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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거산지기 신부님 연중 제29주일( 민족 복음화를 위한 미사강론)
작성자김시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0 조회수440 추천수2 반대(0) 신고
 
Photo by 성거산지기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10월에 피는 성거산의 야생화
 
 연중 제29주일( 민족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

 

'복음화'란 말과 '선교' 혹은 '전교'라는 말은 같은 의미의 말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는 10월 마지막 전 주일을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전교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1.복음화란 무엇인가?

 

① '복음화’ 라는 용어는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근래에 널리 사용하게 된 용어입니다.

 

복음화, 복음 선교라는 이 용어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사용되기는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도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동안은 주로 선교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복음 선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1974년 10월 로마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세계 주교대의원 총회(시노드)의 주제로 복음화 용어가 확정됨에 따라 그 의미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재해석하게 되었고‘선교’를 대신하는 교회의 공식용어가 되다시피 하였던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 안에서는 ‘선교’(Mission)란 단어를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선교는 어의(語義) 그 자체로 ‘파견’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 선포자들이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민족이나 지역에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는 활동을 지칭하며(선교교령 6항), 그러한 지역을 전교(포교)지방이라 일컬어 왔습니다. 그리고 비(非)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어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는 초기적 선교단계와 구분하여 이미 성세성사를 받고 신자가 된 사람들의 영적생활을 돌보는 활동을 사목이라 하여 세분해 왔습니다. 그러나 복음화는 보다 풍부하고 역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 행위뿐 아니라 교회의 사명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즉 종래의 ‘선교’와 ‘사목’의 의미는 물론이고, 복음의 힘으로 모든 사람들을 내적으로 쇄신시켜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위반되는 모든 인간적인 판단 기준, 사상의 동향 그리고 가치관과 생활양식 등을 역전(逆轉)시켜 ‘복음적 생활’ 로 인도하는 활동까지를 폭넓게 의미한다고 (현대 복음 선교 17, 18, 19항).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복음 선교>’은 바오로 6세께서 1974년 시노드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숙고한 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10주년을 기념하면서 발표하신 사도적 권고로서 공의회 이후 당시까지의 교회 공식 문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화는 이 세상을 창조주와 구원자의 뜻에 부합하도록 변화시켜야 할 교회의 사명과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전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혁시켜 '새사람'(에페 4:24)이 되게 하고(현복 2, 18항) 구원에 참여케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인간의 영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全人的)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② 복음화의 요소는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울 만큼 그 의미가 풍부하나 그 중심 되는 요소는 다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 말씀의 선포입니다.

 

복음화에 있어서 복음을 해설하고 교리를 설명하는 말씀의 선포는 그 기본을 이룹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씀대로 말로 설명되지 않고 구원의 신비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14-17). 이와 같이 구원을 위해 필요한 신앙은 말씀을 통한 복음 선포를 전제로 합니다. 교회가 선포해야 할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시고, 이루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은 각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과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충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으나 무엇보다도 죄와 악신(惡神)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며 현세에서 시작되지만 영원 안에서 완성되는 초월적(超越的)이며 종말적(終末的)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현복 9, 27항).

 

그러므로 말씀의 선포에는 성사를 통한 초자연적 생명에 관한 선언과 형제애, 악의 신비, 기도, 희생, 선행의 추구 등 교회의 중요 가르침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 생활의 증거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사목할 때 오안나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이 자매님은 겨우 글을 읽을 정도로 학교 공부를 하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세례대장을 보면 이분의 대녀들이 30%가 됩니다.

본당에서는 이분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었고, 누가 뭐래도 이분의 말을 신자들이 잘 듣곤 하였습니다. 예비자 교리가 시작되면 이분은 1-2명이 아니라 떼거지로 예비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전교를 나 갈 데 이분을 데리고 다니면 전교 성공률이 아주 높았습니다. 왜 다른 분이 이야기하면 잘 듣지 않고 이분은 전교를 잘 할까? 사목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이분의 전교 체험을 들어보면 전교를 나갈 때는 전 날 묵주기도를 5단씩 바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전교를 나가기 전에 미리 한 달 전부터 전교하러 갈 동네를 미리 찾아가서 예비 선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네마다 일손이 부족하면 가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밭에 김을 매주고, 모내기를 해주고, 잔치 날이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마치 친척같이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늘 주머니나 가방 안에는 사탕이나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셨고, 간추린 교리서를 가지고 다니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자매님의 겸손하고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아 주는 사랑이 많은 매력에 이분을 따르고 교회에 데리고 오게 되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초창기 신앙인들은 매력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황일광(1756- 1802) 순교자의 증언에서 잘 드러납니다.

 

< “나는 백정으로 태어나 이제껏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인이 됨으로써 어떤 학문이나 이치가 아닌 신앙의 삶을 통해 천주교가 참됨을 깨우치게 되었다. 나에게는 천국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아직 오르지 못한, 곧 가게 될 이승 너머의 곳이고, 또 하나는 지금 이 생활이다. 양반인 천주교 형제들은 금수와 같이 취급되는 나를 형제라 부르며 나를 친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우린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어머니께 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렸고 함께 고생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

그렇습니다.

황일광 순교자의 말대로 선교는 말씀의 선포뿐 아니라 복음적 생활의 증거 역시 복음화의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말과 일치된 생활은 언어로 표현된 진리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복음화에서 중심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성자 안에서 온 인류를 모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주신 사랑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생활 안에서 투명하게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가 선포하는 사랑은 추상성을 면치 못하며, 그 말씀은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사랑의 실천, 생활의 증거는 복음화의 중요 요소에 속하는 것입니다.

 

㉰ 성사생활(聖事生活)입니다,

 

말씀과 생활의 증거로 신앙에 귀의(歸依)시킨 다음에는 성사를 통하여 초자연적 생명으로 인도하고 이 생명이 더 풍부해지도록 해야 합니다(요한 10:10 참조). 따라서 교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해설하는 말씀의 선포를 복음화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성사로 말미암은 내적 변화와 새 생활은 그 도착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사생활, 특히 성체성사의 생활화는 복음화의 정점을 이룹니다.

 

③ 복음화의 신학적 배경 :

 

사랑자체이신 하느님(1요한 4:8)께서는 당신 생명과 영광에 참여시키고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의 범죄 후에도 이 같은 하느님의 구원의 의지는 변함이 없어 구세주 그리스도를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성부와 같은 신성(神性)을 지니고 우리와 똑같은 인성(人性)을 지닌 그리스도야말로 인간을 하느님께 결합시키는 유일한 중개자이십니다.

 

당신 몸으로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는 사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 자체이며, 최초 최대의 복음 선포자이시다." 라고 현대 복음 선포 7항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처음부터 성령과의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 날 사도들에게 가시적(可視的)으로 오심으로써 교회의 공식 창립을 드러내셨고 교회의 생명으로 교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사업을 역사 안에서 계속하고 세상 극변까지 확장하기 위해 사도들을 선택하고 가르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온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들 위에 세워진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회헌장 17항, 선교 교령 2, 5항)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구원 계획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며,

 

○하느님 생명에 참여시키는 일을 근본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복음화에 있습니다(현복 14항).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는 쇄신으로 자신이 먼저 복음화 되면서 이 세상을 복음화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강론을 마치면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케냐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보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1 디모 2,4)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고을에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신에 대한 아버지의 뜻임을 아시고,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하도록 나를 보내셨다"(루가 4,43)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들에게는 선교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진정한 만남을 가진 사람들은 그분을 자기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으며, 그분을 선포해야만 한다고 . 하시며 만민 선교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타당성을 지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민 선교와 평생선교를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아 온 모든 선교사,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은 각자 삶 자체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영원토록"(시편 88) 선포하여 모든 대륙에 복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게 하여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또한 『선교는 그들과 더불어 살며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며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화 안에서 가난해지고 성숙해지며 가난한 그들을 통해 내 자신이 회개하는 것』 이라고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복음화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자신의 교회와 복음에 대해 얼마만한 체험과 확신,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반성이 전교주일을 지내면서 교회와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1차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거산지기 신부님 연중 제29주일( 민족 복음화를 위한 미사강론)

http://cafe.daum.net/sgm2008  성거산 성지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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