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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어린이들이 좋아 (J``aime les enfants)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7 조회수471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태오19,14)
           

          어린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들을 몇 개만 떠올려보자.
          순수(純粹), 천진(天眞), 나약(懦弱),

          의존성(依存性), 순응성(順應性)이 있을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마음이 깨끗해 눈물이 많다는 이야기다.
          천진하다는 것은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자신을 다 드러낸다는 말이다.
          나약하다는 것은 쉽게 쓰러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의존성이란 무서움이 많아

          누군가 기댈 존재를 찾는다는 말일 게다.
          순응성이란 계산하지 않고

          마음으로 잘 따른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 하느님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어린이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무서운 꿈을 꾸다가 깨어나

          캄캄한 공간 안에서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던 기억이 없는가?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에

          온갖 상상을 하면서 좋아하고 슬퍼하고 심각해지고

          정의감을 분출하던 기억이 없는가?
          아무 것도 아닌 잘못에 조마조마 가슴을 조이던 기억이 없는가?

          그분 앞에서 우리가 어린이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다음에는 복음이 말하는 어린이의 의미를

          잘 표현해준 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는 1997년에 작고한

          프랑스 미쉘 꽈스트(Michel Quoist; 1918,6,18-1997,12,18) 신부님의 시이다.

          “나는 어린이들이 좋아 (J'aime les enfants)”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어린이들이 좋아.
          모두가 어린이들처럼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어린이가 되지 못한 어른들을 싫어해.

          내 왕국은 오직 어린이들만을 원하고 있어.
          그것은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정해진 법이야.

          꼬부라진 어린이, 등이 굽은 어린이, 주름살진 어린이,
          흰 수염의 어린이. 어떤 모습이던 어린이면 돼.
          이는 바뀔 수 없는 결정이야.
          어린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방은 없어.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작은 어린이들이 좋아.
          어린이들 안에는 내 모습이 아직 무디어지지 않았고,
          내 모습을 망가뜨리지도 않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새롭고 순수하며, 더럽혀지거나 얼룩지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그들을 부드럽게 바라볼 때,

          그들 안에 내가 있음을 알게 되지.

          내가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직도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야.
          다 큰 어른들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발전도 없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지 된 것이지.
          자신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그것은 불행한 일이야.

          나는 늙은 어린이들을 좋아해.
          갈등 속에 힘들어하고,
          죄를 아직 짓고 있지.
          하지만 어린이들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야.

          나는 어른들은 좋아하지 않아.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은 누구에게 해를 끼친 일이 결코 없고,
          자신들이 비난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용서할 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는 거야.
          문제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기에 안타깝다는 것이지.

          무엇보다도 내가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눈빛 때문이야.
          나는 그들의 눈을 보고 그들의 나이를 알 수 있어.
          내 나라에는 다섯 살 난 어린이들의 눈 밖에는 없어.
          어린이들 눈만큼 더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어린이들 안에 산다는 것과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야.

          네가 순수한 눈들을 만났을 때,

          너에게 미소를 짓는 것은 바로 나야.
          하지만, 어린이의 얼굴에 삶이 없는 눈처럼 슬픈 것은 없어.
          창문들은 열려있는데 집은 비어있어.
          두 눈은 있지만 빛이 없어.
          나는 슬픈 마음으로 문 앞에 서서 추위 속에 문을 두드린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해.
          그 안의 어린이는 혼자야.
          살찌고 굳어지고 메말라져 결국 늙어간다.
          아, 불쌍한 늙은이.

          알렐루야, 알렐루야!
          열어다오, 너희 모든 어린 늙은이들아.
          너희 안에 어린이를 부활시키고자 온,
          영원하며,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너희의 하느님인 나다.

          서둘러라.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나는 너희에게 다시 어린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주려 한다.

          나는 어린이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모두가 어린이들처럼 되기를 바란다. (번역 소나무신부)

            

                        - 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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