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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는 너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0-09-17 조회수1,913 추천수16 반대(0) 신고

9월 17일 : 연중 제24주일

 

너는 너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7-3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기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묵상>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때론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는 그런 어마어마한 군중이 예수를 따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의 참 제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제각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를 따랐을 뿐입니다. 혹자는 병을 고치려고, 혹자는 명예와 권력을 얻을 욕심으로, 혹자는 그냥 존경스러워서...

복음서에 등장하는 제자는 일흔 두제자가 가장 많은 수의 제자 그룹입니다.

한때 예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일흔 두명의 제자까지는 뽑았나 봅니다.

그런데 이들 마저도 모두 예수의 참제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왜냐하면 이들마저도 결국 예수를 떠나고 마니까요.

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란 소리에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도저히 저 양반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데체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여겼고, 잘 나가다가 살짝 가버린 사람으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예수의 곁에는 12명만이 남았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두었던 수제자들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심 염려하셨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수많은 기적과 은혜를 베풀면서 보여준 자신의 신원에 대해서 아직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열두 수제자들에게도 묻습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나를 떠나가겠는냐?>

 

다들 머뭇거리며 주저하고 있을때

베드로 사도가 나서서

<아이고, 주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지니고 계시는데요> 하고 진담 반, 위로 반 응답을 하게 됩니다.

 

예수는 함께 길을 가다가 또다시 열두 수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이제자, 저제자가 다들 한마디씩 걸칩니다:

<글쎄요, 어떤 이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예언자 중의 한분이라고도 하고, 위대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그러데요...>

남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누구나 잘 하는 법이지...

 

근데, 느닷없이 그분이 골치아픈 질문을 하시는게 아닌가?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이런 곤란한 질문이 어디 있나?

글쎄, 우리의 랍비, 우리의 스승인데, 또 누구라니....

남들의 이야기에는 신바람 나서 서로 쉽게 이야기하더니만

이제 아무도 이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또 총대는 맞형인 베드로가 질 수 밖에,

<에이, 주님이야 그리스도이시지요, 하느님의 아들이시지요>

 

예수는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신다.

제대로 깨달아서든 그냥 내뱉아보아서던 어쨌든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베드로를 여러가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수제자 중이 으뜸으로 삼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은 아닐까???

 

여하튼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어떻게 보면 특별하지도 않은 사건이다.

부활은 하느님이신 분이 잠시 인간이 되셨다가 하느님이 되신 사건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느님이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아니, 또 그 모습을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본 모습, 즉 하느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형상을 빌려쓰고 있는 사람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예수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제자들에게도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자 그토록 애썼는데, 아직도 그것을, 즉 예수의 본모습, 진면목을 몰라보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런데 베드로가 그답을 마침내 내려주니 얼마나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기쁘셨을까???

 

어제 우리는 지금까지 작은형제회에서 살다가 떠난 형제들의 모임 행사를 가졌다.

보통 수도원에서 떠난 사람은 실패자같은 생각을 자타가 많이 갖는다.

우리는 그 형제들을 만나면서

이들도 같은 우리의 형제요 항상 프란치스칸임을 재확인하였다.

수도원 안에서 살고, 밖에서 사는 차이밖에 없지 예수와 프란치스코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여전하였다. 그렇다! 그 형제들은 원래 프란치스칸이었으며, 잠시 외유하다가, 이제 다시 자신이 프란치스칸 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한번 예수의 제자는 영원한 예수의 제자이다. 비록 한때 냉담하고 주님을 배반하기까지 하였다 손치더라도, 그는 예수의 제자이다.>

 

그렇다!

<한번 프란치스코 회원이었으면, 외유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 정신이 그대로 남아만 있다면 그는 영원한 프란치스칸이다.>

 

자신의 신원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부활>이다.

우리의 부활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의 형제들임을 재확인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시지 않을까?

<자, 나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사람들이 너희를 누구라고 하더냐?>

 

아마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답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글쎄요, 크리스챤이라고도하고, 가톨릭 이라고도하고, 그냥 신자라 하기도 하고, 예수쟁이라고도 하고....>

 

이어서 예수는 다시한번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하실 것이다:

<그럼, 너희는 너희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너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그대는 어떠한 답변을 내리실 것인가?

그 답을 찾은 사람은 공개적으로, 혹은 메일로 답해 주실 수 있을른지요.

이 답을 제대로 찾은 사람은 <영적인 부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로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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