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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09 조회수1,731 추천수1 반대(0) 신고

 

희극인 챨리 차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한 희극인이 남긴 말이지만 참 많은 묵상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번의 인생인데 보는 위치에 따라서 비극이 될 수도 있고, 희극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위치에 따라 결정이 되지만 이 위치는 말의 의미는 물리적인 위치에서의 의미이지만 실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희극과 비극으로 갈릴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한 말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앙인의 신분으로 신앙인답게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해도 그 신앙생활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삶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신앙생활 그 자체도 하나의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논리로 말한다면 신앙생활도 마치 희극이냐 비극이냐로 양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논리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마치 신앙이라는 인생의 삶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지레 짐작하여 자신의 신앙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은 금물일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이라는 것도 신앙 이전에 하나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긴 하지만 의무감에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말입니다. 의무감에서 하기 때문에 때로 신앙이 불편한 짐과도 같은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이건 신앙을 가진 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일반적인 신앙인의 수준을 넘어선 수준에 다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챨리 차플린이 한 말을 통해서 본다면 이 짐이 십자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보기엔 짐이라고 생각했던 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짐이 이 십자가가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목적지가 서울인 기차가 있다고 했을 때 서울이 인생의 목적지인 것처럼 만약 천국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중간에 역을 거쳐서 최종 서울에 도착할 것입니다. 대구, 대전, 천안, 평택 이렇게 거쳐서 갑니다. 대구에서는 고역 같은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게 천안을 거칠 때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신앙이라는 게 이렇듯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길만이 예수님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남의 신앙생활이 자신이 보기엔 행복해 보이는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도 모를 일입니다. 나자로와 부자의 비유에서도 언급된 말씀처럼 나자로는 이 세상에서 힘든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로 천상에서는 위로를 받는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꼭 이런 내용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신앙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꼴찌 같지만 첫째가 될 수 있고 또 지금 첫째 같다고 해서 끝에 가서도 여전히 첫째로 남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될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신앙의 길이 가시밭길 같은 고난의 길이고 시련의 길이라고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지금은 비록 힘든 여정이지만 이 길 끝에는 가시밭길이 아니라 꽃길로 이어지는 그런 날이 올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예 학예전에서 물론 선생님이 주신 문구이지만 저의 문구는 '불행을 고치는 약은 희망이다'였습니다. 지금 연예인이 된 친구 김여진도 같이 학예전에서 했던 친구입니다. 챨리 차플린이 남긴 말을 보면 마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며 아주 흡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진다고 하신 말씀처럼 단순히 그 구원을 목적으로 해서 간다기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이승에서의 삶 속에서 같이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것처럼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한결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실제 그게 사실이라면 이런 삶이 나중에 하느님 대전에서는 그 얼마나 영광을 받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힘든 일이 있어도 잠시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하느님께서 주실 생명의 화관을 보며 바오로 사도처럼 달릴 길만 보고 앞만 보고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희망한다면 분명 끝까지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바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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