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일구이언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18 조회수1,281 추천수1 반대(0) 신고

제가 잘 아는 신부님 두 분께 영적인 자문을 구했습니다. 제 스스로는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에 굿뉴스에 이젠 글을 올리지 않고 조용히 제가 제 글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용도로 개설한 다음카페에서만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올리기 전에 제 카페에 지금 외국에서 공부하는 신학생인 형제님 한 분이 우연히 제 카페를 방문한 후에 계속 제가 올리는 카페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과 생각에 동조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도 지금은 민주화의 영향으로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난을 하고 비판을 하는 세상인데 혹여라도 그런 게 있어서 그만둔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묵상, 체험글 코너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쏟아낼 수가 있고 그 선택의 여부는 그 글을 읽는 굿뉴스 싸이트 독자가 판단하면 될 것이고 또 자기와 성향이 맞지 않으면 보지 않으면 될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할 수만 있다면 계속 글을 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사실 저번 글에서도 말씀을 드렸다시피 글을 쓰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고 또 사실 시간 소모도 좀 됩니다. 말이라는 것은 하고 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조금은 괜찮지만 글이라는 매체는 남아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 분의 신부님과 상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제가 결정해야 될 문제이지만 그분들의 의견은 만약 한 사람이라도 제가 올린 글로 인해 혹여 조금이라도 같이 신앙 안에서 공감하고 좋은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한다면 그건 우리 눈에는 가치가 아주 미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주 큰 가치가 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김웅렬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한 평신도에게 강론 비슷한 걸 요청한 것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하는 간증과 유사한 것입니다. 강론과 간증의 혼합적인 성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때 그 교우님이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감히 그런 걸 어떻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글도 신부의 글은 신부의 글 나름의 의미도 있고 평신도도 평신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런 부담은 떨쳐버려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씀을 참작하여 고민을 했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마지막이라고 인사를 했기 때문에 제가 번복한 모양새가 됩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건 인간적인 판단이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런 걸 초월하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또 계속 도전하는 것인데 그걸 회피하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은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최종 지금 두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 최종적으로 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약간의 불미스런 일은 있었지만 만약 한 분에게라도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그분 한 분을 위해서라도 부족하지만 올릴 생각을 했습니다. 돌을 던지면 돌도 맞을 생각입니다. 그런 것도 제 신앙여정에 필요하다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세상 일도 그렇지만 신앙에서도 순탄한 길만은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제가 견디지 못할 돌을 맞을 땐 그때 그냥 포기하면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힘이 들더라도 한번 다시 해볼 생각입니다. 정말 저도 일구이언을 해서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그런 것도 어쩌면 하나의 가면일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제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강론을 하지만 어디 우리라고 강론처럼 그렇게 잘 살 수가 있어서 그런 강론을 할 수가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강론을 하지만 실제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강론 준비를 하시는 신부님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참 와 닿았습니다. 그 말씀은 그런 말로써 신자들에게 하듯이 자신에게 하는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의 채찍질과 같은 것처럼 여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 감동적인 표현 같았습니다. 번복을 한 것에 대해서 비난의 돌을 던지신다면 그 돌도 기꺼이 맞겠습니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으면 그때 한 번 더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겠습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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