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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40) 아~! 광주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18 조회수1,01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5월18일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성 요한1세 교황 순교자 기념 ㅡ집회서4,12-22(4,11-19);마르코9,38-40ㅡ

 

       아~! 광주여.

                       이순의

 

 

<이 글은 광주에 관한 단편소설입니다. 제 부족한 문장으로 입상에 들지는 못했지만 광주를 현장에서 격었던 한 사람의 민중으로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 놓은 창작입니다. 오늘 5,18을 추념하여 묻혀있는 가슴들의 혈흔을 미력하나마 닦아보고자 졸글을 꺼내보았습니다. 먼저 읽으시기 전에 시간이 충분하신지를 가늠하시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시다면 잠시 창을 닫으셨다가 차분하실 때 다시 오셔서 읽으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긴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창작적인 부분을 제외한 현장의 모습들은 당시 광주의 실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알려드립니다. 칸을 둔 이유는 모니터 안에서의 시각절 불편을 줄이고자 했을 뿐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이 글은 창작품입니다. 그러나 묵상이 가능한 시대글이라는 창작임을 염두에 두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 광주의 그날이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사령관의 딸

                               이순의


음악 감상실 입구 좁은 통로에 안개등이 드문드문 열려있다.

극장식으로 티켓을 판매하는 매표소가 있고, 그 옆으로 출입구가 있다. 티켓을 사고 방음을 갖춘 묵직한 암갈색의 비로드 문을 열면 영화관의 스크린 자리에 DJ가 앉아있다. 지역방송국의 공중파 장비들도 따라가지 못 한다는 뮤직 박스가 정면의 벽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규모가 방대하고 성능이 최상급인 음향기기! 장수를 셀 수 없는 디스크! 그리고 원형음판에서 튕겨져 나오는 스피커의 불꽃은 음악 애호가들을 황홀한 경지에 도달시키고도 부족함이 없었다. 감상다운 감상이라는 미명 아래 그 순수한 고객층을 고정으로 확보한다는 심산이었다. 활화산 같은 젊음을 흡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억압이라는 굴레에서 숨통이 트이고 있었다. 24시간 영업! 극장식 정통 음악 감상실! 티켓 한 장으로 커피와 음료만 허락되는 다소 비싼 입장료! 건전이라는 말 보다 더 청렴한 유흥이었다. 차라리 소극장에서 레코드 콘서트를 한다는 어휘를 빌리는 게 더 합당한 영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 아름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한 장씩 또는 두세 장씩, 드는 숫자에 따라 티켓을 판매한다. 하루도 빼지 않고 시간을 맞추어 출근도장을 찍듯이 찾아오는 정열도 있고,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들렸다가 실망한 기색으로 잠시도 머물지 않는 방정도 있다. 자잘한 안개등이 심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맞았다가 보낸다.

 

그곳에 재훈이 있다. 음악 감상실의 지배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한 청년이다. 오시는 단골손님들에게 반가운 정담이라도 건네 보지만 흘리다가 말은 김치 국물 같은 촌스러움에 냉랭한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었다. 최신 팝송에서 오랜 흑인 연 가 같은 애절함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총천연색의 음빛에 취해서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낮 시간에는 예쁜 조카 녀석을 앉혀 놓고 있다지만 깊은 심야에는 음악과 관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잘 구슬려 방해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꽝꽝거리는 소음들이 어떻게 좋은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었던 자신을 불러준 사촌 형님의 선택에 실망은 드리고 싶지 않았다.

“너 착실히 일 한 번 해봐! 이렇게 영업도 배우고.”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누군가와 함께 만나 차를 마시며 근사한 멜로디에 취하고 싶은 새봄에 문을 열었다. 그만하면 영업의 손실을 벗고 유지할만하였다. 그런데 삼복의 더운 여름이 목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친 듯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프로야구가 결성되었다. 야구장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선술집에 앉아 돼지고기 타는 연기로 안주를 삼으며 쓴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돌아올 손실은 예측불허였다.

 

홀 안의 서비스 바에는 커피와 음료를 마련하는 똘마니가 무료하다. DJ는 제 입맛에 맞는 메뉴로 좌석을 채웠다. 그들 사이에 수신호가 오고가며 노작 거린다. 손님도 없는 공허감을 그렇게라도 히죽거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바쁘게 시중을 드는 일이 있어야 한다. 코피가 터지고 머리 골이 띵한 아침을 맞아야한다. 손님들께서 밤의 악상을 즐기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졸음을 쫓아야 한다. 그런데 소음 같은 연주 속에 묻혀 졸기도 하고 잠들기도 하다가 비몽의 동녘을 틔워 줄 손님이 없다. 싱글싱글한 비누 향 짙은 아침을 몰고 와줄 손님조차 아직 계획이 없다.

얼마나 여름이 잔인한가에 대하여 경험이 없었다.

 

그저 대머리 벗겨진 전두환 대통령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사람 죽인 놈이 현장에 머문 군중의 시선을 돌리려고 프로야구 보다 더 한 것인들 못 만들겠느냐고 지껄였다. 야구장에 앉아 환호를 쳐댈 군중들에게 그런 놈한테 넘어간 배신자라고 욕을 했다. 벌써 그 때를 잊어버린 배신자라고, 오히려 살인자 전두환이 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라고 원망을 했다.

전라남도 청이 지척인 자리에 음악 감상실이 있다.

피의 광장을 바라보며 금남로 1가를 지나서 충장로 2가가 있다. 광주우체국 현관에 놓인 돌계단 우 다방에 서서 약속을 지키는 인파를 비집고 학생회관 쪽으로 직진이다. 거기서 사람들의 발길이 뚝하고 차단된다. 학생회관 골목 입구를 지나면 황금동이다.

 

낮에는 잠을 잔다. 홍등이 줄을 섰다. 쌓인 먼지도 천박한 붉은색 등이 거무튀튀한 때 구정물을 입고 졸고 있다. 저렇게 더러운 둥근 진공관에 전류가 흐르면 해롱해롱한 감전의 불야성을 이룬다. 밤에는 유희와 향락이 비린내를 쏟고, 흐믈거리는 사향의 냄새를 풍긴다. 홍등의 요란한 발광에 불나방의 날개 짓은 휘황하다. 아스팔트 위에 플라스틱 의자들이 삼삼오오 놓여 있고 그 주인들이 듬성하게 앉아 있다. 짜그작 짜그작 혓바닥을 돌려 껌을 씹으며 코끝을 벌름거린다. 색욕의 냄새와 돈의 냄새를 감지하는 시신경이 예리하다. 웬만큼 강한 심장을 붙들지 않고는 긴 거리의 탐색을 외면 할 수가 없다.

“잘 해 주께. 자기 싸랑해. 쪼꼼만 놀다가 가아~!”

 

단층으로 즐비한 유흥의 거리에 접어들면 바로 초입에 덩그런 4층 건물이 보인다. 장비의 우월성으로 승부한다는 음악 감상실 Black & White가 있다. 지방도시 광주에서 최신의 장비를 갖춘 음악 감상실을 애호 할 만큼 층이 보장되어 줄 것인가? 학생회관 골목이 경계선이었다. 유흥과는 전혀 무관한 황금동의 초입이라고 해도 그 한 발짝을 옮겨 놓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엄청난 양의 전단지를 뿌린 결과였다. 봄은 싱그러웠다. 어렵게 어렵게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놓았다. 벽에도 담에도 길바닥에도 전봇대에도 붙일만한 모든 곳에 도배를 하고 다녔다. 대학생이라는 인칭명사가 붙은 대학의 정문은 차라리 안방이었다. 안내지는 주는 대로 구겨서 버려졌다. 종이 한 장 때문에 심장을 애일만큼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야구장의 작은 공 하나와 방망이의 존재는 그런 노력의 모든 결과를 착취하고도 부족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강력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였다. 야구장으로 몰려갔다. 좁은 매표소에는 파리도 날지 않았다. 멀건 눈동자만 벽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보고 앉아있다. 코끼리 앞에 개미 같은 여력조차도 무가치한 현실이었다.

안개등은 힘을 잃고 저녁은 중천이다. 2층 계단을 내려가 골목의 자취를 훔쳐본다. 홍등도 기력을 잃고 차가운 아스팔트에 내려앉았다. 지나치는 취객도 없다. 나풀거리는 긴 치마폭의 암내도 졸고 있다. 재미없는 하품이 진한 립스틱 자국을 추접케 하고, 창녀들의 일진도 맛을 잃었다. 한 여자가 몸뚱이를 꼬며 흐느적 흐느적 다가와 팔짱을 낀다. 얼굴 익은 탓인지 눈초리에는 꽈배기가 없다.

 

“입질이 여엉 없네에.

거기도 텡 비었지?

우리는 자러 가면 되지만 자기는 어쩔거야?

이런 날은 문 닫구 기냥 누워버려.”

재훈은 차라리 기름기 물컹거리는 살덩어리를 품고 싶었다. 텅 빈 새벽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뼈마디를 쑤셔 올 것이다. 도톰한 잠바로도 그 통증을 방어하지 못 한다. 자연의 이치가 어둠이 오시면 자리를 깔고 등을 붙이고 얇은 눈꺼풀을 덮어야 한다. 그는 대낮에 매표실 바닥에서 곱사등을 하고 꼭지 잠을 잔다. 괴성 같은 스피커 음과 조카 녀석의 티켓 파는 소리와 손님들의 발 굴림이 진동으로 울리는 몽혼의 상태에서도 피할 수 없는 수면에 대한 욕구를 잠깐씩 채우고 있었다.

 

여인과 서서 바라보는 충장로의 번아 한 길 끝에도 간판 등만이 요란하다. 인적 없는 어둠은 스산하고 그 그림자는 절망으로 떨어진지 오래였다. 재훈은 팔에 걸쳐진 긴 손톱의 손가락을 잡아 내렸다. 밀착된 유방이 온기를 품었다가 놓는다. 젖꼭지를 잡아 살짝 비틀었다가 등을 돌렸다. 손님이 없으면 놀러 가겠다고 칭얼거리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바른 손을 들어 휘저었다.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지 부르라는 소리가 멀어졌다. 황금동의 초입을 사는 사람과 황금동 골목 안에 사는 사람의 질감이 분리되고 있었다.

학생회관 뒷골목에는 쌈 야채를 곁들여 내는 튀김집이 즐비하다.

구수한 튀김의 맛도 맛이려니와 간장에 찍어 깻잎에 싸면 깻잎향이 짙고, 쑥갓에 싸면 쌉싸롬한 쑥갓 맛이 혀끝에 돌고, 상추에 싸면 상추쌈이 보드랍게 입안에서 녹는다.

 

상아는 상추 한 장에 깻잎 한 장을 얹어 간장 찍은 오징어 튀김을 싼다. 풋고추를 뚜걱 쪼개서 얹고 쌈을 곱게 오므려 누나 현아의 입에 넣어주었다. 현아는 앉아서 입만 벌리다가 쌈이 구강에 들면 오물오물 곱게 깨물어 먹었다. 약간은 긴 단발에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조신한 수줍음으로 익숙하게 받아먹는다.

동생을 더듬으며 쓰다듬는 손끝이나 주고받는 언어는 여느 다정한 누이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누나인 현아가 남자동생인 상아에게 튀김을 먹여주지는 않았다. 그 옆에는 재훈이 앉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 쌈을 싸서 넣어주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공연한 배려로 현아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상아를 만난 것은 두 번째였다.

 

처음 본 상아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감추며 누나의 손을 꼭 잡고 가버렸다. 현아도 그런 동생을 순순히 따라갔다. 그냥 누나를 찾았으므로 안도할 뿐, 옆에 누가 있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남매에게 흐르는 기류가 청춘의 젊은 느낌은 아니었다.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절박함이 엄습하고 있었다. 손을 잡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처럼, 함께 있어도 불안해하는 안타까움이 배어났다. 재훈은 그들 남매의 뒷모습을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해맑은 처녀 현아가 좁은 복도에서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모습이 가까워졌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이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런데 이렇게 남매와 나란히 앉아 튀김을 먹고 있다. 상아가 마련한 자리였다.

“누나가 오늘은 거의 먹지 못 했을 거예요.

 누나가 학교 다닐 때 튀김을 좋아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재훈은 상아가 어떤 말을 하던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어려웠다. 마냥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순간 같았다. 현아가 동생은 볼 수 있어도 자신은 보지 못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갈한 그녀가 음식을 받아서 먹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는 터였다.

푸짐한 접시는 더디게라도 바닥을 보였다.

 

다시 손을 꼭 잡은 남매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아무리 보아도 사무침이 실타래를 감는 두 사람이었다. 춤추는 듯이 사뿐히 걷는 현아의 뒷모습은 청솔 위에 서 있는 한 마리의 학이었다. 그렇게 고운 자태가 사슴 같이 슬픈 뒷모습을 가진 동생 상아에게 맡겨져 걷고 있다. 저렇게 차분한 현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직 이른 초저녁의 우 다방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만원이었다. 재훈의 마음은 조용한 찻집으로 그들을 안내하고 싶었으나 역시 침묵하였다.

상아는 우 다방의 군중을 비집고 돌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셔터 문이 내려진 우체국 정문의 한 쪽 난간에 자리를 잡고 현아를 앉혔다. 왜 이런 노천에 누나의 자리를 마련하느냐고 상아에게 묻지 않았다.

 

광주에서 우 다방을 모르는 사람은 광주시민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약속장소를 우체국 앞으로 정한 사람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우 다방에서 만나자는 모든 약속은 충장로2가 광주우체국 앞 돌계단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누나의 자세가 안정이 되는 것을 확인 하고 상아가 돌아섰다. 그때서야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차상아입니다. 누나는 차현아구요.”

“네! 누나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김재훈입니다.”

대학교 2학년이라고 하기에는 깊은 눈망울이 시리게 느껴졌다. 바르고 깍듯한 예의와 곧은 자세는 상당히 인상 깊었다. 풍기는 이미지가 얇상한 미남이기는 했으나 호남형은 아니었다. 깔끔한 얼굴에 큰 키는 손색없이 든든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포근함이 배어나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찬 기운이 도는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넘치는 정성이 묻어났지만 내색 할 수 없는 단절의 느낌은 분명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상아는 재훈에게 누나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고 물어왔다.

재훈은 아는 만큼을 설명한다기보다 현아에 대한 자신의 가책 없는 사심을 대변하고 싶었다. 현아의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해서 손님으로 맞았다는 객관적인 변명이었다. 이미 그런 정도의 상황은 누나를 통해 상아가 알고 있는 듯하였다.

2년 전에 현아는 춤 연습을 한다고 학교에 갔다.

현아의 전공은 현대무용이었다. 현아에게도 대학생활은 활기찬 젊음을 진행시키는데 거리낌 없는 여정이었다. 춤을 춘다는 매력도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지만 고운얼굴을 선망하는 친구들의 숫자도 상당하였다. 그렇다고 천성이 온순했던 현아가 망동하지는 않았다. ‘춤은 인생이다’라는 결심을 누구보다 깊이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춤을 즐길 줄 알았고, 춤을 사랑했으며, 춤에 방해 되는 어떠한 이유도 주저 없이 거절할 줄 아는 성품이었다. 춤을 추느라고 땀에 절여진 몸을 늘어뜨리고 귀가하는 일상이 조용히 반복되었다.

 

박대통령이 서거하신 후였다. 대학 캠퍼스에는 향학은 사라지고 최루가스로 범벅이 되었다. 발이 생명인 춤꾼에게는 피해 가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작정하였다. 긴급한 시국을 몸소 짊어지신 아빠의 뒷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계엄령이 국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군인이신 아빠의 귀가는 불규칙했다.

동생 상아는 청소년기의 꽃인 고등학교 2학년의 후반부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볼 뿐 말씀을 아꼈다.

대통령이 죽었고, 임시정부 상태로 총리가 대통령이 되었다.

거리에는 무수히 많은 악성 유언비어들이 난무했고, 동시다발적으로 민중의 외침이 함성으로 통일되어 입김으로 퍼져 갔다. 유언비어를 막겠다는 최루 가스인지? 아니면 민중의 소리를 차단하겠다는 최루 가스인지? 사리분간을 하겠다는 그 자체가 모순인 시국이었다.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조신하게 있으라는 아빠의 분부를 따라야 한다.

 

동토의 계절이 따로 없었다. 조용한 세상이 올 때까지 안전하게 지내는 법을 필수로 선택해야만 했다. 간혹 엄마의 외출이 있었지만 별다른 기척은 하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엄마의 향기가 비장함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무엇이 불길한지는 모르지만 동생상아를 다독이시는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아는 딸이라는 섬세함으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신중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성품 때문에 우려의 위험 선에서 도태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엄마는 남매를 앉혀 놓고 간단한 말씀을 전해 주셨다.

아빠의 소신을 따르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국가와 역사에 반역하는 인물로 기록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너희들도 아빠의 소신을 믿어주기 바란다는 결론이었다. 분명한 명제는 아니었지만 알아듣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빠가 어떤 결단을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빠가 원하지 않은 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명시하고 계셨다. 아빠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기에는 이미 현아 자신이 성숙한 어른이었다.

 

남매를 생각하며 수 없이 많은 고민과 타협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후에 따르게 될 무고無告를 감당해야만 하는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오히려 엄청난 홍수 속에서 함께 떠내려가는 상련의 지푸라기에게 라도 의지 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지푸라기를 잡지 않았다는 통보였다. 엄마는 엄마대로 몫을 이기며 살아내야 하고, 남매는 남매대로 주어진 몫을 감당하며 살아내야 할지도 모르는 강인함을 요구했다.

국가의 군대를 인솔하고 계시는 아빠가 국가를 선택한 것이다.

“아버님께서 군인이실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상아의 이야기를 차단한 사람은 재훈이었다. 그 틈에도 상아는 현아를 돌아  보았다.

현아는 고개를 있는 힘껏 돌려가며 군중을 헤집고 있었다. 마치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를 찾는 것 같았다. 우 다방의 인파는 왔다가 짝을 만나서 가고 또 다른 인파가 짝을 만나러 오고갔다. 초저녁의 젊음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 진행형이었다. 상아는 현아에게 집으로 가자고 권했다. 현아는 여전히 보드란 손을 내밀어 단단한 동생의 손을 잡았다. 마치 조금만 더 머물고 싶은 나비의 날개 짓 같았다. 상아는 여리 디 여린 나비에게 꽃자리를 허락하는 여름나무의 너그러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 애잔한 부드러움이 구경꾼 같은 재훈에게도 고스란히 감지되고 있었다. 남매에게서 배어나는 스산한 정의 정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사령관이셨습니다.”

상아는 그저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솔직히 재훈의 입장에서는 사령관이 어떤 군인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의 지소에 청소하러 다닌 기억 외에 군대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기 때문이다. 관심을 기울이면서까지 그 서열의 엄위를 터득할 필요는 없었다. 때가 되면 농어촌 동원령이라는 명목 하에 모를 심으러 가는 일이 그 중 재미가 있었을 뿐이다. 맛나게 점심을 내오시는 중대장님 사모님의 공로로 누구네 논에서 노력동원을 했는지를 비밀로 해 줄 가치는 충분했었다. 그런데 듣고 있는 이야기는 심각함의 난이도를 웃돌고 있지를 않는가? 자신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 우 다방에서는 오시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지 않는다. 기다릴 수는 있지만 머물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것이 고맙게 느껴질 줄은 미처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학동의 응급실로 가보세요.”

간단하고 굵은 목소리는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극한 사무로 걸어 온 전화였다. 수화기를 팽개치다시피 내려놓고 엄마가 뛰쳐나가실 때는 묻지 않아도 누나의 소식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상아는 엄마의 뒤를 쫓았다. 저승사자라도 머물 것 같은 소름의 촉감을 집안에 두고 현관의 자물쇠를 돌렸다. 엄마는 정신이나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무의식의 상태로 본능적인 오감들이 각자 알아서 역할분담을 하고 있었다. 시국의 혼란 속에서 차를 잡아탄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지 못했다. 서석동을 달려 나와 의과대학 쪽을 향해 숨을 몰아쉬었다. 먼저 시민군이 자체수습을 마친 거리에는 또 한 번 진압군에 의해 말쑥한 단장을 끝내고 있었다. 지치고 충격에 쌓인 사람들의 발걸음도 일상을 찾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뭔지는 모르지만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평정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는 거리였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학동5거리에 있었다. 그 곳이 피범벅의 지옥이었다는 사실은 기억으로나 더듬어야 할 것 같았다. 비도 오시지 않은 거리에는 물청소의 흔적으로 촉촉이 젖어 있다. 시민들의 눈빛만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예리하게 날을 세운다. 대학병원의 백색 건물 정면에는 회백색 콘크리트 파편자국이 선명하다. 여기저기에 아직도 식지 않은 총구멍이 화약 냄새를 뿜어내고 있다.

걸을 수 있는 모든 환자는 자의건 타의건 강제 퇴원을 시키고 소등을 했다. 절대로 창밖을 내다보지 말 것과 남아있는 모든 환자는 침대 밑으로 내려와 바닥에 엎드려 있을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불꽃놀이 같은 굉음과 불빛들이 건물의 여기저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덩치 큰 병원 빌딩은 군데군데에 작은 상흔만 남겼을 뿐 용케도 잘 버티고 서있다.

 

어떻게 달려왔는지 걸어왔는지 모를 모자가 병원 응급실로 뛰어들었다. 아직도 비릿한 피 냄새와 꽉 들어찬 환자들의 상태는 누가 보아도 전쟁 중이었다. 엄마는 여기저기 현아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경험이라는 직감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지치고 피곤에 절은 하얀 가운의 여성을 붙들고 무조건 말을 걸었다.

곧 바로 책임자 같은 남성이 벌겋게 달아오른 지친 눈빛으로 다가와 안내를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정중한 대우를 한다고 느껴졌다. 폭이 좁은 간이 침대이기는 했지만 한 쪽 후미진 조용한 곳에 현아가 누워있었다. 그래도 깔끔한 대우를 받았다는 듯이 정돈된 흔적을 하고 있다. 창문에 드는 햇살이 동정어린 빛으로 살포시 덮여 있었다. 그때서야 눈물이 말라버린 줄 알았던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머리를 칭칭 동여맨 붕대에는 혈흔이 새어나와 흥건히 젖어있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아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덮고 있는 광목천을 조심조심 걷어내기 시작했다.

먼저 목덜미에 손가락 두 개를 겹쳐서 대고 혈관이 뛰는지 짚어보았다. 가슴위에는 고개를 숙여 귀를 대시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손가락도 하나하나 세어보고, 허리 밑으로는 조심스럽게 엄마의 손을 밀러 넣었다. 발바닥까지 현아의 신체검사를 손끝으로 마친 엄마는 다행스러운 눈치가 역력했다. 머리를 싼 붕대가 피로 젖어있었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 하리 만큼 몸 상태가 정갈했다. 검붉은 장미꽃 장식이 달린 흰색의 두툼한 두건을 눈두덩이 까지 두르고 잠을 잔다고 해야 더 합당한 표현일 것 같았다.

 

80년5월21일 수요일은 석가탄신일이었다. 장갑차를 몰고나온 시민군이 잔악무도한 군대를 쫓아내고 광주를 지키고 있었다. 거리에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아낙들이 줄을 섰고, 지나가는 시민군의 차량에 생필품을 던져주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얼굴에 복면을 한 청년들이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트럭의 짐칸에 앉아있었다. 제법 높은 건물의 그늘에 차를 멈추고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는 헬리콥터의 공중촬영을 피했다. 저 사진 한 장에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삼척의 동자들도 알고 있었다. 주민들이 전해주는 담배꽁초로 초조감을 달래기도 하고 깜박 잠을 사리기도 하였다.  이미 목숨 줄이 담보된 상태라는 것을 그들도 시민들도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욱 더 애잔한 끈기가 그들의 관계를 유착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언론이 두절 되고 통신은 끊어져 버린 광주! 외각에서는 국가의 군대가 포위를 했다. 교류가 차단 되어버린 경계의 땅이었다. 권력이라는 영욕의 희생양으로 역적이 되고 폭도가 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라는 3인의 담합에 광주가 점령당했다고 피가 터지게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정당성도 메아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피눈물을 흐르며 항거하고 있을 때 국민들은 동질의 가해자가 되어 돌을 던졌다. 광주의 5월은 풍전등화의 운명이었다. 그들이 폭도가 아니라고 누가 말을 해 줄 것인가? 그들이 무고한 진실이라고 말해줄 사람이 누구더란 말인가? 광주는 그저 광주를 사는 사람들끼리 정의로울 뿐이었다.

 

사령관이신 아빠의 소식은 단절되었다. 간혹 부관에 의해서 기별이 전달되기는 했지만 그 신변의 보장은 천운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침략군에게 백기를 들지 않았다. 사령관의 명령이 하달되지 않은 호남의 군대는 민간인을 향한 출격은 하지 않았다. 거사에 불응한 사령관의 신병을 인도한 쪽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하극상이었다. 계급이 낮은 군대가 계급이 높은 군대를 향해 돌격해버린 하극상!

사령관 휘하의 모든 병력은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다. ‘자국의 군대가 자국민을 향한 작전은 결코 수행할 수 없다’는 목숨을 담보한 사령관의 소신 때문이었다. 군부의 핵심에서 어떠한 협상과 알력이 동원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인정해야할 사실은 양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아빠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시민군에 의해 침략군들조차 외곽으로 쫓겨 간 시내는 시민들에 의해서 솔선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총기를 반납해서 모으고 빗자루를 들고 나와 희생의 거리 금남로에서부터 골목골목까지 쓸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허수아비 대통령의 녹화된 육성이 흘러나왔다. 계엄군이 뿌리는 전단지들이 햇살에 뻔뜩거리며 기류를 타고 내려와 정돈된 거리를 어지럽게 했다. 안정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인쇄된 내용을 믿는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곧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몰려올 것이라는 불길한 암호문을 해독하여 읽었다. 겁쟁이들처럼 총기의 사정거리 밖으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의 모양새가 한 손가락에 접혀버리는 잠자리보다도 작아보였다.

 

근일 간에 시내는 또 다시 점령군으로 교체되었다. 해독한 암호문은 정확했다. 복면을 했던 시민군들의 자취는 소식도 없이 사라졌고, 철모에 완전군장을 한 군인들에게 바통이 넘어간 상태였다.

빨갱이 적색분자들의 난동이라고, 폭도들의 잔치라고, 총칼을 겨누어 학살의 현장을 누비던 군대가 도시정비에 나서는 이중의 잣대를 휘두르고 있었다. 누가 짓밟아버린 시민의 권리를 누가 찾아주겠다는 것인지? 지옥의 터널을 헤엄쳐 나온 시민들은 서로서로 곁눈질만 늘었을 뿐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목숨들의 전철前轍을 밟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현아는 아빠의 무소식을 견디느라고 피의 광주를 목격하지 못했다. 사령관이라는 아빠의 신분이 그들을 감금상태에 놓아두었다. 두문불출하다가 외출을 결심했을 때는 마음조차 서둘렀다. 엄마는 숨구멍이 있어서 공기가 들락거리는 이유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바깥의 동정을 누구보다 세세하게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춤 연습을 하러 간다는 현아를 말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현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6월의 초입에 초록은 고요했다. 전화를 해 준 사내가 누군지? 그곳에 현아가 있다는 것을 왜 알려주었는지? 현아가 당한 사고의 정황은 물론 누가 현아를 대학병원에 대려 왔는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아빠의 부재상태에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누나는 아직도 많은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런 상태로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혹시 다시 찾아온다면 잘 보살펴 주십시오. 제가 곧 찾으러 오겠습니다.”

우 다방의 손님들은 제 각각의 짝을 만나서 가고 없었다. 붐비던 자리에는 찬바람만이 돌계단 밑을 휘돌았다. 애정 깊은 동생의 손을 잡고 다정한 누이가 일어섰다. 한적한 충장로의 밤거리를 남매는 걸어갔다. 재훈은 우두커니 서서 어둠이라는 저편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울컥한 그리움이 달려서 따라갔다. 그 모습을 담아서 기억해 두어야할 찰라가 될 줄은 그도 알지 못했다. 참으로 잔인한 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도 없는 초여름 밤의 졸음은 색정이 가물거렸다. 여자를 찾아 몽혼의 의식을 동원하느라고 방금 쏘이다 들어 온 바깥바람의 흔적조차 끈적끈적 했다. 손님이 없으면 놀러 오겠다고 칭얼거리던 요녀를 더듬어 은근히 헤매었다. 푹신한 의자에 눕다시피 기대 앉아 마음을 동한 것이다. 물렁한 젖가슴살의 촉감이 안쓰럽게 그리웠다. 

황금동은 다 같은 황금동이여야 한다고 치부했다. 돈이 되는 일에 몸뚱이를 팔든 동그란 음판에 담긴 소리를 팔든 매 한 가지라는 생각에 몰입하였다. 오히려 몸뚱이로 벌어먹고 사는 것이 플라스틱 판때기를 우리고 우려서 벌어먹는 것 보다 양심적이라는 생각에 몰입했다.

 

비몽사몽의 저편에 스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2층 계단으로 오르려면 발자국 소리가 따각 거리지 않으면 똑각 거려야 맞다. 몽유의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뚜걱하고 한 번만 소리가 났다. 곧이어 또 스삭 거리는 소리가 조금은 가까워 졌다가 똑깍하고 멈추었다. 끈적거리던 뒤통수의 신경 줄이 땡땡하게 곤두섰다. 이번에는 똑깍하던 단음이 상당히 가까이 들렸다. 스삭 거리고 똑깍 거리는 소리가 불규칙한 반복을 하고 있었다.

홀 안에서는 이미 정적만이 한가롭다. DJ는 길디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너스레가 멈춘 지 오래였다. 몇 명도 되지 않는 손님들도 하룻밤 의자에 기대어 시간을 때우느라고 곤할 것이다. 그러니 홀 서빙을 하던 똘마니 녀석도 주방의자에 엎어져 팔뚝에 침을 늘어뜨리고 있을 게 뻔했다.

 

몽롱했던 실핏줄이 핏발을 세워 터질 것 같았다. 안락의자의 촉감을 버리고 일어섰다. 필사적으로 손에 잡을 것을 찾았다. 전화기는 선이 연결되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고작 필기도구 몇 가지뿐이었다. 수거된 티켓들을 묶는 호치키스를 필사적으로 집어 들었다. 그 중에 쇠 덩어리는 그것뿐이었다. 여름밤의 공포를 몰고 펄럭거리는 연분홍 빛 천 조각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매표소 맞은편의 벽 전체를 차지하는 거울 속에 단발머리의 아가씨가 들어있다. 요괴인지 분간이 서지는 않았지만 학 한 마리가 황금동이라는 오물통에 빠져버린 것은 분명했다. 여명이 열리려면 아직 먼 새벽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곧고 바르게 서 있었다. 재훈은 목구멍에 가래가 고여 말이 터지지 않았다.

“으허험 험! 여기는 음악 감상실입니다.”

 

대답대신 쥐고 있던 지폐를 내어 놓았다. 재훈은 티켓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가만히 있었다. 티켓을 받으라는 말을 건넸을 때에야 손을 내밀었다. 이어서 거스름돈을 주었지만 집어 들지 않았다. 다시 반복하여 소리를 건넸을 때에야 손을 뻗었다. 그리고 티켓과 거스름돈을 손에 꼭 쥐고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가방을 들지도 않았지만 주머니가 있어 보이는 차림도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시라고 알려드린 후에야 그녀는 등을 보였다. 긴 단발이 가지런히 찰랑거리는 모습은 조금 전에 색정에 사로잡혀 헉헉대던 상상의 요부는 아니었다. 뒤로 가시는 게 아니라고 알려 드렸지만 그녀는 등을 보였다. 여린 손목의 기운으로 보아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터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재훈은 인터폰으로 DJ를 깨웠다.

잠시 후에 홀 안에서 낮은 저음의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혹 음악이 바뀌고 있었다. 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인터폰의 빨간 등이 요란하게 깜박거렸다. 들어오신 손님이 현관 바로 앞에 앉아계시므로 안으로 안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DJ의 기별이었다. 똘마니 녀석을 깨우는 것 보다 직접 가보는 것이 쉬울 것 같아서 잠시 매표구의 셔터를 내리고 들어가 보았다. 음악 소리보다 더 고른 숨소리들이 새근거리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연분홍 원피스가 곧은 자세로 앉아 있다. 현관의 첫 자리였다.

“앞좌석으로 옮겨 앉으시지요?”

 

그런데 그녀는 살포시 일어나 또 등을 보이더니 옆걸음을 치며 나가 버렸다. 공연한 걱정으로 불편을 드린 것 같아서 앉으시라고 권해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살금살금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위에서 바라본 뒷모습은 어느 한 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른 손을 벽에 꼭 붙여서 옮기고 있었다.

재훈은 다시 매표소의 작은 셔터를 올리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똘마니 녀석이 질펀히 자빠져 자느라고 제 임무를 상실해버린 탓이었다. 다음에 오시면 꼭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싶었지만 또 다시 홍등의 거리로 잘 못 날아들 학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렇게 많은 날들이 지나지 않은 초저녁이었다. 제법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시간에 으스스한 딸깍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드나드는 손님들이 조심스러웠는지 바짝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게 되면 꼭 차를 한 잔 대접하겠다던 맹세가 분주함에 밀려나고 말았다. 그녀는 기다리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맑은 눈에 엷고 청명한 미소가 변함이 없었다. 단지 다른 점을 고른다면 원피스의 색깔만 연분홍에서 하늘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잠깐의 착각이 지난번에도 하늘색 원피스였다고 생각했다. 그 단아함은 홍등의 거리에 백학이 날아든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그녀가 지폐를 내밀고 있었다. 지난번에 차를 마시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그냥 들어가시라고 일렀다. 그러나 목석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님들이 밀리면 거울에 바싹 붙어 있다가 뜸해지면 다시 지폐를 내밀기를 반복하는 행동이 재훈에게는 재미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렇게 오랫동안 안개등 불빛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재훈은 홀 안의 똘마니를 불러냈다. 그녀는 순순히 따라들어 갔다. 그리고 자정을 넘길 무렵 밖으로 나왔다. 기다림에 비해서 너무나 허망하게 돌아갔다. 딸깍! 스스슥! 딸깍! 스스슥! 계단을 내려가느라고 반복적으로 울리는 소리가 또 오겠다는 인사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앞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서너 번 더 음악실을 찾아왔을 때였다. 늘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던 것이다.

“저기요. 아저씨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요.”

재훈에게는 농담으로 들렸다. 지금까지 그녀는 해맑은 모습으로 똑바르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차 부탁을 해왔다. 그는 장난삼아서 건성으로 응답해주었다. 그런데 곱디곱던 그녀가 왼쪽 옆으로 서서 상스럽게 곁눈질을 하였다. 흰자가 몰린 눈에는 잘려나간 손톱만큼의 검은 동자가 사정없이 째려보고 있었다. 섬뜩했다. 무서웠다. 오싹한 소름이 심장으로 몰려들었다. 그 두려움에 성큼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푹신한 안락의자가 밀려났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았는지 그녀는 자세를 고쳐 세웠다. 그리고 작은 카나리아의 음성으로 갑작스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손끝은 나비의 날개보다 보드랍게 공중을 떠돌았다. 얇게 움직이는 허리는 절제의 미학을 실어 한들거리고 있었다. 아들만 여섯이나 바글바글한 집에서 오째로 자란 촌놈의 감정이 희열을 감당하느라고 벅차올랐다. 마냥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눈깔 질을 하더니 금시 유들유들한 몸으로 유혹을 불사하고 있지를 않는가?! 재훈이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홀에도 들지 않고 얼굴 한 번 보고 그녀는 가버렸다. 영업을 하다보면 별스런 사람이 다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렇지만 나폴나폴 나비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그가 영업상 경험하게 될 별스런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에 그녀가 나타난 시각은 좀 늦은 자정 무렵이었다. 양손 가득히 먹을거리를 들고 나타났다. 바로 앞 구멍가게에서 사왔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직감이라는 것이 몹시 불길하게 엄습해왔다. 홀 서빙을 하는 똘마니 녀석을 불러 매표소를 잠깐만 보라고 일렀다. 그리고 펑퍼짐한 봉지를 빼앗아 들고 종종걸음을 쳤다. 그녀는 계단을 따라서 내려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어라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재훈은 무작정 가게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어떤 아가씨가 이걸 사갔느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 여자는 돈이 없다고 하며 시계를 놓고 주섬주섬 담아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는 다시 가져왔으니 시계를 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약은 장사치의 허욕은 냉정하였다.

“이보씨요. 총각!

한 번 팔아뿌린 물건을 어쭈꼬 다시 받어분다요?

정 시계를 찾아야되것쓰먼 오천원만 갖구와서 바까가씨요! 잉?

사실 이렇고 많은 물건을 물려주기는 좀 그렇잖여라?”

앞뒤 계산도 소용이 없었다. 가게에서 나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 무조건 돈을 집었다. 티켓을 팔던 똘마니 녀석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재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산된 과자봉지를 그대로 둔 채 시계만 빼앗았다. 가게 주인의 체면도 없는 얇은 상술에 분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개등이 자욱한 거울 앞에 서서 나비의 날개처럼 연약한 손목을 잡고 강제집행을 했다. 시계는 다시 제 주인을 찾아 갔다. 다른 반항은 없었지만 그녀는 몹시 화가 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의 상황에 대하여 빠른 판단을 동원한 재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봐요 아가씨! 내가 거지인 줄 알아요?”

 

그날 밤에도 그녀는 안개등을 이고 서서 거울에 바짝 붙었다가 한가해지면 편해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많은 말을 쏟아놓았다.

자기의 이름은 차현아라고 소개했다.

친구들이 전화로 소개해 준 음악 감상실에 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동이 편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걱정을 피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바르게 서서는 앞을 보지 못했다. 옆으로만 걷는다면 희미하게나마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군인이셨고 동생의 이름은 상아였다. 춤추는 학생이었고 춤과 음악은 뗄 수 없는 관계라서 음악이 좋은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싶다고 한다.

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흥을 실었다가도 자신을 소개할 때는 분노를 담아내느라고 감정의 기복이 소란했다. 그런 순간을 차단시켜 주는 것은 음악실에 오시는 손님들이었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청각은 민감했다. 손님께서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거울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영업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또렷하고 분명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2년 전 5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광주가 군에 의해 완전히 함락 된 뒤로 현아는 거리에 나섰다. 항쟁동안에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귀가하지 못했다. 지쳐버린 엄마에게 근심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포성이 시가지를 떨게 하고 군부가 도청을 장악했을 때에야 외출이 허락 되었다.

아빠가 원하지 않은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왜 아빠의 소식이 두절 되었는지도 짐작만 할 뿐이었다. 동정이 궁금해서 나선 외출에 검문을 받았다. 신분증을 제시하였지만 절차는 몹시 까다롭고 복잡했다. 불안해진 현아는 아빠가 고위급 군인이시라는 신분을 밝혔다. 설마 춤이나 추는 여학생이며 아빠가 군인이신 자신을 시민군의 가담자로 지목하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뭔가 짐작되어지는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현아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아빠의 이름 석 자를 되풀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아빠를 몰라 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군장에 철모를 쓴 병사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자꾸만 자꾸만 한 쪽으로 한 쪽으로 자신이 밀려나고 있다는 상황만이 암흑처럼 불길해졌다. 그 때서야 현아는 엄마의 말씀이 생각났다. 아빠의 소신을 따르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국가의 역사에 반역하는 인물로 기록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기억을 더듬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그들은 아빠의 명령을 따르는 군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현아는 여러 차례의 수술로 돌아 가버린 시력이라도 간신히 건지는 기적을 안았다. 더 이상 춤을 출 수도 없었다. 사회적 인지능력도 부족한 상태 같았다. 음악실에 와서 좋다는 마음 하나로 시계와 과자부스러기를 맞바꿀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불편한 행동이었다.

 

재훈은 갑작스런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지금 반듯하게 서서 두서없는 진실을 토하고 있는 현아가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현아씨! 지금 어디보고 있어요? 나를 보고서서 이야기를 해야지요?”

현아의 곱고 보드란 볼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분노하던 의식을 잠시 접고 고맙다는 행동을 몸으로 휘저어 보였다. 그는 저렇게 경이로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을 그녀를 회상해 보았다. 쓰라린 비극이었다. 그녀가 섬뜩 하리 만큼 심한 눈깔 질을 하고 섰을 때에야 비로소 재훈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현아에게는 기쁨이었다. 다시 카나리아 같은 작은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여흥을 따라 리듬을 타고 있었다. 좁은 통로의 천정에 열려있는 안개등은 무대를 연출하느라고 찬란했다. 관객은 재훈 혼자였다.

 

홍등이 열을 지은 황금동의 거리는 무아지경의 밤을 맞는다. 옆걸음질을 쳐서 음악실까지 찾아올 생각을 하니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안전이라는 위태로움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다. 동생 상아가 음악실을 찾게 된다면 저렇게 고운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애잔한 연민이 쓰라린 목을 타고 재훈의 가슴으로 삼켜졌다. 그녀는 시력이라는 초점을 탈피하여 초월의 춤사위로 사뿐히사뿐히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청명한 노래 소리가 좁은 공간에 알맞게 차고 있을 때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은 건장한 청년이 현아의 손을 잡았다.

 

재훈은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 Black & White에 출근을 했다. 화려한 안개등이 천정에 가득하고 최고의 음색을 자랑하는 음향기기가 놓여 진 방으로 들어갔다. 마이크를 잡고 당일 오프닝 송으로 외로운 지정곡을 부른다.

20여 년 전에 차현아가 좁은 복도의 거울 앞에서 안개등 불빛을 받으며 초연한 춤을 추었던 그 노래다. 그 날 새벽에 눈물 머금은 상아가 나타나 중단되고 말았던! 

언론에서 광주민주항쟁이 거론 될 때마다, 스포츠뉴스에서 프로야구를 볼 때마다, 전직 대통령인 두 명의 범죄자를 기억할 때마다 그 사령관을 생각한다. 시민을 배신 할 것인가? 쿠데타를 일으킨 하극상의 침략군을 맞아 전쟁을 할 것인가? 어느 것도 시민의 희생을 배제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권력이라는 절대적인 영화를 거역한 대가가 너무나 혹독한 여름이었다.

그는 사령관의 딸을 잊지 못한다.        -끝-

                                 

   

 

아~! 광주여!

 

 

ㅡ그때에 요한이 예수께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르코9,3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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