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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행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30 조회수609 추천수5 반대(0) 신고
 

여행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광야는 우리가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광야의 존재 목적)


이집트를 탈출한 야곱의 후손들이 광야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느님 계획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자유의 땅인 가나안으로

건너가는 중간에 광야 길을 거치도록 친히 마련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광야는 자유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할

중간 관정인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공간적*시간적 차원의 중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는 거듭남의 과정이다.


이집트를 탈출 했다고 하여, 또는 시간이 경과했다고  즉시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상황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우리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지금 나의 생을 황폐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광야라고 할지라도 내가 자유인이 되고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이다.


하느님의 새로운 가치를 배우기 위해서 그들은 이집트라는 옛 가치를

버려야만 했다. 그러므로 광야는 과거 삶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인생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기 위한 과정이다.

과거의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무엇을 더 배워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안주해 왔던 세속

중심의 삶을 버리는 것이다. “하느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 내는 것이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영혼에 묻어 있는

인욕의 때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낸다는

것은 자기의 한 부분을 부수는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광야는 자기가

부서지는 자리다.


새로운 가치관을 위해서 자난 날의 가치관을 버리고 부서지는 시기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존재 자체의 변화를 겪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익숙해져 있는 과거를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광야를 피하거나, 거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광야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광야의 미아(迷兒)가 되어서 계속 헤맬 것이고, 참 자유인의 기쁨

이나 해방은 영원히 맛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광야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부수어 버릴 것은 부수어 버린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온화한 우정의 그림자를 안고 지내던 이회장님으로부터

국내 여행제의를 받고 일주일간 여행을 했습니다.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콘도

에서는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웠으며 호수가 주변에 깔려있는 산책로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거리였고 밤늦도록 들려오는 라이브-까페의 음악소리에 밤잠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틀간을 보내고 다음 행선지인 강원도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양양의 국제 비행장이 설립되면서 세워진 쏠-비취 호텔과 콘도는 동해안을 끼고

자리하였기에 그 전망이 기막히게 좋았으며 아름다운 궁중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일행 중 세분은 이 회장님을 비롯하여 80대 초반의 노 장년들이셨으며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70대의 초 장년 젊음을 자랑하게 되었고 쉴 새 없는 산책으로 몸의

피로를 불러와서 곤히 잠들어 피곤을 말끔히 씻어내곤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조그만 어선이 드나드는 어촌이 있었기에 생선 몇 마리를 싼값에 사서 회도 먹고

매운탕도 끓여 먹으면서 이틀을 보내고 속초로 향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설악산 앞을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는 울산 바위가 마주보이는 대명

콘도에 짐을 풀면서 하루 더 있을 수 있으면 아예 하루 더 묵자고 하였으나

금요일 저녁에 밀려오는 인파에 더 여유로움을 펼 수가 없게 되어 토요일 아침에

일찍이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설악산 입구만을 가벼운 산책으로 몸을 풀고 척온천장에서

목욕을 즐긴 것을 끝으로 토요일 아침을 마치고 여행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분당에서 일행과 헤어졌으며 평촌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고 있는 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결려왔습니다.


지금 어디냐면서 들려오는 소리의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아서

나도 기분이 덩달아 언짢아졌지만 다음에 들려오는 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당황하였습니다.

장인은 삼년 전에 장모님이 먼저 가셨고

혼자사시는 실버타운에 계셨기 때문에 외로움에 시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금년 초에 폐암 판정을 받으셨으나

최근 삼사 개월은 원기를 회복하시는 기미가 있었으며

그동안 삼사 개월 동안 매주 목요일 장인을 위한 목욕봉사를 하고

내가 배운 부황 뜸을 떠 들였습니다.


일주일 전에 화장실에서 낙상을 하셔서 응급실에서 치료를 마치고

일반 병동으로 옮기기로 되어있었고 지난 토요일이

아내가 병원에 가서 아버님을 보살피기로 되었었기에

아내가 병원에 갔었던 것이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이미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갑작스런 죽음이었습니다. 인생 87년을 사시다가

하루아침에 흙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어제 삼일장을 치르고 성남 화장터에서 2시간 화장을 거쳐

한줌의 흙으로 변하여 항아리에 담아서

서울공원 묘에 먼저가신 장모님 납골묘에 함께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의 글에서 광야란 말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인생의 삶이 바로 광야의 삶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광야는 자유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할 중간 관정인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공간적*시간적 차원의 중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는 거듭남의 과정이다.”

그렇습니다. 이 광야의 생활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영원한 자유의 땅으로 가기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지금 나의 생을 황폐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광야라고 할지라도 내가 자유인이 되고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이다.”


장인은 나의 생에 전환점을 마련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나에게 짝지어 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오늘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삶의 자리를 지켜주던 육체의 옷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새 옷으로 갈아입으셨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비록 장인이 살아계셨을 때 주님을 모르고 사셨을지라도

주님의 자비하신 은총으로 장인의 영혼을 인자 로이 보살피시어

주님 곁에 항구히 머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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