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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조카녀석이 일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0 조회수552 추천수2 반대(0) 신고
        내 조카녀석이 일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오늘(20일), 지난해 9월 20일의 '가족메일'을 읽어보니 재미있는 대목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또 엊그제 18일 전송한 '가족메일'의 한 대목도 위에 소개합니다. 제가 데리고 사는 조카아이(중3, 지규왕 시몬)에 대한 얘기들입니다. 아이가 일년 사이에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9월 20일 '가족메일' 안에 들어 있는 두어 가지 얘기도 맨 아래에다 소개합니다.


 (2008년 9월 18일 전송 '가족메일' 일부)

♣지규왕 '사은편지' 공모 충남도 최우수상 수상 /


 내가 데리고 사는 올해 중3인 지규왕이 '새마을운동협의회'에서 시행한 '사은편지' 공모에서 충남도 중등부 최우수로 뽑혀 도지사상을 받게 되었네. 최우수작으로 뽑혔기 때문에 19일 충남도청 시상식 자리에서 낭독도 해야 한다고 하네.

 큰아버지인 내가 따라가야 할 것 같네. 엄마는 이 세상에 없고, 일용 기술 근로자인 아빠는 일당 20만원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이고, 올해 85세이신 할머니를 가시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학교 근무를 해야 하는 큰 엄마가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천상 내가 학부모로 따라가 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해야 할 것 같네. 태안중학교의 입상 학생 6명이 함께 간다는데, 학부모들도 여럿 가기 때문에 '새마을지회'에서는 태안군청의 35인용 버스를 마련해놓았다고 하네. 

 다음 번 '가족메일'에 규왕이의 충남도 중등부 최우수작 '사은편지'를 첨부하겠네. 엊그제 '새마을지회' 사무실에 가서 복사본을 한 부 가져다가 녀석에게 주고 낭독 연습을 하게 했는데, 내가 미처 컴퓨터 작업을 하지 못했네. 편지 내용과 기승전결과 문장 형태가 매우 우수하네. 


 (2007년 9월 20일 전송 '가족메일' 일부)

 ★규왕이와의 묘한 신경전

 규왕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네.
 "아빠 불쌍한 줄 알아야 한다. 샘골연립에 가서 자고 놀 때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시기 전에 집안 정리를 좀 해야 한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아빠가 집안이 어지러운 상태를 보면 얼마나 서글프겠니. 그리고 큰집에서도 네 방 정리에 신경 좀 쓰거라. 옷가지들을 여기저기에 벗어놓지 말고, 옷걸이에 걸어놓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네가 학교에 간 후 큰아빠가 네 방에 들어갈 때마다 한숨이 나고 신경질도 난다. 큰아빠 스트레스도 좀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니?"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을 다시 하지 않네.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의 실체를 계속적으로 확인하면서 포기를 하고 만 것일세.   

 전에 규왕이에게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네.
 "어른이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뒤에, 그리고 다 같이 기도를 한 다음 밥을 먹어야 한다. 그것이 예법이다."


 다음에는 이런 말을 했네.
 "너는 바삐 학교에 가야하고, 큰아빠는 집에 있는 사람이니, 큰아빠가 양보를 하겠다. 큰아빠가 식탁 앞에 앉기도 전에 너부터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큰아빠가 제재를 하지 않겠다. 그 대신 먼저 밥을 먹으면서 '큰아빠 진지 잡수세요'라든가, '저 먼저 먹어요'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는 하고 먹었으면 한다. 그런 짧은 한마디가 네 성격 형성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도 하지 않네. 역시 쇠귀에 경 읽기.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그런 식의 가정교육이 아예 필요치도 않았던 규애와 한결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삼키곤 하네. 그리고 늦은 시간에 집에 와서 늙으신 어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으면서 도대체 어머니의 식사 여부를 묻는 간단한 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제 아빠를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 '도신'을 했는지, 그 부전자전의 오묘한 이치를 절감하곤 하네.

 규왕이에게 최근에는 이런 말을 했네.
 "네가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네가 성호를 긋든 말든 큰아빠가 상관을 않겠다. 큰아빠가 보지를 못하니까 상관할 수도 없다. 하지만 큰아빠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성호를 그어야 한다. 밖에서도 식사 때마다 꼭 성호를 그으라는 강요는 하지 않겠다. 그 대신 집에서는 반드시 그걸 지켜야 한다. 네가 큰아빠 앞에서도 성호도 긋지 않고 밥을 먹는 것을 큰아빠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너는 큰아빠의 이런 태도에서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큰아빠는 큰아빠 앞에서도 성호를 긋지 않고 밥을 먹으려는 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네 스트레스만 생각하지 말고, 큰아빠 스트레스도 좀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니?"


 녀석은 큰아빠 앞에서 밥을 먹을 때 스스로 성호를 긋는 것과 그냥 밥을 먹으려다가 큰아빠의 지적을 받고서야 성호를 긋는 비율이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네. 녀석에게 성호를 그으라고 지적을 할 때마다 나는 한숨을 삼키곤 하네. 큰아빠 앞에서도 성호도 긋지 않고 밥을 먹으려는 녀석을 도저히 묵인할 수는 없고, 내가 왜 이런 고생까지 해야 하는지 비참한 심정이 되기도 하네.

 아기 시절부터 밥 먹을 때마다 성호 긋는 교육을 받아온 녀석에게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네. 아무래도 녀석이 고의적으로 그것을 기피하는 것 같네. 녀석은 요즘 학교에서 세계사 시간에 종교개혁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 같네. '면죄부'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하네. 아무래도 세계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개신교 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개신교 신자였던 조좌호라는 역사학자가 옛날에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면죄부'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던 그 영향이 오늘에도 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   
   
 언젠가 식탁에서 제수씨 얘기가 나온 적이 있네. 녀석은 엄마에게서 매를 맞은 적이 있는 것 같네. 엄마로부터 매를 맞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녀석이 엄마를 그리워하기는커녕 분노를 표시하는 것에 놀라움과 당혹감을 가졌던 그때의 기억이 아프게 재생되곤 하네.

 훗날 녀석이 오늘의 자신을 기억한다면 혹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글쎄, 녀석이 오늘의 자신을 기억할 수나 있을는지….


 ♣나는 중국 여행 5일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나 걸음을 걸을 때는 거의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네. 그래서 중국 여행 중에 묵주기도 300단을 할 수 있었네. 그 덕분에 전에는 몰랐던 천주교 신자 작가들을 알 수 있었고, 현재 냉담 중이시라는 노인이신 박하식 선생과도 심도 있는 신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네.

 그런데 여러 명 신자 문인들을 보면서, 늘 혼자 묵주기도를 하면서 묘한 외로움 같은 것을 느껴야 했네. 그들은 묵주를 아예 지니지도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왕왕 들고….

♣일행 중에는 몇 년 전에 <한국가톨릭문인회> 총무간사로 봉사했던 여성 작가도 한 명 있었네. 000 크리스티나씨. 인천공항에서 그 자매의 마중 나온 따님을 볼 수 있었네. 늘씬한 미인인데, 최근에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옛날에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세례명을 물으니 자신의 세례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네. 그 순간의 무안함과 섭섭함과 이상야릇한 배신감 같은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전에 <한국가톨릭문인회>의 총무간사까지 하신 분의 장성한 따님이 자신의 세례명도 모르다니…. 참으로 참담해지는 심정이었네.

★'전남기행' 중에서도 느꼈던 이상한 외로움

 지난 8∼9일의 '전남문인협회 초청 전국 문인 전남기행' 행사 중에 느꼈던 우울한 기억 한가지도 소개를 하겠네.

 나는 8일 저녁 영암 '월출산관광호텔' 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맨 먼저 한 일이 프론트에 가서 영암성당의 위치와 거리를 묻는 일이었네. 9일이 주일이어서 무엇보다도 '주일미사'를 궐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네.

 그리고 9일 새벽에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영암성당으로 달렸네. 네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잘해 주었지만 영암성당을 찾기가 쉽지 않더군. 그런데 영암성당에 주일 아침미사가 없다는 것이었네. 성당 안에서 기도하시는 노(老) 수녀님과 말씀을 나누었는데, 신자가 1500명인 영암성당에 주일 아침미사가 없다는 사실에 섭섭함과 실망감이 적지 않았네.

 혼자 기도를 하고 돌아왔는데, 호텔에서 충남 문인들과 어울리는 가운데서 다시 외로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네. 충남 문인들 가운데도 천주교 신자가 두어 명 있는데, 그들은 '주일미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것이었네. 그 어떤 곳에도 저녁미사 시간 안에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이 뻔한 상황인데도….

 그런 묘한 외로움 때문에 나는 더욱 버스 안에서도, 버스에서 내려 이동을 할 때도 노상 손에 묵주를 쥐어야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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