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주간 수요일]손을 뻗어라.(마르 3,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2 조회수1,395 추천수1 반대(0) 신고

 

 

 http://cafe.daum.net/roma3/HgBR/1450 

2020122

[연중 제2주간 수요일]손을 뻗어라.(마르 3,1-6)

    

 

소년 다윗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골리앗을 쳐 이겨 이스라엘군이 승전한다. (1사무 17,32-33.37.40-51)

그 무렵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47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화답송 시편 144(143),1.2.9-10(1)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악독한 칼에서 구하시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슬퍼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마르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17,32-33.37.40-51)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47)

 

사무엘서 상권 17장 47절은 목적절을 이끄는 '키'(ki)로 시작되는데, 전쟁에 모인 무리들이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통해 알게 될 내용을 나타낸다.

 

여기서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 '뻬'(be)가 사용되면서  주님의 구원은 칼이나 창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내용은  사무엘서 상권 14장 6절의 요나탄의 신앙고백과 맥을 같이 한다.

 

"자! 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전초 부대로 넘어 들어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승리하시는 데에는 수가 많든 적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윗과 요나탄은 모두 주님의 구원이 객관적인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개입과 역사하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에 해당하는 '키 라이흐와 함밀르하마' (ki laihwa hammilhama; for the battle is the LORD's)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 for)가 등장하여, 주님의 구원이 세상적인 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를 나타낸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는 말은 '전쟁'('함밀르하마'; hammilhama; the battle)승리와 패배 여부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려 있다'('라이흐와'; laihwa;  is the LORD)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주님의 계약 궤로 인하여 필리스티아의 여러 도시들이 재앙을 받은 사건(1사무5장), 사무엘을 통한 필리스티아와의 전쟁 승리(1사무7장),  사울을 통한 암몬족과의 전쟁 승리(1사무11장),  요나탄을 통한 필리스티아와의 전쟁 승리(1사무14장) 등은 모두 전쟁이 주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입증하는 사건들이었다.

 

말하자면 본문은 전쟁의 결과가 인간의 노력이나 군사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는 문장은  사무엘서 상권 17장 46절에 대한 반복인데,  '너를'이 '너희를', '내 손에'가 '우리 손에'로 보다 확대되었다.

 

'넘겨 주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말이 사무엘서 상권 17장 46절에는 '예싹게르카'(yesaggerka; will hand you over; will deliver you), 사무엘 상권 17장 47절에는 '웨나탄 에트켐'(wenathan ethkem;  and he will give all of you; and he will give you)으로 나온다.

 

'예싹게르카'(yesaggerka)'닫다', '폐쇄하다'라는 뜻의 원형 '싸가르'(sagar)의 강조형필리스티아 사람을 지시하는  2인칭 대명사 접미어 '카'(ka)결합된 것으로서  직역하면 '그가 너를 반드시 닫으실 것이다'가 된다.

 

이 동사에 '내 손에'라는 뜻의 전치사구 '뻬야디'(beyadi;  into my hand)가 결합되어 '주님께서 다윗의 손안에 필리스티아 사람을 가두어 놓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일반적으로 '누구의 손에 붙이다(넘겨 주다)'라는 표현에는 사무엘 상권 14장 10절과 17장 47절처럼 '주다'라는 뜻의 '나탄'(nathan) 동사가 사용되는데,  사무엘 상권 17장 46절처럼 '싸가르'(sagar) 동사를 사용한 것은  필리스티아 사람(골리앗)의 목숨이 완전히 다윗 자신의 손에 맡겨져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다윗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근거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확신하는 표현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다윗의 확신이 사무엘서 상권 17장 47절에서 확대되어 다윗과 필리스티아 사람의 싸움이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 전체의  싸움이라는 사실로 넘어가고, 다윗 개인의 구원이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적 구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골리앗은 필리스티아의 대표이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을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필리스티아인들은 그들의 용사인 골리앗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하자 도망을 쳤던 것이다(1사무17,51).

 

다윗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승리케 하심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필리스티아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3,1-6)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5)

 

여기서 '노기'에 해당하는 '오르게스'(orges; anger)의 원형 '오르게'(orge)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일반적으로 감정적 분노를 나타내며, 성경은 이런 종류의 감정 표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야고1,20).

 

그러나 이 단어가 마르코 복음 3장 5절처럼 악(惡)에 대한 신적(神的) 반응으로서 언급되면, 이것은 하느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 분노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쌓아 놓았다가 부어지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진노(indignation)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로마2,5; 묵시6,17).

마르코 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님의 분노 역시 공의의 분노이다.

 

이것은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과 결탁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려는 사실 때문이 아니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몹시 슬퍼하시면서'로 번역된 '쉴뤼푸메노스'(syllypumenous; being grieved; deeply distressed) 원형 '쉴뤼페오'(syllypeo)'함께'라는 뜻의 '쉰'(syn)'슬퍼하다','괴로워하다'라는 뜻의 '뤼페오' (lypeo)가 결합되어,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또는 그와 함께 '깊이 슬퍼하다' 또는 '고뇌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당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대한 편협한 해석에 연연하여 당신을 감히 판단하고 단죄하려는 바리사이 무리들에 대해서 공의로운 분노를 품으시면서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은 간단하다.

'손을 뻗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자신의 손을 '뻗어'  순종하자 '다시 성하여졌다'는 즉각적인 결과가 나왔다.

 

특히 '다시 성하여졌다'라고 번역된 '아페카테스타테'(apekatestathe; was restored)의 원형 '아포카티스테미'(apokathistemi)는  '이전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다'(히브13,19)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사도1,6).

 

따라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의 첫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이 회복은 첫 창조보다 더 나은 상태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 궁극적인 상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주님 앞에 나아오는 이들이 모두 온전하게 회복되어 주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영광스럽게 살게 될 것이다.

 

오늘 마르코 복음 3장 2절에 나오는 데로, 바리사이들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하여 자신들이 따르는 규정들보다  당신 자신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단죄하기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의 시제가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보여주는 미완료의 시제로 기록된 점을 볼 때, 마르코 복음 2장 23~28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며 당신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곡식을 자른 행위를 정당화시킨 사실을, 바리사이들이 공개적인 석상에서 드러내어 율법을 어긴 자로 고발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