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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빌론 강가에서 - 롤하이저 신부님의 칼럼에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3 조회수670 추천수2 반대(0) 신고
헨리 뉴엔(Henri Nouwen)은 그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아주 화를 많이 내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의 공동체나 강론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술회하였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교회의 공동체 내에서는 기쁨보다 분노와 슬픔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분노와 실망을 신성한 것으로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특수한 형태의 분노와 슬픔을 나타내는 성경적인 표현이 있다. 신앙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느낌으로, 이를 “바빌론 강가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슬픔을 노래하는 시편 137장(성가로 유명함)을 잘 알고 있다;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가락 우리에게 불러 보아라.’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내가 만일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
 
 이 비탄의 노래 뒤에는 재미있는 역사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의 율법을 받고 왕국을 세우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원을 건립한 후, 정치적인 안정을 누리고 믿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신앙의 자부심은 세 물질적인 소유 즉 땅과 왕과 사원을 가졌다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이를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이들을 주셨다. 수많은 싸움을 거친 후 마침내 자신의 땅, 자신의 왕, 자신의 사원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믿음의 기둥이 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실제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보증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진하게도 그러한 것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웃나라 아시리아가 그 땅을 정복하고 백성들을 추방하고 왕을 죽이고 사원을 완전히 파괴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추방 당하여 이제는 땅도 없고 왕도 없고 사원도 없었으므로 하느님을 계속하여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땅과 왕과 사원에 뿌리를 박고 있던 그들의 신앙이 이제는 덧없이 보였고 꿈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의 땅에서만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도 추방당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땅, 왕, 사원을 뺏어 가버렸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이상 믿을 이유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빠져 괴로워하였다: 하느님이 과연 계시는가? 하느님이 계시다면 약속하신 땅과 왕과 사원을 어떻게 빼앗기게 하실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나의 믿음과 나의 교회를 훔쳐 가버렸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바빌론의 비탄은 결국 슬픔과 분노에 대한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공동체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메아리 쳐 오는 것을 듣고 있다: 보수적인 사람들과 급진적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두 불행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이 자신의 교회를 뺏어 가버리고 소중히 여기던 것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불행하게 바빌론 강가에서 울부짖게 되었다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의 공동체 안에서의 이러한 양쪽의 비탄은 바티칸 2차 공의회로 넘어가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항의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기뻐하고 은총을 느낄 수가 있겠는가? 개신교의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곳에서 비탄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우리들은 지금 바빌론의 강가에 앉아 슬프게 울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으로 불행하다고 말했을 때 하느님께서 답하신 말씀이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땅과 왕과 사원을 빼앗아 갔는데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느냐고? 하느님께서는 “진심으로 더 솔직하게 나를 찾으면 다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고 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물질적인 땅, 지도자, 교회 건립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하느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와 교황이 아무리 진실되더라도 이러한 물질적인 것에는 전혀 연연하시지 않는다. 불안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어두운 밤에 우리들이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울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마다,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신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하느님과 하나 되기를 바라고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고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 하느님께서 물질적인 땅과 왕과 사원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을 느끼며, 신앙을 의심하는 맨 밑바닥까지 떨어질 정도로 모든 것을 잃게 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대책 없이 계속하여 추락할 것이다.
 
 그것이 성화상(聖畵像, icon)과 우상의 차이이다. 우상숭배자 즉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은 성화상(자신이 그리고 있는 하느님 상)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곧잘 잊어버린다. 아무리 생생하게 잘 그려져 감탄할만한 성화상(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있어도)이라도 필히 빼앗기는 때가 오게 된다. 이 때가 우리들이 추방 당하여 바빌론 강가에 앉아서 불안하게 느끼고 불행하게 느낄 때이며, “너희가 전심을 다하여 진심으로 나를 찾으면 다시 나를 만나 기뻐하게 될 것이다.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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