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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70 - 버스 안 '성찬의 전례' (메스티아/조지아)
작성자양상윤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30 조회수669 추천수1 반대(0) 신고

 

‘메스티아’는 트빌리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다

 

주간에는 6시간, 야간에는 9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아마도 야간에 정차하는 역이 주간에 정차하는 역보다 많은 모양이다)

 

‘주구디디’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곳까지 다음

 

다시 현지 말로 ‘마슈로카’라고 부르는 조지아의 대중교통인 미니 버스를 타고 세시간을 가야 한다.

 

항공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좌석이 많지 않은 작은 비행기라 예매하기도 힘들고

 

좋게 예매를 했다 하더라도 산속에 있는 비행장이라 기상 상황이 변화 무쌍하여

 

자주 취소가 되기 때문에 일정이 넉넉하지 않은 여행자들은 대부분이 기차를 이용한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그곳까지 가는 것은 대단한 역사적 볼거리나 건축물 등이 있어서가 아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그것과 어우리진 보존된 마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는 또하나의 이유는 ‘우쉬굴리’라는 마을로 가기 위해서 이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에서 좀더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지금도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로 자주 길이 막히고

 

겨울 동안에는 아예 길이 차단되어서 마을이 봉쇄 정도로 오지에 있는 마을이다.

 

이런 지형적인 이유로 메스티아보다 조금더 마을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더불어 트래킹 코스도 유명하다

 

하여 조지아에 관광객들이라면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나의 ‘메스티아’ 일정은 ‘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로 돌아와서 당일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이어서

 

카즈베기로 가기 전에 이미 기차표를 발권해 두었다,

 

하지만 ‘카즈베기’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서 메스티아에서 트빌리시로 한번에 오는 ‘마슈로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좁은 안에서 아홉 시간을 보내는 불편함을 참아내야 하지만

 

내가 야간보다는 주간 이동을 선호하기도 하고 때는 기차를 타고 돌아올 버스를 타면

 

다른 경험을 있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돌아오는 기차표를 환불했다.

 

 

 

‘메스티아’는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의 풍경과 주위의 풍경을 한눈에 있는 산중턱까지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나름 관광인프라가 잘되어 있다,

 

여전히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도시에서 많이 떨어진 산촌이라 사실 그것 말고는 업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기는 하지만

 

산으로 둘러 쌓인 마을이다 보니 농사지을 땅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크게 목축업을 있을 만큼의 초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지도 않아서

 

아마도 정책적으로 관광을 육성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전에는 그대로 산속 시골 마을 이었던 곳이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중인 같다.

 

그래도 지내는 동안 식당이나 카페 그리고 상점이나 숙소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태도에서

 

‘관광지’라기 보다는 여전히 시골인심이 남아 있는듯해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보다 오지이다 보니 여행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메스티아보다 훨씬 부족하기는 하지만

 

마을 곳곳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

 

‘이런 분위기 인줄 미리 알았다면 분명히 메스티아가 아닌 이곳에서 지냈을 것’이라고 확신할 만큼

 

취향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 메스티아

 

 

 

  - 우쉬굴리

 

 

 

‘메스티아’와 ‘우쉬굴리’의 일정을 마치고 ‘트빌리시’로 돌아가기 위해 미리 예약해 놓은 ‘마스로카’에 오르니

 

안은 이미 현지인들과 현지인들의 짐들 그리고 여행객들과 그들의 배낭과 케리어들로 한가득이다,

 

여행객들의 짐들이야 자신들의 살림살이 전부이기에 나름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현지인들도 아홉 시간이나 걸리는 도시로 자주 가지는 테니

 

모처럼만에 가는 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바리바리 짐을 싸다 보니 부피가 커지는 모양이다.

 

이렇게 짐들이 가득한 버스안에 만약 짐을 놓을 자리를 찾지 못하면 의자 밑에 넣어야 하고

 

그러면 아홉 시간 동안이나 발을 뻗지 못하고 쪼그리고 가야 하는 고문 아닌 고문을 받아야 하는데

 

다행히도 버스에 계시던 현지인 분이 짐을 받아 버스 뒤쪽에 쌓여있는 짐들 사이에 자리를 만들어 쟁여 넣어 주신다,

 

하지만 나보다 나중에 서양 청년은 이상 짐을 놓을 자리가 없어 의자 밑에 넣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보다 키에 다리도 훨씬 긴데 아홉 시간 동안 쪼그리고 가야 하는 상황에

 

본인도 당황스러워하고 그것을 보게 오지랍 넓은 나도 그가 안쓰럽다.

 

하지만 안쓰러움은 그저 마음일

 

나는 쓸데 없이 넓은 오지랍에 비해서 너무나 좁은 배려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짐을 빼고 그의 짐을 넣어 주는 착한 행동 대신

 

‘늦었으면 나도 날뻔했네!’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나는 많은 순간 나의 너무 넓은 오지랍과 그것에 비해서 너무나 좁은 배려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거면 오지랍이라도 넓지 말던가!

 

‘메스티아’가 관광지이기는 해도 그렇게 지역이 아니라서 다들 아는 사이인지

 

버스에 타고 있는 현지인들끼리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가고

 

새로운 현지인이 버스에 올라 마다 모두들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내가 전혀 말을 알아 듣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표정으로 보나 대화의 억양으로 보나

 

아마도 예전 우리나라 마을 사람들끼리 만났을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는 같은 일상적이지만 따뜻한 친근감의 표시인 듯싶다.

 

역시나 원래의 출발시간보다 훨씬 늦게 출발한 버스는 이상 자리도 없고 해서

 

그대로 ‘트빌리시’까지 가는 싶었는데 메스티아를 한참 벗어난 후에도 중간에 명을 태운다,

 

버스 밖으로 멋진 풍경이 어쩌다 한번씩 지나

 

대부분 평범하고 비슷한 계곡과 마을의 풍경들이 지루하리 만치 계속 해서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차의 밖으로 보이던 짙은 어둠 보다는 훨씬 낮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점심때쯤 해서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에 멈췄다,

 

한국의 도로변 휴게소만큼 크거나 시설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풍경을 보고 자리를 잡았나 보다! 싶을 정도로 멋진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조지아’의 휴게소는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하고 끼니도 때워야 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문 받은 빵을 즉석 해서 구워 팔고 있다,

 

주문 받는 빵이라는 것이 종류이고

 

미리 준비해 놓은 반죽에 치즈나 고기를 넣어 쉽게 만들 있는 단순한 모양이기는 해도

 

한국에서나 여행을 다니면서도 음식이 아닌 빵을 이렇게 주문을 받아 바로 구워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가게에 우리가 타고 버스 말고 다른 일행들까지 있어서 그런지

 

가게 안이 사람들로 가득하고 주문을 받는 사람이나 화덕에서 빵을 굽는 사람이나 다들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다,

 

나도 차례를 기다려 하나를 주문했더니

 

주문을 받는 사람이 나에게 ‘노 미트, 치즈’라고 아주 단순한 영어를 말한다.

 

‘작은 가게에 평소 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준비해 두었던 고기와 치즈가 떨어졌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예스’라고 대답했다.

 

점심 식사로 먹는 것이니 그래도 탄수화물만 있는 보다는 단백질이 있어야 요기가 되기는 하겠지만

 

다른 선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기다리는 동안 음료수를 고르고 주문한 빵을 받아 밖으로 나와 멋진 숲은 바라보면 먹고 있자니

 

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들이 고기도 들어있고 치즈도 들어있는 빵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상황인지 잠시 황당해 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가 말한 ‘노 미트, 치즈’는 ‘고기 없다, 치즈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고기 없는 , 치즈 없는 것을 원하니?’라고 나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최소한 Have Want 정도의 단어만 추가 되었어도 제대로 이해 있었을 같지만

 

어째든 같은 단어의 말이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나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빵을 먹게 것이다.

 

이렇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불편하기도 하고 서로 오해 하는 일이 생길 때도 많다,

 

그렇지만 말이 통한다 해도 오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느낌의 전부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도 전달 수도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내 속을 뒤집어서 보여주고 싶다!”라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물론 보여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때도 있지만)

 

이렇게 말이라는 것이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칫 이해할 수도 있고 오해를 불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이 하는 말이 사람 마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한마디에 실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소한 한마디에 밤새 들고 뒤척이기도 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경험이 있고 나이 들면 익숙해져서

 

상처 받는 말을 듣더라도 훨씬 덤덤해지고 무뎌지리라 기대했지만

 

지금도 어떤 때에는 한마디에 폭풍 바다의 파도처럼 마음이 요동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내가 새가슴에 성격이 너무 소심해서 어쩔 없는 것인가?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의 한마디에 마음속에 폭풍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웃자고 하는 농담 한마디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휴게소에서 먹은 빵

 

 

 - 휴게소에 들린 마슈로카


 

 

 

다시 한참을 가던 버스가 어느 곳에선가 섰고 승객중의 명이 내리더니

 

잠시 봉지에 커다란 빵을 들고 올라왔다.

 

차창 밖으로 보니 길가에 몇몇 노점상이 나란히 있고 모두 같이 생긴 빵을 팔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천안에 가면 호두과자를 먹어봐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이곳에 왔으면 의식처럼 먹어봐야 하는 지역의 특산물인 듯하다.

 

그는 빵을 조금 띄어내더니 ‘맛이라도 보세요’라는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사람에게 빵을 넘긴다,

 

그것을 받은 사람도 조금 띄어내더니 또다시 사람에게로 넘기고

 

그렇게 빵은 버스 안을 돌고 돌아 모든 사람에게로 갔고 나도 맛을 보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같은 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모습이

 

천주교 신자인 눈에는 마치 빵을 함께 나누는 ‘성찬 예식’ 같다는 느낌을 들었다,

 

지금이야 성찬예식 조그마한 인용(?) 제병을 사용 하지만 예전에는 커다란 빵을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물론 빵을 사서 돌린 사람이 심각하고 깊은 의미를 두고 행동이 아니라

 

그곳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인간미 넘치는 시골 인심에 기인한 것이었겠지만

 

이렇게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이야 말로 생활 속에 실현된 ‘성찬의 전례’가 아닌가 싶다.

 

어째든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버스 안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은

 

쉽게 없는 특별한 경험이 분명하고 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홉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오면서 깊이 잠이라도 들어었으면 하는 생각을 정도로 지겹기도 하고

 

좁고 불편한 의자에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중간 중간 겪었던 작은 일들 덕분에 밤열차를 탔을 보다는 훨씬 좋았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이고

 

만약 또다시 기회가 주어 진다면

 

육체적으로는 편하지만 밖으로 암흑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미건조한 밤기차와

 

여행을 즐길 있지만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버스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쉽게 결정 없을 듯하다,

 

지나면 추억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닥치면 몸으로 견뎌 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상과 현실, 내가 원하는 것과 현실은 항상 차이가 나는 것인지?

 

아마도 차이가 적을수록 행복에 가까워 지는 것이 아닐까 싶고

 

우리들의 삶이란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긴 여정’이지 싶다.

 

- 10, 20, 30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메스티아 풍경

 

 

 

 

 

 

 

 

 

 

 

우쉬굴리 풍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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