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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자연적 생명의 성장에 해를 끼치는 죄(罪)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1 조회수1,014 추천수1 반대(0) 신고

 


초자연적 생명의 성장에 해를 끼치는 죄()

우리가 여러가지 유혹을 잘 역이용하면

오히려 영혼의 영적생명을 더욱 강하고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사욕편정 때문에 허약한 탓으로 인해

유혹에 쉽게 굴복하여 신앙생활에 큰 해를

입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더구나 그 유혹에 자신의 의지로 굴복할

때에는 영혼은 영적인 병을 얻게 되며 심할

경우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받아 영적 생명이

죽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죄(소죄. 대죄)

라고 합니다. 완덕으로 나아가는 정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죄를

짖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죄에 대해서

논하고자 합니다.

죄에대해서는 차후에 다른 코너를

마련하여 샅샅이 해부해 보기로 하고

우선 간단하게 살펴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논하는 죄는 가톨릭 윤리

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수덕상 필요한

실천적인 견해로 정화의 길과 직접

관계되는 점만을 간추려 이야기한다는 것을

참고로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인 죄에 대하여

계명을 알고도 자유로 범하는 것.

하느님 사랑하기를 싫어하여

하느님을 배반하고 멀리하는 것.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태도

(하느님께 대한 반항적 태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태도,

즉 하느님께 대한 반항적 태도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열심이

차차 식어가서 무관심해지고

냉담해 버리는 태도부터 심한 경우에는

하느님을 악마처럼 미워하는 태도에

이르기 까지 실로 천차 만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배반하는 영혼은 하느님을

 피하는 동시에 대부분 부당하게 다른

피조물에게 마음을 기울여 결국 속세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두가지의 태도,

즉 하느님을 배반하는 태도와 다른

피조물에게 집착하는 태도는 거의

같은 이치로 연계하여어느 한쪽을

버리면 어느 한 쪽에 집착하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죄를 지을때에 범죄의

주관적인 동기라는 점입니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죄로 판단되더라도

죄를 지을때에 자기의 행위가 죄 되는

줄을 랐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죄는 양심에 책임을 전가할 죄,

즉 주관적인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만일 어떤 사람이 금육날임을

알면서도고기를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 이유가 정당하지 않은 상태로 고기를

먹었다면 이것은 분명히 죄를 짖는것입니다.

죄지은 행동을 성찰할 때 자기행위가

죄가 되는 줄 알고 행동했는가 모르고

행했는가를 세밀히 판단해야 됩니다.

죄 되는 줄 알고 행동했다면 어느정도

고의로 행동하였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양심의 판단력을 기르고

워나가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유능하고 참다운 인격을 갖추어야 하는

그리스도 신자는 양심을 어둡게 하여

경솔하고 몰지각한 일상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이 너무

지나쳐 병적인 세심증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무의식 중에 본능적이나 단순한 실수로

저지른 죄는 너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죄가 될

가능성이 개재한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고의로 행동하였을 때 명백히

죄가 됩니다. 주관적인 죄는 양심에

책임 지을 죄가 못됩니다.

대죄(大罪)에 대하여

대죄는 계명이 중한 줄을 알고도

온전한 자유의지로 범하는 것이라고

문답에는 나와 있으나 대죄의 경중을

이해하려면 죄의 본질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죄의 본질

1. 하느님을 배반하고 모욕하며

멀리하는 것입니다.

2. 하느님을 슬프게 하고 마귀를

기쁘게 는 것입니다.

3. 천국을 멀리하고 지옥불을

그리워 하는 것입니다.

4. 자신을 더럽히고 이웃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몹시 미워한다면

가장 중한 대죄가 됩니다.

향주삼덕 중에 애덕은 신덕은 망덕보다

뛰어난 뜸 덕성인 만큼 그 애덕과

정반대되는 증오 즉 하느님을 미워함은

배교자의 배신이나 또는 절망적 자포자기

보다 더 큰 중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쨋든 신..애 삼덕과 완전히

배치(背馳)되는 세가지 패덕(悖德) ,

하느님을 미워하고 배신함과 절망적

자포자기는 정도의 차이는 약간씩 있으나

모두 하느님께 대한 무분별한 반역이기

때문에 다른 대죄들보다 더 큰 중죄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 일반적 대죄는

하느님께 정면으로 직접 거역하려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반대하면서

어떤 다른 피조물에 마음을 빼앗겨

거기에 집착하기 일쑤입니다.

일반적 대죄의 경중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죄와

육체적인 죄로 구별해야 합니다.

대체로 정신적인 범죄는 짐승과 같은

육체적 본능(식욕이나 성욕)관여 없이

사람의 정신이 스스로 죄를 범합니다.

특히 칠죄종 중에 첫째인 교오와 분노,

질투 등은 모두 정신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인 성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신적 죄는 육체적 죄보다

더 큰 죄가 된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심한 욕정의 죄인들,

예컨데 간음한 여인, 돌아온 탕자, 회개한

마리아 막달레나, 강도 같은 자들에게는

언제나 자비와 관용을 베푸셨으나 욕정적

죄는 없으나 신앙을 가장하여 교만하고

완고하며,항상 질투와 증오의 불길에

싸여있던 위선자들인 바리세이파

사람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서하지

않으시고 강력하게 책망하셨던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죄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오로는 음행의 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악한 자는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잘못 생각하면 안됩니다. 음란한 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나 약탈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고린 전 6,9) 하느님께서는 남을

랑하라는 계명을 중대하게 침해한

죄를 음란한 죄보다 더욱 미워하시고

벌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죄의

경중 판단에 있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욕정적 죄는 인간을

동물 이하로 추하게 전락시키는 죄이므로

자존심에 거슬리고 창피스럽다는

생각에서 내심으로 지은 정신적 죄보다 

더 큰 죄인줄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대죄는 언제나 그 종류를 불문하고

언제나 강력하게 피하고 바리세이인들처럼

교만과 악의와 증오의 대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적인 죄는 여러가지 이유로

피한다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수없이

많은 대죄를 짖게 되는결과를 가져오게

만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 특히 수덕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가능한 감정적인 판단을 피하고

우리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소죄(小罪)와 단점(불완전)에 대하여

소죄는 대죄처럼 하느님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부당하게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

정을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대죄는 천주께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완전히 이탈하여하느님의 원수인 사탄의

진영에 가담하는 것이지만 소죄는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탈락해 버리지는 않지만 도중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혹은 길옆은

유혹물들 에 잠시 정신을 파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려는 사람이 휴식한다고 길가에서

엉뚱한 장난을 하거나 잠을 잔다면 날이 어두워

을 오를수 없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소죄라도 가벼이 보아서는 안됩니다.

소죄가 되풀이되어 만성화하면

결국대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마치 감기나 소화불량

혹은 두통이나 현기증 같은 것은

대단한 병은 아니지만 자질구레한

병이라도 날마나 되풀이 되고

방치하여 만성화 되면 중병으로

옮아 가거나 때로는 생명도 위독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코 예사롭게 넘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념해야 합니다.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도

자주 쉬거나게으름을 피우면 유혹에

정신을 팔리기 쉽습니다.

또 구부러진 길을 가는데 있어 정신을

차리지 않고 딴전을 피우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또 다른 장애물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소죄라도 단연 피해야 하며 특히

습관적으로 범하기 쉬운 소죄의 번 수를

줄여 나가야 합니다. 선천적인

성격탓으로 성격이 급하거나

화를 내기 쉬운 탓으로 어쩔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소죄는 할수 없겠지만

죄가 되는 줄을 알면서도 자유로이

범하는 소죄들은한 가지씩 줄여

나가지 않으면 조만간 대죄를 짖게

될것이고 이 대죄는우리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소죄를 한 순간에 없애

버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의 일생을 통하여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는 지루하고 괴로운

수련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덕의 고원에 서서

하느님과 일치할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천주님과의 일치 그것보다

더 고귀한 인생의 목적을 생각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단점(불완전)

사람의 단점은 두가지가 있는데

성격탓인 경우와 문자그대로

자신이 주위를 게을리한 불완전한

단점(약점)인 것입니다.

성격탓으로 무분별하게 또는

경솔하게 저지르는 소죄는 아무리

가볍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이상 죄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약점 때문에 그러한 것은 계명이 아닌

어떤 권고 같은 것을 그대로 행하지 않거나

혹은 행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분개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어느정도 화를 내는 것은 일종의

반사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은 성인들도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웠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길가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기가 자선으로 1000원을 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고, 또 그렇게 하라는

마음의 자극을  받았거나 양심의

소리를 들었더라도 500원을 주었다면

그것을 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조력성총)으로

'좀 여유가 있으니 간단한 기도를

바치든지 작은 희생을 드리라'

등의 양심의 권고를 느끼면서도

거절한 경우, 역시 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약점인 것입니다.

인간의 약점이나 허물은 일생을 두고

노력해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천국에 가서야 비로소 온전히

벗게 되므로 천국의 완전함에

도달하려는 열망을 가진 영혼은

남의 약점도 이해하고 잘 인내하며

주변의 이웃들이나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가운데

자연겸손과 친절의 덕성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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