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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4)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석 자리 반이라는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1,17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4년11월5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ㅡ필립비서3,17-4,1;루가16,1-8ㅡ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석 자리 반이라는데!

 

 

내가 활동을 열심히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의 하소를 들어주고 살았다. 짧게는 간단한 것 부터 길게는 다큐멘터리 뿐만 아니라 몇 년씩 동행을 하는 강행군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삶이 그들에게는 상담이 되거나,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좋은 연결고리가 되어 어떤 실마리가 되기도 하였지만 나에게는 함정이 되어 곤경을 면하기 어려운 참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찾아오는 이는 늘어갔고, 나의 입은 그만큼 절명한 비밀 유지를 해 주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경솔한 언행으로 주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는 것 조차 조심을 하는 마음이었고, 술 같은 것이나 나를 감정에 빠뜨릴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차단하는 삶을 살아야했다.어쩌면 사사로움에서는 사제의 몫보다 더 큰 소명의식을 가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활동을 그만 두기로 마음먹고 주변정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 기간만 무려 2년이 소비 되었다. 전화를 다섯번을 바꾸었다. 친했던 모든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더라도 동네 개 한 마리를 쳐다보듯이 해 버렸다. 그러므로 듣기 싫은소리도 엄청났고, 비난도 많았고, 독하다는 경멸에서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동정까지 별별 소리를 다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결심은 결심이었다. 그 결심을 돌이킬 마음은 지금도 없다.

 

그런 삶이 나에게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그들이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변하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주고, 마음을 보담아주고, 위로를 품어 주면서도 그런 모습들이 나에게는 교과서 내지는 거울이거나 교훈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이렇게 해야지! 나는 조심해야지! 나는 불평을 안해야지! 나는 감사해야지! 나는 노력해야지! 나는 기뻐해야지! 나는 만족해야지!

 

나는으로 시작되는 결심이 만나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깊어졌다. 그래서 나에게는 나의 고단함을 친가에 알려서 하소 하거나 내가 힘들다 하여 누구에게 알리는 일을 하지 못한다. 친정식구들은 나의 소식이 끊어지면 막내가 힘들다고 짐작할 뿐이다. 내가 친정식구를 붙들고 아무리 많은 위로를 청해 보아야 나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나랑 짝궁이 함께 살려거든 둘이 이겨내고 둘이 알아서 견딜 몫이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몫은 각자의 것이므로 내가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고 해서 대신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럴바에는 여러사람을 복잡하게 하지 말자는게 나의 지론이다. 그렇게 나의 모습에 만족하여 보니 여러사람에게 짐스런 고통을 안기지 않고도 재미나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누구나의 몫이 있다. 원죄와 본죄의 결과가 세례를 통해 삭감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성은 신의 권리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신의 권리에 순종하는 것이 억울하여 인간은 인간을 찾아 위로를 청한다. 인간이 신을 찾아 억울함을 하소연 할 때는 신은 신의 방법으로 인간을 점령한다. 그러나 인간은 신을 찾아 하소연 하기를 거부한다. 보이지 않는 신의 우월성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을 찾아 떠벌이고, 인간의 동조를 구하여, 인간으로 부터 위로 받았다고 벗을 삼는다. 과연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였을 것인가?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인간적으로만 해결 할 수 있다. 그것을 구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또 인간이다. (이순의가 썼는데 진짜 멋진 말이네?! 잉! 밑줄 쫙! 히히

 

어제밤에 짝궁친구 마누라들과의 자리가 마련 되었다.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고 아들의 저녁찬을 마련하고, 샤워두 해야하고, 빨래도 거둬 놓아야하고, 뭐 여자들이 외출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좀 분주하겠는가?! 꼭 그런시간만 마춰서 전화벨이 울리거나, 큰일이 보고싶거나,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그런데 어제는 초를 다투는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유일하게 딱 한 사람이 있다. 집으로 찾아와서 거부하는 전화번호를 기어이 적어간 사람!

 

그래도 한 사람이니까 그동안 잘 지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집도 아빠의 실직이 이어지면서 실패의 연속선을 달리고 있다. 좀 할 말이 많고, 좀 흘려야할 눈물이 많으며, 경험하지 못한 세상의 인심을 탓할 일이 어데 한두 가지 일 것인가?! 떵떵거릴 때는 몰랐지만 남의 영업집 구정물통에 손담구는 서러움은 또 얼마나 골이 깊으며, 돈 고픈지 몰랐던 시절에서 아이들 학원비며 급식비가 밀려 학원을 못 가고 밥을 못 먹는....!

 

급전을 돌려다가 납부를 하고 돌아서는 마음고픈 심정을 어이 다 말로 하겠는가?! 그래도 인간의 고단함을 마지막 남은 자존심 하나로 아직은 버티고 있는터에 나를 종종 찾아온다. 더불어 나도 심심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지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는 지난번에 들은 이야기가 안들은 이야기와 연결되어서 연속으로 재방송된다. 나는 그런 경험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그걸 들어주는 인내심은 대단하다고 자부한다. 지금하는 말은 지난번에 한 말이니까 다른 이야기 하라고 자르지도 않는다.

 

그냥 다 들어준다. 그래서 전화도 하는 것이고 찾아도 올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누구의 말을 듣지 않기로 한 후라서 다시 번호를 바꿀까 생각을 했는데 또 찾아와 번호를 물으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전화는 뜸한 간격을 두고 이어졌다. 그런데 얼마전에 기념품도 못 탄 작품을 쓴다고 매여 있었다. 수필은 일상을 쓰는 이야기였으므로 큰 부담감은 없었으나 소설은 그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작업중이니 다음에 하자고 몇 번 거절을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나보다. 외출준비로 바쁜데 전화가 와서 당혹스러웠다. 또 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단초이지만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거절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같은 말을 했어도 몇 번 거절을 받아서 인지 언어에 쐐기를 박더니 끊어버렸다. 너무 황당했지만 시간이 급하여 하던일을 계속 하였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마음이 그분에게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마음이 든다면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출 준비가 끝이 났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전화를 드렸다. 나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들의 꼬리를 늘어 놓았다. 그 꼬리의 연장선상에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나의 인간적인 고뇌를 내 편에서 잘 소화해 주어서 내 편인줄 알았는데 내 고뇌 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원수였더라는! 순간이지만 그 추접한 인간성의 이기심을 수도 없이 격어 보았으므로 "이런 인간을 상종한 내가 미친년이지!" 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시라고 했다. 우리의 인연이 그것뿐이었는지 돌아보시라고! 화가 나서 언성은 높았지만 말은 똑똑히 전하였다. 나는 한번도 거짓말을 한적이 없으며, 내가 피할 의사도 없었고, 더구나 누구의 아픔을 가지고 약점을 삼지도 않는다. 정말로 과거를 돌아보시라고! 상대쪽은 섭섭했다고 전하며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런 눈물에 동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은 상처가 될까봐 참아주지만 그런 눈물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말을 들어주던 사람이 들어주지 않아서 흐르는 섭섭한 눈물은 이기심이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석 자리 반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인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위로를 구했을 때는 스스로 그 한계와 마주쳐야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의 벗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다했는가? 진짜 무엇을 다했는가?

 

내가 소설을 쓰느라고 힘이들다는데, 내가 지금 외출을 해야한다는데, 자기의 전화를 거절했다고 해서 억한 심정만을 키우며 분노하고 있었지 않는가?! 나는 더 이상의 인간적인 고뇌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신이 아니더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인간이 구하고자 하는 위로는 신의 위로가 아니라 인간의 동조였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의 위로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그것은 믿는이나 믿지 않는이나 다를바 없으며, 성직이든 수도직이든 평신도든 매 한가지더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나는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든지 석 자리 반까지만 들어줄 것이다. 웃기고 있어! 정말!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나에게 신이기를 바라지 말라!

 

ㅡ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 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 보다 더 약다. 루가16,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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