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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6일 야곱의 우물- 루카 6, 1-5 묵상/ 성시간의 준수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6 조회수435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시간의 준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루카 6,1-­5)
 
 
 
 
◆유럽에서 10여 년 유학 생활을 할 때는 그런대로 안식일을 제대로 보냈던 것 같다. 아무리 세속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고는 하나 그곳의 문화는 여전히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닫고 거리는 한산하다. 자연히 쉬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well-being’시대를 맞이해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을 근면의 덕으로 여기거나, 그것을 강요당하는 환경이 엄연히 존재한다. 나 역시 과제수행에 대한 압박감으로 안식일의 평온을 잃을 때가 많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천명하셨을 때, 이는 안식일 규정 폐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참된 의미를 일깨워 주며, 당신이 바로 그러한 규정의 ‘입법자’임을 선언하신다. 그에 비해 우리 신앙인은 그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창세기의 보도처럼 안식일의 성시간이 하느님에 의해서 일상의 시간과 구분되었다면, 그로부터 속(俗)의 시간 역시 ‘종교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의 ‘휴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제 일상의 노동을 ‘고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성속(聖俗)의 시간 구분 없이, 곧 안식일의 휴식에 참여함이 없이, 그저 일만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들한테는 미덕이 될지 몰라도 결코 ‘종교적’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좀더 인간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안식일의 문화’를 확산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가령 ‘신체’와 ‘지성’만 혹사당하는 우리 자녀들에게 억압당한 ‘영적 감각’이 최소한 안식일에는 자유롭게 발아되도록 마음 써주는 것이 한 보기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 자신도 누려야 하지만.
이종진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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