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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26주 토요일-철부지의 눈
작성자한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4 조회수424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8.10.4
 
 
********************       오늘의 묵상       **********************
 
 
심미안(審美眼)이 아주 뛰어나다는 말을
칭찬처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심미안이 뛰어난 것을 좋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식별하다보면
최고의 아름다움에 비해 덜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자어에서는 미(美)의 반대말로 추(醜)가 있지만
우리말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습니다.
‘보기 싫다’이거나 ‘밉다’가 ‘아름답다’의 반대말처럼 쓰일 뿐입니다.
아름다움을 따지다 보니 싫은 것이 생기고
존재가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미안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아름다움 때문에 좋고 싫고 하는 일이 없으며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스럽고 밉고 하는 일이 없습니다.
존재가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고
존재가 사랑으로 다가 옵니다.
굳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존재가 곧 선이듯
존재가 곧 아름다움이고
사랑이 곧 최고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자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습니다.
반대로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쁩니다.

미추(美醜),
선악(善惡),
성속(聖俗)을 구별하지 않는 거기에 존재가 드러나고
존재가 드러나는 거기에 존재이신 하느님이 드러납니다.
구별지(區別知)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존재를 아름다움으로 만나고
사랑이 아름다움이신 하느님을 봅니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에게는 감추인 하느님이
철부지 어린이에게는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프란치스코가
바로 이 어린이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전기 작가인 토마스 첼라노는
다음과 같이 그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는 창작가이신 그분을 찬미하였다.
피조물에게서 무엇을 발견하든 그는 그것을 창조주와 관련시켰다.
그는 주님의 손에서 빚어진 모든 작품 안에서 즐거워하였고
유쾌한 사물들의 배후의 뜻을 살핌으로써
그 사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이성과 원인을 보았다.
그는 아름다운 사물들 안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보았다.
모든 사물들이 그에게는 선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만드신 분은 가장 좋으신 분입니다.’하고 그에게 외쳤다.
그분의 발자국이 서려 있는 사물들을 통하여
그는 어디서나 사랑이신 그분을 따라갔다.
그는 홀로 모든 사물에서 사다리를 만들어
그 사다리를 밟고 옥좌로 올라갔다.”(2첼 165)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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