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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3 조회수1,15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9월 23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My mother and my brothers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act on it.
(Lk.8.21)
 
 
제1독서 잠언 21,1-6.10-13
복음 루카 8,19-21
 
 
중세기 어느 수도원의 원장이 많은 수도원생 가운데 한 사람만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수도원생들은 원장이 인간 차별을 한다고 뒤에서 투덜대며 그 수도원생을 미워했지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수도원장은 어느 날 모든 수도원생들에게 새를 한 마리씩 나누어 주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죽여 오라.”

얼마 후, 모든 수도원생들이 새를 죽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특별한 총애를 받던 그 수도원생만이 새를 산 채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다른 수도원생들은 그가 수도원장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요. 이렇게 순종하지 않는 수도원생을 이제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원장이 사랑하는 수도원생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새를 죽여 오지 않았니?”

이에 수도원생은 고개를 숙이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 저는 아무도 안 보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느님께서 저를 보고 계셔서 도저히 새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원장이 다른 수도원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내가 이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 그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골방에 혼자 있다고 생각되는 그곳에도 하느님께서는 존재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자주 잊어버립니다.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선 자체이신 하느님이 가리어지기 때문이지요.

저는 요즘 제 자전거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면서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자전거만 눈에 보입니다. 바로 저의 모든 관심이 온통 자전거에만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하느님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하느님만이 눈에 들어오고, 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죄만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하느님인가요? 죄인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께 관심을 두는 영적인 관계로 맺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혈연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영적인 관계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관심을 놓지 않는 우리들이 될 때, 영적인 관계는 더욱 더 두텁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의 영적 관계의 결속 상태는 과연 어떨까요? 두터울까요? 아니면 엉성할까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해봅시다.




들어 줘야 설득할 수 있다(신강균, ‘1000가지 설득비법’ 중에서)

미국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카운슬러 중에는 의외로 현지 미국인이 많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인들이 오히려 인기가 많다. 왜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잘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한 주부가 찾아와서 자기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데 카운슬러는 자세히 알아듣지 못한다. 남편과 싸웠다는 이야기 아닌가 싶어 상대가 말하는 중간 중간 간단한 영어로 맞장구를 쳐준다. “오, 그래요?” “원, 세상에!” “당신 대단하군요.” 그렇게 두어 시간 들어 주고 나면, 고객은 두 손을 잡으며 “고맙다. 정말 시원하다.”고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인 카운슬러는 만난 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아, 그건요. 일단 별거부터 하시고요...” 하는 식으로 해법을 제시한다. 겉으로만 봐서는 미국인 카운슬러가 더 많은 소득을 올려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고객이 ‘왜 카운슬러를 찾아오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지금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업 사원 시절, 어느 지자체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날은 “물건을 팔러 온 것이 아니고 농사가 풍년인 것 같아 어느 분이 이 마을을 관리하는지 한번 보고 싶어 왔다.”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냥 차 한 잔 마실 요량이었다. 그런데 지자체장은 도지사에게 했던 것처럼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듣고 난 뒤 “차 잘 마시고 갑니다.”라고 인사하고 문을 나서는데, 나를 불러 세우더니 대뜸 제품 주문서를 내놓으란다. 제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어 고맙다는 것이다. 결국 그 지자체장뿐 아니라 몇 사람을 더 추천 받고 돌아왔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말에는 ‘당신을 존경하오.’, ‘당신의 가치를 인정하오.’라는 뜻이 숨겨 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중 ‘자기 존중의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 귀는 상대를 향해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른다. 들어 주는 것 이상의 설득은 없다.
 
 
Loving Touch - Deuter
The moffatts - I'll be there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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