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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주기도의 비밀 - 이 신심의 적들, 기적들
작성자장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6 조회수540 추천수2 반대(0) 신고

아홉 번째 장미꽃

 이 신심의 적들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회의 발전을 막는 것은 다른 영혼들에게 불공정한 것이며 실로 부당한 행위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묵주기도회를 업신여기고 어두운 길로 접어든 많은 사람들과 이를 무너뜨리려 찾아다니는 비열한 사람들을 엄격하게 벌하셨습니다.

많은 기적으로써 거룩한 묵주기도를 인정하는 당신의 인장을 찍어주셨고 묵주기도를 인정하는 교황의 칙서가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룩한 묵주기도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유 사상가들과 종교를 경멸하는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비난하거나, 아니면 묵주기도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혀는 지옥의 독에 감염되었고 악마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경건한 것, 즉 주님의 기도와 천사의 인사(성모송),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와 죽음과 영광의 신비들을 비난하고 단죄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무도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비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는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이단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도 심적으로는 실제적인 이단 상태에 자주 떨어지곤 하여 때때로 몇 사람은 묵주기도와 그 신비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회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참된 신앙심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사람들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착실한 가톨릭 신자라면 자모이신 교회가 묵주기도회에 허락한 크나큰 많은 은사들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묵주기도는 죄인을 치유하고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감싸주는 확실한 방법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묵주기도회에 가입하는 것을 말리는 것은 영혼들의 구원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자신의 시편 해설집에서) 성모님을 경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 중에 멸망할 것이며 단죄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모님을 경시한 죄값이 이러하다면 다른 사람들을 그 신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에게 마련된 책벌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열 번째 장미꽃

 

기적들

 

도미니코 성인이 카리카소에서 묵주기도를 전파하고 있을 때 한 이단자가 그의 기적들과 거룩한 묵주기도의 열 다섯가지 신비를 놀림감으로 삼았고, 이로인해 다른 이단자들이 회개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징벌로써 하느님께서는 1만 5천이나 되는 악령이 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는데 악령들린 사람의 부모는 그를 도미니코 성인에게 데려와서 악령으로부터 구해주기를 청했습니다. 성인은 기도를 시작하면서 거기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그와 함께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모송을 한 번 바칠 때마다 성모님은 그 이단자의 몸에서 마귀 백마리씩을 새빨갛게 타고 있는 숯불의 형태로 뛰쳐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악령의 사슬에서 풀려난 후에 전의 오류를 공공연하게 끊어버리고 회개하여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패의 여러 사람들도 이 사람이 받은 징벌과 묵주기도의 능력에 크게 감동을 받고 회개하게 되고 묵주기도회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학덕이 높았던 프란치스코회의 카르타제나는 다른 여러 저술가들과 마찬가지로 1482년에 일어났던 이상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야고보 스프렝거와 동료 수사는 거룩한 묵주기도 신심을 전파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였으며 쾰른 시에서 묵주기도회를 세웠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떤 유명한 두 사제가 그들이 묵주기도 전파를 통해 대단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질투하였습니다. 이 두 사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신심을 비난하였고, 자기들의 유창한 언변과 명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묵주기도회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설득시켰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나쁜 목적을 달성하려고 묵주기도를 반대하는 특별 강론을 준비하고 그 다음 주일 강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강론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그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다리고 있던 신자들 중 몇 사람이 그를 찾아나섰는데 사람들은 그가 이미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제는 이 죽은 사제가 전적인 자연사라고 확인시키고 그 사제가 계획했던 강론을 이행하려고 또 다시 다른 날을 잡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묵주기도회를 소멸하려고 마음먹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강론할 날이 다가와 강론 시간이 다 되자 손발을 움직이거나 강론할 힘마저 빼앗아버리는 중풍으로 내리 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드디어 자신의 잘못과 동료의 죄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조용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모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다면 그가 이전에 묵주기도를 반대하던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열성으로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는 성모님께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청하였고, 또 성모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즉시 병이 낫게 되자 그는 거룩한 묵주기도의 옹호자를 돌려 세우려고 했던 박해자 사울처럼 회개하여 묵주기도를 지지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전 죄과를 알리고 공공연하게 사과를 했고, 대단한 열성과 웅변으로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놀라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날 자유 사상가들과 지나친 비평가들은 내가 이 책에서 한 이야기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이 이야기는 매우 훌륭한 현시대의 작가들이 기록한 것을 옮겨놓은 것 뿐이며, 부분적으로는 조금 전에 인용한 책, 즉 존경하올 안토니오 토마스 수사 신부께서 쓰신 ‘신비스런 장미나무’에서 끌어낸 것에 불과 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에 대한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에 있는 이야기에 관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이성에 반대되지 않고 훌륭한 저자들이 쓴 이야기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훌륭한 저자들이 권하는 것으로써 어떤 때 그것들이 이상하더라도 이치에도 믿음에도 결코 반대되지 않는 경건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경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너무 쉽게 믿어도 안 되고 혹은 너무 비판적이어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 가운데서 중용을 지키므로써 바로 거기에 진리와 덕행의 요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애덕이 믿음이나 미풍양속에 반대되지 않는 모든 것을 믿도록 우리를 인도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 7).

이와 같은 처지에서 교만은 진실성이 증명된 거의 모든 이야기로 그것들이 성서에 있지 않다는 핑계로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악마의 올가미입니다. 성전을 부정했던 과거의 이단자들은 그런 올가미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지나친 비평가들도 실제적으로 함정에 떨어지지 않는다하지만 역시 위의 경우처럼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나 믿으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 자신의 교만한 정신과 독자적 자존심 외에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

 

 

성부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지금 이 세상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

모든 민족들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살게 하시어

그들을 타락과 재앙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일찍이 마리아로 불리었던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시여,

저희의 변호자가 되어 주소서. 아멘.

 

 

성 루도비꼬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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