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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2 조회수59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 32주간 화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한나라당이 한미 FTA 협정 동의안을 강행 상정하려고 하고 있으므로 여야 간에 대립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은 참으로 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취업을 못하여 아우성이고, 직장인들은 자리가 불안하여 좌불안석이며 실물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전혀 없어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기업의 부도건수가 급증하고, 그 뿐 아니라 미국의 금융위기가 재연될 조짐이 감지되고 미 자동차 업계는 지금 도산 직전이며, 미 최대 가전 유통업체가 파산하고 국내 일부 자동차 업계도 감산을 하는 등 강건너 불 구경 할 때가 아닙니다. 

할부금융사 등 제2금융권은 자금 경색이 갈수록 심화되어 정부의 처분만 바라고 있고 그동안 IMF 당시 구조조정으로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은행마저도 건전성이 위협을 받고 있으며 국제신용조사기관인 피치는 모든 금융권에 대하여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한 등급씩 하향조정하여 제반 여건이 위기상황임에도 한미 양국 모두가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되는, 우리 국회가 비준하였다 하여도 현재는 아무런 실효도 없는 FTA 비준 동의안을 강행하려는 것은 국론을 한 곳으로 집중하여도 부족할 판에 국론만 분열시키는 한심한 처사입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그때에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는 나병 환자들을 치유해 주시는 오늘 복음을 대할 때마다 소록도가 생각납니다.
소록도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늘 애잔한 마음이 생겨나므로 일부러 서남해안의 그 먼 곳까지 자주 찾아가고 하였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처음 뵈었을 때도 가족과 함께 소록도를 찾아가는 길에 찾아 뵌 것 같습니다. 소록도에서 그 분들을 생각하며 지어봤던 삼행시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 소망하나 간절한 소망하나 간직하고
록: 록동항 건너와 눈물로 한숨짓는 님들
도: 도와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오, 주여! 그들의 소망 들어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 103위 성인 시성식을 축복하기 위하여 1989년 10월에 내한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소록도를 방문하여 그 분들이 빨리 쾌유하기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불치의 병으로 고통 받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오늘 묵상을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을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로 제목을 선정하고 있지만 저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에 관점을 두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말씀도 어느 부분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의 목적도 어쩜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듯 사회에 기여하고 인격수양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건전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지금은 중세 마녀사냥 시대도 아니므로 어느 누구도 그것까지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며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방향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완치를 못하는 한센 병을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치유를 하셨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그대로 믿어야 할까요? 오늘과 같은 이적은 복음을 널리 알리기 위한 복음서 기자의 열정의 산물이며 또 이를 통하여 저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였을 것이므로 그 의미가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의심하지 말고 어떤 내용이던 무조건 문자 그대로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그런 가르침은 맹신자만 양산할 것이며 오늘 복음의 의미는 바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에 함축된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틀 전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루카 17,6)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믿음만 있다면 그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 라는 말씀이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했던 것은 이 땅에 하늘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해 주었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성공적인 투병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루카 11,9) 말씀도 모두 같은 말씀일 것입니다.

아마 오늘 치유 받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았던 아홉 사람은 또다시 재발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아서 또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은 생활 습관의 잘못에서 대부분 발병되므로 어떻게 일시적으로 치유되었다 하여도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말씀하신 것은 당시 사제들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알려 주라는 뜻이며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표현이 상징하는 것은 저희들이 가장 천대하고 무시한 사람이 오히려 하느님께 늘 감사하며 겸손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며 반대로 아홉 사람은 잘된 것은 자기 탓이고 못된 것은 조상 탓으로 돌리는 요즘 우리의 일부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은 몸은 비록 못쓸 병에 걸렸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정결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출신 성분도 가장 하층인이고 더군다나 겉모습도 흉물스러운 몰골에 모두가 기피한 인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늘 이렇게 출신지역과 성분 등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으므로 이런 우리의 모습도 오늘 복음을 통하여 이를 반성해야 될 것으로 묵상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다 하셨습니다.
지금 고통 받고 병상에 누워 계시는 모든 분들도 모두가 용기를 잃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투병생활을 하시도록,
또한 경제위기로 절망의 늪에 빠진 모든 분들도 희망을 가지고 극복해 나아가면
희망의 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고
저희 또한 겸손된 마음으로 살아가며 그 아픔을 함께하는 자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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