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존경심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6 조회수550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최근에 존경심이 없으면 어떤 인간관계든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관계든, 부모자식관계든, 친구관계든 무릇 모든 인간의 관계는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경원하게 마련인 것 같다. 존경심은 상대방을 높이 우러러 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기에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면 관계를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경한다는 것은 사랑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언제나 솔직하고 때묻지 않은 양심을 가져야만 존경심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기심과 자존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많아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인들에게 말했듯 바르게 사는 사람은 쓰레기처럼 되어버리고 있다. 오늘의 작태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는 것 같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양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1코린 4:7-11)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오로 사도처럼 이지적인 사람은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쓰레기처럼 취급 받고 있는 것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지금도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심지어 가족간에도 사랑이 없다. 가장(家長)은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고 어머니는 가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롤하이저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면서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것도, 그 느낌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도 우리들의 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잘못 오해한 경험 즉 사랑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라든지, 사랑이 시들해져 있는 듯한 느낌이라든지, 다른 사람과의 사랑에 빠지면서 사랑이 식어 버렸다든지 하는 오해를 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자신이 느꼈던 느낌이 바뀌어 영원히 지속되거나 사라진다는 것과 쓰라림을 느끼고 환멸을 느끼고 배신을 느끼는 채로 남아 있는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혼, 깨어진 우정, 시들어버린 사랑과 같은 비극이 생기게 되면,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하는 질문을 하면서 몹시 괴로워하게 된다.
 내 마음이 나를 속이려고 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사람은 나의 훌륭한 배필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사랑에 빠져있는가 아니면 너무 순진하여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을 이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랑은 언제나 사람을 눈 멀게 하여 신비스럽게 느끼고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인생이 하루살이 같지만, 눈 멀지 말고 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 말고 참사랑을 알려고 애써야 한다.
 과연 무엇이 참 사랑인가? 참사랑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 갈 때와 같은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집이란 당신을 맞아 들이는 곳이지, 당신이 벌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봉사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헨리 뉴엔(Henri Neuwen)이 정신지체 장애자 공동체 라르쉬(L’Arche)에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라르쉬 공동체에서 얼마나 특이한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거기서 심지어는 나를 전혀 감동시키지 못했던 사람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다.” 이 말에 들어 있는 뜻은 “무엇이 참사랑인가?"하는 질문의 대답에 도움이 된다.
 
 참사랑이란 항상 귀가(歸家)하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집은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봉사하는 곳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비록 당신에게 감동을 주지 않더라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와 같이 참사랑이란 항상 안전한 곳, 가정, 우리들이 귀항하는 안전한 항구로 느끼는 것이다. 그곳은 쉬는 곳이다. 따라서 원하지 않아도 또는 필요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갖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반면에 참사랑 같이 느낄 수 있는 홀림이나 구속하고 불안전한 곳이며, 아주 불안한 곳이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들이지 않는 곳”이며, 벌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며, 일을 수행하고 감동을 주어야 하는 곳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거나 친구를 사귈 때, 안전하지 못한 항구로 생각하여 귀항하고 싶지도 않은 항구와 같이,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들에게 홀리고 빠져드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흥분하고 정겹게 지낸다. 마치 마약중독에 빠진 듯 홀린 듯 안절부절못하면서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흥분과 강박관념이 사라지고 안정을 되찾게 되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결코 집 같은 포근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참사랑과 진정한 우정은 집과 같다.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친구들을 떠나서 다른 집으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느끼면서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이런 사랑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삶에 활력을 주기는 하지만, 결코 그런 사랑만으로는 결혼하지 못하며 참된 우정을 가질 수도 없다. 따라서 결혼 상대나 절친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집에서 느끼는 포근함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사랑은 집인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어떤 사람과 한 마음이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재미 있고 만나고 싶어져도 그 사람은 관계의 일원일 뿐이며 점점 멀어져서 각자 다른 길로 가는 즉 각기 다른 집으로 가는 사람일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비록 고통스러워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라도 어떤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관계는 옳은 곳 즉 집으로 찾아가지 못하고 방황하게 만든다. 참사랑은 집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봐야 한다. 파스칼이 말한 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내면 깊이 들어가면 어느 곳이 진정으로 쉴 수 있고 감동을 주거나 사명을 다하지 않아도 되고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벌지 않아도 되고 안전하게 느끼는 자신의 집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200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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