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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위령의 날 (심흥보신부님)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1 조회수1,200 추천수5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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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위령의 날 첫째미사 (마태 5,1-1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첫째, 우리 눈에 봐서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행복할까요? 다들 가난을 극복하고, 피하려고만 하는데 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만일에 가난해서 주눅들고 사람들에게 괄시를 받아 불행하다고 생각하여 어떻게든 빨리 돈을 긁어모아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일반적으로 '돈독'이 단단히 든 사람은 오늘 행복하지 못합니다. 언젠가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다 거머쥐게 된다면 몰라도. 그런데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요. 우선 오늘 그 사람의 마음속엔 돈이라는 주인이 자리잡고 앉아 그는 가난하지 않고 소유욕으로 가득한 부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재화만으로도 안분 자족하듯 사는 더 나아가 이웃과 함께 우환을 나누며 사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너무나 가진 것이 없어서 정말 하느님의 은총만을 기다리는 사람을 주님은 행복하다고 하셨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의 소유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난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원해서 가난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존재와 생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먹어야 하고, 졸립고, 쉬고 싶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기 위해서는 당신이 하느님으로서 누리고 계신 모든 것을 버리셔야 했습니다. 또 한편 그분은 당신이 가지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분은 가난해 지셨습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2코린 8,9)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결론지으시면서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바로 '나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나누어줌으로써 가난해진 사람입니다. 영예도 칭찬도 감사와 영화도 다 버린 채 가난해진 행복한 사람입니다.



위령의 날 둘째 미사  (마태 11,25-3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마태 11,25) 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알게 될 이 철부지 어린이들은 누구일까요? 물론 그 사람은 이어지는 구절,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27절)라고 하신 말씀에 나오는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나 자녀가 여러분을 버리고 자신이 집안에서 채워야할 의무를 저버리고 신앙의 길로 접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끔찍한 일인가요? 축복해줄 일인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철부지가 되라고 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28절)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편하게 해 주신다는 것일까? 예수님을 따르려 해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29절)
성당에 다녀도 잔소리가 있고 또 신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마저 있습니다. 주일미사를 드려야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착하게 살아야 하고, 교무금을 내야하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죄를 지은 것 같이 부담스럽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금마저도 강요하는 등. 어떤 때는 그런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편하다니? 결코 편하지만 않은 것 같은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29절) 우리 영혼의 안식이 주님께서 주시는 편함이다.

세상 사람들은 경쟁과 물질 사회 속에서 돈을 벌 때 아주 고생합니다. 그런데 쓸 때도 고생합니다. 별로 살 것도 없고, 비싸기만 하고, 또 자기가 가진 것이 없어지거나 빼앗길까봐 또 불안해합니다. 자기 것이 항상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기쁨과 보람보다는 늘 걱정 속에 살죠. 그럼 성당에 다니면 어떤가? 물론 성당 다니는 신자도 세상 안에서 살기 때문에 고생하며 돈을 법니다. 그러나 한편 돈을 쓸 때는 평안과 보람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도 나누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더 가져도 모자라고 쓰기엔 부족한데 자기를 위해서도 아닌 이웃을 위해 쓴다는 것은 철부지 어린아이들 같은 일이죠. 그러나 거기엔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할 보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혼의 안식이죠. 그러기에 주님은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30절)고 하십니다. 어때요, 편안하게 살고 싶지 않으세요? 그 길이 철부지 어린이 같은 길일지 몰라도!



위령의 날 셋째 미사  (마태 25,1-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가지고 있었다."(마태 25,3-4)
처녀들은 밤에 올지 모르는 신랑을 위해 등잔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중 다섯은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으나 나머지 다섯은 그렇지 못했다. 신랑은 밤늦게 도착했다. 그래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은 충분히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나눠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슬기로운 이들은 "우리 것을 나누어 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9절)고 하고 거절하였다. 결국 뒤늦게 보충해 온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미련한 이들이 되어버렸다.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들의 말이 참으로 슬기롭기는 하지만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그 기름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일까? 등잔이 우리의 몸이라면 그 몸을 빛나게 하는 기름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우리 생애라는 등잔에 넣을 기름은 돈을 주고 사거나 나눠줄 수 있는 것일까? 인격과 믿음, 선행 등을 나눌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이 사람 저 사람 도와 달라는 사람 다 도와주지 뭐. 그 때까지만 참지 뭐."
그런데 그러다가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 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8) 하신 주님 말씀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이들이 되면 어떻게 하지?
또 어떤 이는 "이번만 그냥 넘어가고 나중에 진짜 어려워지면 그 때 도와주지 뭐." 하겠지. 그런데 그가 진짜 어려워지기 전에 혹시 내가 먼저 어려워지면,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마태 25,12)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 6,8) 라고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삶에 대한 희망을 갖기 위해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있어라."(마태 25,13)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심흥보신부님 강론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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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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