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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7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2 조회수477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님 봉헌 축일]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또는 2,22-32>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벌써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40일이 되어서 오늘은 성모님이 정결례를 거행하는 날이고 아기 예수님이 하느님께 봉헌되는 날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성모님의 몸이 정결해 지는 40일의 기간 동안에 오늘까지 포함하여 오늘 복음은 세 번이나 선정되고 있습니다.
 
맨 처음은 [성가정 축일] 복음이고(12/28), 두 번째는 [성탄 팔일 축제 내 제 5일] 복음이며(12/29), 그리고 오늘 [주님 봉헌 축일] 복음입니다. 이렇게 연이어 복음이 선정되면 아직 말씀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묵상할 소재도 바닥이 드러나므로 묵상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의 강론을 준비하시는 신부님의 노고가 얼마나 많으신 지를 갈수록 피부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전체적인 묵상은 지난 12/29자 묵상과 12/30자 묵상으로 대체하고 오늘은 봉헌에 대하여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봉헌의 사전적 의미는 '하느님에 대한 흠숭'으로 하느님의 최상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구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또한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로서 하느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흠숭은 십계명의 첫 계명을 실천하는 행위라 할 것입니다.
 
봉헌에 대하여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의 발언으로, 장로 신분이기 때문에 개신교 행사에서 덕담 차원에서 한 발언으로 알았으나 서울시장 명의로 서명한 문서가 사진으로 보도된 것을 보고 종교적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서울시를 외관만 명품도시로 만들어서 하느님께 봉헌하려고 하였던 같습니다. 그 결과로 '용살 학살'이니 '용산 참사'니 하며 하느님도 통탄할 일이 벌어졌으며 어제는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오늘은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저녁 7시에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는 하느님에 대한 봉헌입니다. 봉헌은 통상 유형적인 예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봉헌된 예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그리스도교가 타종교에 비해 종교적 책임을 다할 수 있고 봉헌금을 잘못 사용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로마제국에서 초기 그리스도교가 가진 박해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Edward Gibbon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구제활동이 큰 공헌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기록을 옮겨 보겠습니다.
 
'이처럼 깊은 인간애는 아무리 이교도라 해도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빈궁한 사람에게는 곧 구제의 손길이 뻗쳤고, 장래에도 보호를 받으리라는 이 기대가 다수의 불행한 사람들을 교단은 자기 품안에 따뜻이 맞아들이는 결과가 되었다. 당시 냉혹한 세태라는 조건도 있어서 양친으로 부터 버려진 어린 아이들이 기독교도에 의한 자비와 이런 공공자금 덕택으로 죽음에서 구제되어 세례를 받은 후에 부양교육을 받은 사례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
 
시간 관계상 지금 정확한 본문은 찾을 수 없지만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내용은, 봉헌금을 네 등분하여 한 몫은 구제자금으로, 한몫은 주교와 사제들의 생활비 등으로, 다른 한 몫은 종교예식의 비용 등으로, 나머지 한몫은 교회 건축자금으로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교와 사제들의 활동비는 구제활동의 부족분에 추가로 사용되었으며 종교예식 비용은 신자들의 성찬(Agape: 초기 기독교인들의 회식) 비용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이는 비난의 소지가 있어서 7세기 말경에 중단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현실은 사회복지에 사용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하기도 부끄러운 실정일 것입니다. 지난 가을에 들은 얘기는 우리 천주교는 4%대이며 개신교는 1%미만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천주교의 모태신앙을 가진 자매님으로, 현재 모 연구소에 근무하신 사회복지학 박사님의 얘기이므로 신빙성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르 12,17)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한 우리의 봉헌금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물론 교회도 봉헌금을 하느님께 직접 돌려드릴 방법이 없으므로 하느님과 일체이신 예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도 직접 돌려드릴 방법은 없지만 이를 대비하시여 예수님은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 40)  이를 실천하는 것이 [주님 봉헌 축일]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으로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봉헌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였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릴 수 있도록
저희와 교회를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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