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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제와 다른 오늘 (김한수 토마스 신부 / 종로성당 주임)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7 조회수2,24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2417(다해) 주님 부활 대축일

 

어제와 다른 오늘

김한수 토마스 신부 | 종로성당 주임

 

소풍을 나서는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었습니다. 죽은 이를 마주 대해야 하는 무덤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마주 대해야 하는 현실에는 상실과 허탈, 절망과 슬픔이 끝없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절망의 길을 나섰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무덤이 비었습니다. 당혹스러워 건넨 말이 주님 부활을 암시하는 첫 말이 되었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

어제까지 일로 힘겹고 슬픔이 가득한 마음으로 나선 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빈 무덤. 예수님의 장례를 지내고 안식일 다음 날 찾아간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복음서의 증언은 여러 사실과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다이즘의 주간 첫날이 주님의 날이되어 교회와 세상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증언의 유효성은 남성에게만 있었음에도 초기교회는 부활의 첫 증인(선포자)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부활에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측면에서 당혹스럽지만, 교회는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마태 28,11-15 참조; 정원지기가 그분을 다른 무덤으로 옮겼다:요한 20,15참조)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증언은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사건입니다. 빈 무덤의 상황은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역사입니다.

수난에서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빈 무덤의 상황, 아니 그 이전에 말씀 선포자와 스승으로의 삶, 더 나아가 초라한 탄생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예수님 삶에서 신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더라도 역사적 영역은 남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역사적 영역입니다. 예수님 생애에서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영역은 여기까지입니다.

 

빈 무덤부터는 다릅니다. 여기부터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빈 무덤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는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빈 무덤을 대하는 당혹스러움은 모두가 한결같지만, 그 반

응은 각자 다르게 이어집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에서 희망을 엿보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곳에서 믿음과 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빈 무덤을 마주 대한 순간 절망 가득한 어제까지의 현실이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빈 무덤에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작이며 핵심인 주님 부활 신앙이 피어납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오늘부터 기쁨과 희망으로 새로운 길을 나섭니다.

슬픔과 절망이 가득했던 어제의 발걸음이 오늘은 새로운 기쁨의 소식으로 가볍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빈 무덤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무덤이 비었을 뿐이라는 냉소를 넘어 오늘 마주하는 빈 무덤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희망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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