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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은 견딤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30 조회수762 추천수8 반대(0) 신고
 

고통은 견딤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


스위스의 분석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고통은 극복되어야 한다. 고통은 견딤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고통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뿐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고통을 엄청나게 경험하셨다.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병과 고통을

살피셨다. 고통을 피하지도 자초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배척할 때, 유다가 배반할 때,

제자들이 떠날 때, 그분은 상심했다.

예수님은 온갖 고통을 두루 겪으셨다: 고독, 버림받음,

유죄판결, 배척, 상심, 모욕, 조롱, 약점 폭로, 비웃음,

그리고 끝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


고통의 정점은 죽음이었다. 적대자들의 야유와 조롱을

들으며 제자들에게마저 버림받은 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라는

예수님의 절규 성 기도는,

하느님께 버림받는 자의 신세 한탄이기도하다고

일부 신학자들은 말한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음 앞에 방치하는 하느님께

어떻게든 매달려 보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고통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그 경험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를 막아 주었고

박해를 견딜힘을 주었다.


바야흐로 고통에 대한 비인간적인 견해들이 횡행하는

요즈음 추세다. 고통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등,

모든 고통은 자업자득이라는 등, 이런 태도는 대개 고통을

죄책감이나 자학과 관련짓게 마련이다.


자초한 고통도 있겠지만,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도 있다.

나는 예수님의 수난사를 읽고 깊이 묵상하면서 내 고통이

누구 탓인지, 내 탓인지, 남 탓인지, 하느님 탓인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저 힘닿는 대로 세상 고통을 없애려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바꿀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인다. 혼자만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나는 예수님과 결속되어 있음을 체험한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과 굴욕과 억압 속에서도 예수님과 결속되어

있다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킨다.


고통은 내 삶의 신비가 무엇인지 깨닫는 곳이다.

그곳에서 하느님은 내가 고통당할 때 당신의 자애로운 손길로

나를 보듬어 주시는 분으로 새롭게 나타나신다.


여러분은 남과 자신의 고통을 얼마만큼 외면했습니까?

여러분은 고통당한 사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그들 겉에 다가가 손 내밀 수 있습니까?

난데없이 닥치는 고통은 어쩌렵니까?

삶을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예수님이 얼마나 힘이 됩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릔 신부 지음.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통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삶이 어떤 가치를 지니겠습니까?


내 고통이 그처럼 힘들고 힘겹기 때문에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인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고통이 극복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오히려 기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기댈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예수님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참을 수 있으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고통을 다 끓어 안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면서

세 번이나 지쳐 넘어지셨고 십자가에 매달려 오상의 상처를

받으셨으며, 

처참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를 찾으시며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면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건너편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누구나 다 부활합니다.

어떤 상태로 부활을 맞이하느냐가 이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쓴 즙을 빨아들인 벌이 달고 단 꿀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우리들도 고통과 어려움을 받아드려 희망과 부활을 맞이하여

영원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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