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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7 조회수43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2008년10월27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어제 연중 30주일 미사는 저희 본당 주임신부님은 피정중이어서 글라렛 수도원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으며

보기드문 감동적인 강론이었기에 묵상에 앞서 강론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래전 수도원 생활을 할 때에 신부님과 어느 수사분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이유인즉

그 수사는 외출하고 돌아오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그 리어커를 끌어 주느라 수도원 기도시간에 늦게 되었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에게 기도드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있냐며 그 수사를 몰아부쳐고

그 수사는 여기서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었지만

자기는 그 시간에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을 도와주고 왔다며 논쟁을 하였다 합니다.

 

신자들은 신부님의 성향부터 알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파냐 좌파냐, 보수냐 진보냐 하며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는 우파, 좌파, 보수, 진보도 아니고 오직 예수파라고 하였습니다.

또, 개신교 신자들이 너희들은 마리아교냐 예수교냐 하며 공격하면

우리는 오직 사랑만을 믿는 교라고 답하라 하였습니다.  

 

이어서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교회가 소외된 이웃을 잊어버리면 교회도 없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교회에 오는 것은 교회가 아닌 허상을 보고 교회에 오는 것이라고 강론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형식과 절차를 가지고 늘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형식과 절차는 본질을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며 본질을 모르고 형식과 절차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서울에서 부산을 내려가며 왜 내려간지도 모르고 내려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실제 이런 일이 있을까를 생각하지만 부모를 따라 내려가는 어린 아이가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이 어린 아이는 부산을 가기 위해서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으며

그 이유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회당장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지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알고 계셨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안식일을 지켜라 하였을 것이며

또 다른 경우에는 오늘처럼 당신 스스로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르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게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말씀이 서로 충돌된 경우가 있으며 그러기에 성경은 악마도 인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은 곧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정신에 맞게 말씀을 이해하여야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진리의 말씀이고 

오늘 회당장처럼 율법을 잘못 이해하면 오히려 우리 삶에 독이 되고 있음을 기억하여 

말씀을 묵상하는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오늘 회당장처럼 일부에서 말씀을 잘못 이해한 대표적인 말씀으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위 말씀이 먼저 떠 오릅니다.  

 

진리의 삶을 살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위 말씀을, 

'예수님의 얼과 말씀과 행동은 곧 진리다'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 한다고 떠들고 있으니 애꿎은 우리 가톨릭까지,

하긴 우리 가톨릭 안에서도 일부 그런 생각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리스도교 전체가 도매금으로 지금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친부모가 결코 될 수 없듯이 백성이 없으면 왕도 황제도 없는 것이며

사람이 없으면 하느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는 것이며 이것이 있기에 저것도 있는 것이므로

이것과 저것은 바로 하나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굳이 인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이 더 확실하게 이해되고 있으며 

어제 계명으로 알려주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도

결국 너와 나는 하나라는 뜻으로 뒤늦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본질을 꿰뚫고 계신 예수님은 안식일도 결국 인간을 위한 것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묵상은 늘 자유스럽지만 글의 한계성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안식일의 근원은 저희 교리적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창조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예수님이 생각하신 안식일은 인간을 위한 안식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사고의 대전환을 예수님은 이미 이를 주장하셨지만

인류가 이를 이해하는데는 무려 1500년간의 암흑기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에 개화된 것 같습니다.

 

안식일은 노예와 종에게 제도적으로 휴식을 부여하기 위하여 율법으로 정하여 모두가 따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느 경우에도 안식일을 지켜라 하고 있으니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였을까요?

아니 위선자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자들이기에

예수님은 오늘도 위선자들에게 치를 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자들이 악용하여 만든 국가보안법의 죄목인 안식일 위반죄와

그 선동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한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그 누구보다 한 목소리로 주장하여야 할 기독교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더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안식일은 아니지만 휴식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의미인 주일에

기독교인들은 국가보안법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애통해 하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 모순적인 행위부터 먼저 반성하여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여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옥살이를 하신 많은 분들의 신원을 복권시켜 드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임도 묵상해 봤습니다.

 

아빠 하느님!

성자께서는 국가보안법인 안식일 위반죄와 그 선동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재판이 명백하게 잘못되었음을 저희 모두가 인정하여 성자의 따르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주님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성령님을 보내 주시어 그들이 하루빨리 미몽에서 깨어나도록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을 분열시키는 악법이 사라지게 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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