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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2 조회수1,404 추천수1 반대(0) 신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사회상규입니다. 어떤 사회에서 그 사회 공동체가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규칙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히 법학에서 많이 나오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사회상규 가운데 신뢰가 있습니다. 신뢰는 하나의 믿음과도 같습니다. 흔히들 신뢰는 쌓기는 힘들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이런 법칙은 도로교통 법규에서도 많이 적용이 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느 정도에서 속도를 내고 달려오는 차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 묵시적으로 신뢰를 합니다. 당연히 운전자는 횡단보도 이전에 신호등 황색 등이 점멸한 후에 적색 신호로 바뀌면 멈추어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제동을 하려고 할 겁니다. 보행자는 당연히 운전자가 이런 걸 지킬 것이라고 신뢰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신뢰가 무너진다면 보행자는 불안에 떨며 달려오는 차를 주시하면서 조심스럽게 횡단을 할 겁니다. 이런 신뢰는 당연히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사회의 일반 사회상규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이 우리의 신앙에도 적용이 되는 걸 오늘 복음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치고 어느 누구도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허물을 벗어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의 허물에 대해서 용서를 해 주십니다. 그 용서에 대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라 부도가 날 수가 없습니다. 1독서에도 나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뜻하는 바를 이루고 또 그 사명을 완수하신다고 분명히 천명하셨습니다. 사람의 말은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용서도 여러 종류의 용서가 있을 겁니다. 용서는 갑과 을의 관계인 주종관계, 상하관계에서 하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닐 거라고 보여집니다. 상대의 허물을 용서할 때 단순히 용서한다고 생각했을 때 비록 잘못은 상대방이 했지만 자신이 용서하는 위치가 상대보다 우위에 서서 용서를 한다면 진정한 용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용서를 한다고 하는 인식을 가지는 것보다 어쩌면 상대의 허물을 눈감아 주려고 하는 게 진정한 용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이지만 조금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눈감아 준다는 것은 허물을 감싸고 포용해준다는 그런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렇게 하면 용서를 했다는 인식이 덜 할 것입니다.

 

용서를 하고도 용서를 했다고 하는 인식이 남는 것은 순수한 의미에서는 완전한 용서가 아닌 불완전한 용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다른 변수에 의해 그때 한 용서가 후회가 되는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변수에 의해 용서의 의미가 퇴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전한 용서가 되려면 그런 조건조차도 없어야 할 겁니다. 세상에서는 허용하지만 신앙 안에서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눈감아 준다는 것은 용서 이전에 이미 그 허물에 대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자신과 하는 무언의 약속과도 같을 수가 있습니다. 그냥 상하관계, 우월관계 같은 관계에서 하는 용서는 한마디로 자칫 잘못하면 조건부 용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용서 이후의 변수에 의해 용서했던 그 마음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눈감아 주는, 다시 말해 상대의 허물을 못 본 체 하는 게 더 고차원적인 용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용서는 하느님께서 어떤 용서를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의미의 용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용서를 하신다면 설령 우리와 같은 범부가 하는 용서를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용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으려면 우리 자신도 남을 용서할 때 앙금조차도 남지 않는 용서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면 우리 또한 우리의 허물을 씻기 위해서는 당신께서 하신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를 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만이 우리 또한 불완전한 용서가 아닌 완전한 용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있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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