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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3 조회수958 추천수14 반대(0) 신고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루카 12,49-53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사랑의 방화범>


    해외에 잠시 머물 때, 따뜻한 남유럽의 한 수도원으로 공동체 피정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피정집은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호숫가에 위치해있었는데, 호숫가로는 올리브나무 사이로 호젓한 산책로가 길게 나있었습니다. 천국이 따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밤이 오면 또 하나의 색다른 체험을 하곤 했습니다. 언덕 위에는 작은 경당이 세워져 있었는데, 하루 한번 강의는 그 경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경당의 특징은 인위적인 불이 일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촛불과 등불만이 그 경당의 조명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천당으로부터 길게 드리워진 우아한 등잔 위에는 항상 등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기 직전, 성당지기 수사님은 벽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있는 촛대에 일일이 불을 밝혔습니다. 강의를 하시는 신부님의 손에도, 강의를 듣는 우리 각자의 손에도 작은 촛불이 하나씩 들려졌습니다.


   촛불의 자연스런 빛은 경당을 정녕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으로 창출해냈습니다. 촛불을 들고 있던 우리 각자의 얼굴도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꽤 험상궂게 생긴 수사님 얼굴도 그 경당 안에서는 예뻐 보였습니다. 미운 짓만 골라하는 신부님 얼굴도 그 경당 안에서는 더 이상 미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공기의 순환에 따라 춤추는 불꽃, 그 불꽃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은 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이렇게 예쁠 때도 있구나, 불의 움직임이 이렇듯 아름다울 때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꽤 섬뜩한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방화범이 되러 오셨다는 말인데...우리의 예수님은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다수의 고통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무자비한 방화범, 자신 안에 쌓여있는 상처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을 지르는 그런 방화범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방화범입니다. 진실한 사랑이 점점 소멸되어가는 이 시대 뜨거운 사랑의 불을 놓으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꺼져버린 지 오래인 영혼의 불에 다시금 활활 불을 지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대화가 단절된 곳에 소통의 불을, 슬픔으로 가득 찬 곳에 위로의 불을, 무관심과 나태함으로 가득 찬 곳에 열정과 몰입의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모습이 미지근함입니다. 나태함입니다. 미적거림입니다. 물에 물탄 듯 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모습을 싫어하셨습니다.


    단 한번 우리 앞에 주어진 한번 뿐인 인생, 예수님처럼 활활 타오르는 인생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등불처럼 은은하게, 촛불처럼 우아하게 그렇게 타올라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70번 / 평화를 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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