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3 조회수1,236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Lift up your heads and see; your redemption is near at hand.
(Ps.25 : Lk.21.28)
 
 
 
제1독서 말라키 3,1-4.23-24
복음 루카 1,57-66
 
 
미국의 한 동물원에서 하마를 사육할 젊은 조련사를 고용했습니다. 선배 조련사는 하마가 잘 자라게 하려면 먹이를 너무 많이 주지 말라고 했지요. 하지만 새로 고용된 젊은 조련사는 이 말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선배 조련사를 의심했지요.

‘아마도 내가 자기보다 더 훌륭한 조련사가 될 것을 걱정해서 이런 말을 했을 거야. 그 말을 듣지 말고 열심히 먹이를 줘서 내가 더 훌륭한 조련사임을 보여야지.’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는 선배의 말을 무시하고 하마가 잘 자라도록 최대한 많은 먹이를 주었습니다.

두 달 후 신입 조련사는 하마가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비해 선배 사육사가 먹이를 별로 주지 않는 하마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두 마리 하마가 체질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 조련사는 후배에게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자신과 같이 먹이를 잘 주지 않으면서 키우라고 충고만 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선배가 키우는 하마는 신입 조련사가 키우는 하마보다 훨씬 많이 자랐습니다. 궁금증을 견디다 못한 그는 선배에게 자신의 하마가 잘 자라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가 사육하는 하마는 먹을 것이 전혀 궁하지 않으니까 잘 먹지 않아서 안자라는 걸세. 하지만 내가 키우는 놈은 먹이가 늘 모자라니까 매끼마다 던져 주는 먹이를 아주 아끼고 잘 먹어서 무럭무럭 자란 거지.”

모든 것이 채워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족함 가운데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게 잃을지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충분히 행복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도 큰 기대 속에서만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게 이미 와 있는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결국 하느님의 뜻이 최고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우리들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복음에서 접하게 됩니다. 탄생 후 여드레 만에 할레를 받게 됩니다. 이 할레식은 이름을 짓는 명명식이 동반되는데, 그 이름은 어떤 특별한 사명이 부여되지 않는 한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전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사벳의 아들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로 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엘리사벳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말합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사실 아버지 즈카르야는 천사로부터 이 모든 사정을 미리 들었지만 믿지 않아서 귀머거리가 되었지요. 그러나 엘리사벳은 성령을 통해서 이 모든 사정을 알았고, 하느님을 굳게 믿어 요한이란 이름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도 이 하느님의 뜻을 따랐을 때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 인해서 원하는 아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아들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역시 하느님의 뜻은 최고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미에 가시가 있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나는 가시에 장미가 있어서 고맙다.(알폰스 카)




부족함을 통해 배운 것(‘행복한 동행’ 중에서)
 
말썽꾸러기 아들을 둔 미숙 씨는 학교로 나오라는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공부를 못하면 얌전하기라도 해야지. 당신 아들 때문에 마음 놓고 애를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요!” 오늘은 또 누구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한구석에서 벌을 서고 있는 아들과 반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상대방 아이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고개를 잔뜩 조아리며 천천히 다가섰는데 갑자기 상대방 아이 어머니가 미숙 씨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따뜻한 위로였다.

“어떻게 우리 아이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제 심정까지 헤아려 주시나요.”

그러자 상대방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다 우리 아이 덕분이에요. 제겐 아이가 더할 나위 없는 스승이랍니다. 제 아이가 공부를 정말 잘했다면 전 공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을 싫어했을 거예요. 제 아이가 장난도 치지 않고 얌전했다면 말썽 피우는 아이들을 한심하게 여겼을 테죠. 하지만 우리 아이도 한없이 부족하기에 제겐 세상 그 어떤 아이도 사랑스럽게 보인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말썽을 피워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제겐 편견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니까요.”

미숙 씨는 순간 눈물이 솟았다. 그리고 자신 곁에 서 있는 아들의 빛나는 가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No. He will be called John.”
(Lk.1.60)
 
 
 
Namaste - Bill Cunliffe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