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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4/24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4 조회수465 추천수8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4월24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요한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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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위해 움직이신 기간은 단 삼 년이었다.
이를 우리는 공생활(公生活)이라 한다.
이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성부로부터의 모든 사명을 다 이루어야 하셨다.
모르긴 해도, 아마 마음이 많이 급하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분의 사명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것이라 몸소 말씀하신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 그리고 우선적인 것을 전하셔야 했으리라.
또한 가장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으려 하셨으리라.
그렇다면 하느님의 백성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고 우선적인데,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사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힘을 쏟으신 부분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이라는 테마였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려주시려 모든 것을 쏟고 내어놓으셨다.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는 구원과 정반대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공포의 하느님과 사랑의 하느님 중 어느 하느님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한 하느님에 대한 느낌인가?
2천 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그분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여주신 그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에 빠져 산다면 우리는 공포의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에서는 참된 회개도 용서의 체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참된 회개의 눈물과 함께 보속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 안에는 사랑의 하느님께서 계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용서 받고 사랑 받고 있음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사랑의 하느님이라 하셨다.
그러기에 그분의 아드님도 사랑으로 사시다가 사랑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그 사랑을 배우고 닮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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