을 도와달라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오직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버지 하느님의 섭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묵은 술이 좋다고 하며
    새 술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
    강도에게 죽도록 맞고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몸이 불결해진다고 피해가는 사제들,
    단식과 기도,
    안식일 법은 지키지만
    이웃에게 선행하고 자비를 베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벗기는 일은 정의로운 일이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충분한 조건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한 번도 바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님도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시작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기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시작하셨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누가 네 형제요 자매며 어머니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정의니 진실이니 할 필요없이 그분이 사신 대로 사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신 그분처럼
    우리도 같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
    아직...
    이런 상태로는...
    부족한데 ...
    하는 핑계를 대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도 부족하고 결핍된 가운데에서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 바른 일은
    조건이 갖추어지길 기다렸다가 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지는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