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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맛 들이기 -연중 제 23 주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6 조회수610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제 23 주일 - 검은 것은 검다 말하라
 
 
 
신학생 때 처음 유학을 나왔을 때 외국 맛을 보는 것은 잠시였고 바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우 네 달 언어 공부하고 대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고 그 더운 여름에 아프리카, 인도의 신학생들과 좁은 방에서 같이 자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방안의 온도가 삼십 도가 넘는데 같이 자는 신학생들에게선 생전 맡아보지 못한 냄새도 많이 났습니다. 또 그들은 한국 사람이 잘 산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자꾸 내 물건을 맘대로 가져가서는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토로하였더니 그 친구는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어!” 라며 위로 대신 충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고 또 힘들수록 물질에 대한 집착만 커진다는 것까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신부가 되어서 다시 유학을 나오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유학 나온 것에 대한 불만을 자주 이야기 하였습니다. 유학 나오기 싫었는데 순명으로 다시 나오게 된 사정이며, 막 본당신부가 되려던 것 등을 들먹이며 유학하는 것이 무슨 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인 양 나도 모르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또 그 친구가 이렇게 말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불평하는 모습 보기 안 좋아!”
나의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순간 또 기분이 안 좋았지만 남들에게는 매사에 감사하며 살라고 해 놓고 매일 불평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창피해졌고 앞으로는 그런 불평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좋은 친구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상대에게 충고를 해 주는 것은 작지 않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예언직”이라 합니다.
예언직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순교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러나 그 보복이 두려워서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잘못을 이야기해 줌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당사자에게 먼저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 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다른 사람을 데려가 함께 이야기 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그 때 공동체에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당사자에게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진짜 용기이고 사랑입니다.
 
로마에서 공부하다 보면 많은 신부님들을 만나고 여러 교구의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서품을 받고 본당에 보좌신부로 갔습니다. 첫 월요일 새벽에 그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주고 제의실에서 주임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작 시간이 다 되어 입당성가를 하려고 하기에 주임 신부님께서 아직 주무시던가 혹은 어디 나가셨거니 생각하고 제의를 입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마침 주임 신부님께서 들어오셨고 보좌 신부님은 주임신부님께 먼저 제의를 입으려 해서 죄송하다고 하였는데, 주임 신부님께서는 “보좌가 먼저 주례하려고 했으니 주례 해!” 라고 하셨고 보좌는 주임 신부님이 자신이 미사 하는 것을 보시고 모니터 해 주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줄 알고 그 말씀에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주임 신부님이 교구청에 계신 신부님께 전화를 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였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전 교구 신부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신부를 통해서 이 보좌 신부님은 이렇게 소문이 퍼져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좌가 처음 발령 받고 가서, 주일 11 교중 미사를 자신이 주례하려 하고 주임 신부에게는 강론을 하라고 시켰다.’
이미 소문이 퍼져있으니 뭐라 변명할 수도 없고 주임 신부님을 찾아가 말씀을 드렸더니 “자네가 주임 신부를 밀어내고 다 하려고 하는 줄 알았네. 그래, 내가 주례 하라고 했다고   하나? 끝까지 거부 했어야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자기도 모르게 교구에서 닮지 말아야 할 보좌 모델로 찍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주임 신부님께서 오늘 복음처럼 보좌와 먼저 이야기를 하셨다면 오해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다른 사람과 교회에 알려 막 사제가 된 신부에게 상처만 주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좋은 말은 그 사람이 없는 데서 하고 안 좋은 말은 그 사람이 있는 데서 하라.
 
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교회에 알리라고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교회의 권위는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교회가 하느님의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너희가 죄를 용서하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하느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만 제자들에게 그 권한을 주시는 것과 같이 하느님만이 지닌 하늘나라를 열고 닫는 권한을 교회에 부여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늘나라의 열쇠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만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 되라는 의도에서 베드로에게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통교하지 않는 어떤 성직자도 죄를 사하는 권한을 지닐 수 없습니다.
어쨌건 교회가 단죄하면 하느님께서 단죄하시는 것과 같은 권위를 지닙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광주 교구에서 나주 율리아의 기적을 거짓으로 단정하고 거기에 동참했던 사제까지 파문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교회가 자신들을 박해한다고 말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권위로 판단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당신 자신을 박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 영혼을 구원하실 계획이었지 개개인의 영성대로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항상 함께 모여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매님이 딸과 함께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음성을 듣고 보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교회에 알리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교회에는 알리지 말라고 하셨고 믿을 수 있는 사제를 찾아가라고 하셔서 저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몰래 활동하라고 성모님께서 그러셨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100% 악의 세력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 목적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지만 그 자매는 주위 신자들에게 “성모님께서 이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라는 식으로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에 빠지지도 그런 사람들에게 속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교회가 자신들을 박해한다고 생각하고 혹은 자신이 더 옳다고 여긴다면 자신은 예수님께서 당신 대리자로 세우신 교회보다도 떠 뛰어나다는 교만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가장 마지막으로 알리라고 하신 것은 마치 대법원처럼 그 권위가 최고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무엇이든 교회의 권위까지 가지 않고 해결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모두 잘못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사랑으로 지적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언직에 대해 잘 나와 있는 오늘 제 1 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 로마에서 유학 중이신 전삼용(요셉) 신부님의 주일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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