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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1 조회수1,233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하늘 나라의 열쇠를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여러 제자들도 있었지만 왜 베드로 사도가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복음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돼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예수님께서만 아실 겁니다. 우리는 그저 상상과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예전에 다른 글에서 어떤 이유를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때 언급했던 내용과 달리 다른 면에서 한번 묵상했습니다.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오셨습니다. 죄인은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짓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원죄의 속성이 우리의 유전자 DNA 속에 있을 겁니다. 이게 있는 한 우리는 죄의 속성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도 흙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흙 자체도 부스러지기 쉬운 나약한 재료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강철로 만약에 아담을 지었더라면 어땠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역설적인 표현을 했을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인간적인 성향은 어떤가요? 다혈질인 성격에다 충동적인 성격도 있습니다. 어쩌면 고지식한 면도 있습니다. 변덕도 심합니다. 어디 인간적으로 좋은 성격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왜 이런 성격의 제자에게 우리 교회의 반석으로 예수님께서 세우셨는지에 대해서는 딜레마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지금 언급한 베드로 사도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약함그 자체입니다. 나약이라는 게 단순히 힘의 강도를 측정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라고 보기보다는 내면의 세계가 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충동적인 성격도 왜 일어나겠습니까? 이성에 의해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에 의해 자신이 휘둘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은 우리가 말하는 단순한 인간의 감정을 넘어서 있는 영역입니다. 이런 감정은 자아의 본질에 의해 좌우됩니다. 결국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내재하고 있는 자아에 의해 인간이 강하다 또는 약하다라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면에서 나오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겁도 많고 또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언제라도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하며 호언장담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의 안위에 위협으로 다가오는 순간에서는 비겁함을 보여줬습니다. 더군다나 장부의 몸으로서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만 그럴까요? 예외적으로 아주 특출하게 강인한 사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 인간 자체가 나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는 복음에서도 나오지만 남다른 인간적인,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물입니다.

 

그가 언제 처음으로 울었던가요? 바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 닭이 울기 전에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 때문에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한번 잘 생각을 해본다면 그냥 시쳇말로 걍 까면 됩니다. 한마디로 무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배신하는 마당에 그런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을 보면서 예수님의 눈동자에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 마치 거울에 반사되어 자신의 눈으로 스승을 배반하였다는 게 자신의 양심 가운데 꽂혔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양심에 가책이 될 겁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나약한 사도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예수님과 스승과 제자로서 쌓여진 사제지간의 정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 겁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나약한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여린 성질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모질지 못합니다. 여린 그 마음 밑바탕에는 하느님의 근본 속성이 숨어 있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도 분노에 차서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여 재앙을 거두신다고 하시고 또 후회를 하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이 바로 마음이 여려서 그렇습니다. 여리시기 때문에 자비하실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찢어지는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자비로운 마음이 있어야 남에게 자비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약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런 베드로 사도의 성격과 마음이 그 많은 연약하고 나약함을 다 덮을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연약함이 오히려 예수님과 이심전심으로 통할 수가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던 나약한 사도가 성령강림이 된 이후의 모습에서는 이런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지 않습니까?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였다면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위대한 사도로 폭풍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나약하고 겁 많고 스승을 배신했던 사도가 나중에 순교할 때는 담담히 장렬하게 그것도 자신은 예수님처럼은 죽을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이 동급으로 여겨질까 봐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거꾸로 순교하고자 청한 모습을 보면 한 인간으로서 정말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토록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에서 결국에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던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저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여주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비록 처음에는 나약하고 배신도 하고 비겁한 한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성령이라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고 나면 누구나 사도처럼 전혀 다른 위대한 사도로 변화가 된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하나의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처럼 연약함 속에서도 하느님이 작용하시기만 하면 누구나 사도처럼 위대한 복음의 일꾼으로 하느님 역사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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