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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8.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14 조회수47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3년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복음 마태 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 당장 ‘남’이라는 글자를

써보아라. ‘남’이라는 글자는

‘ㅁ’ 위에 ‘나’를 올려놓은 것이다.

그렇다. 남을 위해 살면

내가 더 돋보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향해서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자, 위선자라는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깎아내립니다.

그에 반해 남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존경과 사랑이

멈추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위로만 올라갑니다.

결국 ‘남’을 위해 사는 것이

곧 ‘나’를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과

사랑을 받고 싶다면,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남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남보다 먼저를 나를 바라보려는

마음이 생길 때, ‘ㅁ’ 위에 올려진

‘나’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높아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을 강조하셨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이야기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하기에 당신이 먼저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모범을 따라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모든 유다인은 매년

스타테르 반 닢의 성전 세를

바쳐야 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유지, 관리,

보수 등의 운영을 위해

유다인에게 부과된 종교세였습니다.

단, 사제와 율법 학자는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제나

율법 학자로 평가하곤 했었지요.

그래서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마태 17,24)라고 베드로에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와 율법 학자처럼

단순히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높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이 세금을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오히려 세금을 받아야 할 분이십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논쟁과

충돌을 피하십니다.

성전 세를 내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한 공격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라는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부정하는 것으로 죄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의 영역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지요.

그래서 성전 세 논쟁으로 걸려

넘어질까 봐 베드로에게 낚시를

던지라고 하시며, 잡힌 물고기

입 속에 있던 스타테르 한 닢을

가지고 자신과 베드로의 몫으로

성전 세를 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배려와 사랑을 보면서

우리의 배려와 사랑을 바라봅니다.

정의만을 외치면서 사랑의 마음을

완전히 버리는 모습, 합리적이지 못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사랑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모습,

세상의 법칙을 내세워서 주님의

법칙인 사랑을 잊어버리는

모습 등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처럼

‘나’보다 ‘남’에 대한 사랑이

우선이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이다(정혜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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