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복음 맛 들이기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9 조회수671 추천수7 반대(0) 신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미사 - 피는 생명이다

 

                                                                                         < 루카 9,23-26 >

 

  어머니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셨고 아버지는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결혼하기 위해서 세례도 받고 성당을 다니려고 했으나 부모님과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실망시킬 수 없어 결혼하고 나서는 성당에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불교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성당에도 다니지 못하시고 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같은 해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는 임종하시는 순간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보려하지 않으시고 어머니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을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리아란 세례명을 주시고 대세를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고모와의 관계가 더 안 좋아졌고 중간에서 아버지만 난처하게 되셨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우리들부터 성당에 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엔 미사를 안 가면 혼나니까 일단 나가서는 봉헌금으로 오락을 하다 오곤 하였습니다. 어쨌건 억척스럽게 우리 삼형제를 다 견진까지 시키셨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저를 사제로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사제가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가 결국 26살 먹고 늦게야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고모는 불교를 믿고 계시지만 어머니는 고모까지 성당에 나오게 하시려고 무단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작은 교회의 시작을 보았습니다. 결혼 초기 당신의 희생 위에 한 가정을 작은 교회로 탄생시킨 것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반드시 피를 흘려야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 어머니는 피를 흘립니다. 이는 커다란 상징입니다.

  신명기 12장 23절에는 “피는 곧 생명이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피를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생명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주인공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죄의 종살이인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나라로 인도한 예수님의 전형입니다. 이런 구원자가 세상에 태어나려하는데 악의 세력이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분노하여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집트인들은 많은 이스라엘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인구가 너무 불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오묘한 섭리로 모세만은 살려주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는 어땠습니까? 모세 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분노한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요셉에게 가족을 데리고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역시 예수님도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빛으로 세상에 오실 때 피와 함께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태어날 당시는 어땠을까요? 교회도 분명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지긴 했지만 더 많은 피가 필요했습니다.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습니다. 역시 교회도 피 위에 세워졌던 것은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하여 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꽃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얼마나 굳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무수한 고통 끝에 피를 흘리셨는지 잘 알고 있고 오늘은 그분들 위에 세워진 교회에 편하게 다닐 수 있음에 그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만약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 피를 흘리는 것처럼 교회가 탄생할 때도 많은 순교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악의 세력의 질투 때문이라고 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첫 째는 희생 없이 어떤 좋은 것도 올 수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성인 세례 교리를 마치고 면담을 하는데 한 자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성당에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교리를 받은 이후부터 안 좋은 일만 자꾸 생겨요. 그래서 세례를 받을까 안 받을까 고민이에요.”

  저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그건 당연한 거예요. 엄마가 아기를 낳을 때 고통스럽죠? 그건 세상에 한 생명을 나오게 하는 고통이에요.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매님은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들이 시기해서 그것을 막으려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겠습니까? 만약 어머니들이 해산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아기를 안 낳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면 새로 태어남의 큰 기쁨이 있을 겁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나 처음에 출발할 때 가장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속도가 나면 큰 힘이 들지는 않지요. 힘이 든다고 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매님은 잘 받아들이셨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의 순교는 우리에게 희생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세대에게 자극이 되고 양식이 됩니다.

  교회가 세상 것들에 의해 흔들릴 때 신앙인들은 항상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는 순교도 가혹했지만 그만큼 믿음도 불탔습니다.

  달구어진 석쇠위에서 뒤쪽은 다 구워졌으니 뒤집어 달라고 했던 라우렌시오 성인이나 달구어진 숯을 입에 대며 배교할 것을 강요할 때 당당하게 입을 벌렸던 유대철 소년이나 어머니의 목을 단칼에 베어 주십사고 휘광이에게 배를 곯으며 구걸해서 얻은 떡을 주었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주차장이 비좁아서 짜증내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미사 한번 드리기 위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옹기장수를 가장하여 순례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맹수, 산적들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 한번, 미사 한번 참례하기 위해서 며칠 밤을 산을 넘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죽어서 이 신앙의 선조들을 어떻게 떳떳이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박해가 가혹했어도 믿음이 불탔던 선조들에 비해 요즘은 신앙생활이 편해졌는데도 믿음이 미지근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선조들이 생명과 바꾸며 우리에게 물려준 신앙을 우리도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혈의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지금도 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돈을 빌려주고도 받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순교하는 것이고, 성당 다닌다고 나무라는 남편을 위해서 참고 기도해 주는 것이 순교하는 것이고, 나를 드러내지 않고 죽이는 것이 순교하는 것입니다.

  이런 희생들이 우리가 보이지 않게 흘리는 피입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그 피 위에서 새로운 믿음의 생명이 탄생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살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서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살 것이고 살기 위해서 피를 흘리지 않는 사람은 죽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