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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이 올 때까지 [ 새 포도주 ]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1 조회수485 추천수0 반대(0) 신고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마르코 2,18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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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몇명의 사람들 보다 더 열악한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운 점들은 있지만 그 사람은 더 많이 있다고 하겠습니다.이같이 힘든 사람들을 국가에서는 월급을 주며 약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그러나 '업무 지향형'인 월급장이들이 있고, '인간 지향형'인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업무 지향형이란 맡은 업무를 다하는 사람입니다. 인간 지향형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보실핌을 받는 사람들의 상태를 배려해 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업무 지향형은 자신의 업무에만 힘써 일하지만 약자들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습니다.일이 바쁠 때 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업무를 마치기 위해 약자들에게 고통을 안겨 줍니다.

그런 업무 지향형은 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렇게 급히 서두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함께 하면 충분히 주어진 업무를 소화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급하게 모든 일들을 다해야만 자기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다른 남들이 하는 일까지도 맡아서 해치우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판은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사람들은 그대신에 그가 급히 서두름에 의해서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말은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질까요. 업무 지향형은 이렇게 약자들에게는 해가 되어지고, 월급장이 다른 동료들에게는 자기들이 해야할 일손을 줄여주니 좋은 평판을 듣게 됩니다.

국가에서 월급을 주지만 그런 보수를 수령할 자격은 기실 상실했다고 볼수 있는 업무 지향형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다른 동료들에게서 월급을 받아야 될 '무자격자'입니다. 약자들을 보살피라고 월급을 주는 것인데 도리어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희생을 치르게 하며 반대로 주위의 평판을 얻고자 합니다. 

사람은 악하지 않지만 약자들에게 희생을 안기면서까지 주변 동료들의 일손까지 맡으며 업무를 완성해 내려는 그 일은 악하며 죄를 뿌립니다. 많이 힘든 사람은 그 사람에 의해 고통의 시련을 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죄악은 하늘에까지 닿게 됩니다.동료들은 그에게서 얻는 이득이 있으니 땅은 그 사람의 편이 되었습니다.

악의 토양은 자라면서 사랑의 토양은 잃어 갑니다. 동료들도 당연히 '그 악한 자'의 편이니 사랑은 줄어들고 죄악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의 토양은 사랑의 토양을 점점 없애어 가게 됩니다. 사탄(악의 토양)이 어찌 사탄(악의 토양)을 쫓아 내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영으로 '사랑의 토양'이 자라나서 '악의 토양'을 물리친다면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사랑의 토양이)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악의 토양을 물리치는 것은 사랑의 토양이었기 때문입니다. [ 사탄이 사탄을 내쫓으면 서로 갈라선 것이다. 그러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태오 12, 26 - 28) ]

업무 지향형이 인간 지향형을 없애는 것은 죄악의 토양이기 때문이며, 인간 지향형이 업무 지향형을 물리치는 것은 사랑의 토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의 토양인 곳입니다. 업무 지향형의 사람과 그것을 좋게 평판내리는 동료들에 의해서 말도 하지 못하는 약자들은 고난의 수난을 당하면서 살아 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악을 드러내고 죄를 없애고자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 있습니다. 누가 이들의 편이 아니면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신 분께서 오셔서 '사랑의 토양'을 일구어 내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악한 자를 식별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비난과 멸시를 그들과 함께 겪어야만 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와같이 업무 지향형은 인간 지향형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 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명백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지향형인 악의 토양을 인간 지향형의 사랑의 토양에다 기워 집으려고 하니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업무 지향형인 악의 토양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멸시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악의 토양이 '힘(업무 지향형)'을 사용하는 곳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사탄의 나라입니다.

업무 지향형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약자들은 그들에 의해서 고통의 수난을 당하면서 사랑이 올 때까지 신음해야 합니다. 동료들 중에는 '자기의 가난한 사람'이 그 업무 지향형의 사람에 의해, 피해를 당하고 나서야 그때 비로소 업무 지향형이 모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사랑이신 새 포도주는 인간 지향형의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업무 지향형에게 사랑이 있다고 할수록 그리스도의 어린 양들은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약자들은 그 악한 자에게서 구원되어야 평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약함을 따뜻하게 배려해 주는 평화의 사랑이 올 때까지 우리는 신음한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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