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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실수로 금요일 복음을 묵상했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07 조회수1,486 추천수1 반대(0) 신고

 

우리는 살면서 타인을 향해서 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 돌은 비난과 비방의 돌일 수 있습니다. 그 돌이 비난과 비방 수준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한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백 번 양보해서 상처까지도 괜찮다고 애써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 상처를 통해서 물론 아프겠지만 하나의 성장통이 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논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해서 항상 허용이 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허용이 되고 또 용납이 되는 범위는 그 사람이 그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범위 내에서는 괜찮을 수가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한 영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급기야는 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을 등지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한 영혼 하면 그냥 쉽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일 겁니다. 우리가 돌을 던질 때 만약 그 영혼이 우리는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금쪽 같이 아끼는 영혼이라고 가정한다면 과연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다면 쉽게가 아니라 던질 엄두도 못 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에도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에게는 그 수하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가해를 가하고 싶어도 그 사람 뒤에 있는 배경 때문에 쉽게 가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세상 정치에서 보더라도 권력 앞에서는 이런 논리가 적용됩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힘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정말 귀한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 논리와 하느님이 사시는 하느님 나라의 논리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그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는 단지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하였다는 이유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신성모독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또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돌을 던진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의 스승 정도의 예언자 정도로 생각했고 또 하나의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전혀 그분에게서 하느님의 신성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보지 않는 것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보려고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려고 하는 의지를 막은 것은 바로 자기만의 고정관념과 의식 때문입니다. 그게 자기의 눈을 가려서 그 의지를 막은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그런 관념에서 탈피했더라면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예수님 말씀처럼 하나의 사람으로 설령 본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그동안 하신 일을 보면 그 일을 통해서 예수님은 신뢰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 일을 역사하시는 분은 분명 하느님이 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의도의 뒷 배경에는 이런 뜻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때는 예수님의 신성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논리를 다시 서두에 말씀드린 것과 연관지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들여다보면 이런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겁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돌을 던지는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우리도 그당시 유다인들처럼 우리의 행동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지 못하였듯이 우리도 우리의 영안이 우리의 탐욕으로 인해서 가려져서 실제 우리가 돌을 던지는 그 대상이 우리가 생각한 그런 영혼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는 아주 귀중한 영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에게 한 행위가 언젠가 하느님 심판대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듣게 될지를 한번 묵상해보게 된다면 이는 우리가 어떤 한 영혼을 단순히 판단하고 쉽게 생각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만약 그 영혼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서 받은 영혼의 상처로 인해 그 영혼이 말로 하기 힘든 고초를 겪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가를 분명히 하느님 심판대에서 하느님께서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 대해 던지는 그 돌이 지금은 나에게 오지 않지만 아니 이 세상에서는 안 온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의 돌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돌의 위험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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