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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절한 순서와 아량을 -반영억신부- (마태오 17,22-2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8 조회수45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년 8월 8일 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마태오 17,22-27)

도니미코 성인은 스페인의 구즈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어려서부터 성덕을 닦는 데 몰두하였고 열정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설교하여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이끌었다. 성인은 1215년 수도원을 창설하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 전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설교의 사명을 수행하다가 병을 얻어 1221년 선종하였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당시에도 세금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로마에 바치는 ‘인두세’는 반란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14세부터 의무적으로 인두세를 바쳐야 했으니 분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다 성전 세도 내야 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는 해부터 해마다 두 데나리온을 바치는 세금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화폐인 ‘세켈’로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전에는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이 있었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돈 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움켜쥐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돈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기쁘게 내면 기쁘게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꺼이 세금을 내셨습니다
.
돈은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데 ‘생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탓에 돈의 속성인 불안과 걱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돌고 돌기에 돈’이라는 말은 옛말입니다. 지금은 ‘너무 좋아하면 머리가 돈다.’는 의미에서 돈입니다. 실제로 돈을 너무 좋아해 머리가 돌아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두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이러한 예고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셨으며, 당신께서도 거기에 기꺼이 동의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은 우리 이성으로 쉽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합니다. 성전 세는 성전 유지와 희생 제물의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성전 주인이나 제관들은 납세 의무가 없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인 만큼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주인이시며 제자들은 그 식구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시빗거리가 되지 않게 하시려고 세금을 내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몫을 제대로 바치고 있습니까?

 

 

적절한 순서와 아량을

  -반영억신부-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전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만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년 은 반 세겔을 성전세로 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 성전세로 성전을 유지하고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과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사제들은 납세의 의무로부터 면제 대상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십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 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 같아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원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하면. 성전유지를 위한 성전세와 같은 것이 오늘의 교무금이나 봉헌금입니다.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성전을 유지하고 사제의 생활을 보장하며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쓰여집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는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제때에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납세의 의무가 없었지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기쁨과 고마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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