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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가 고파서'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18 조회수651 추천수4 반대(0) 신고

"배가 고파서" (마태 12,1-8)

 -유광수 신부-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였다. 바리사이들이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이의를 제기할만도 하다.

 

 왜냐하면 율법규정을 곧이 곧대로 지키는  것을 생명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온 바리사이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바리사이들에게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가 분명하다. 어떤 경우라도 절대로 일(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바리사이들은 해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분명하다. 이런 원칙을 세워 놓고 그대로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도 삶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어떤 기준이 없을 때 혼동이 오고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혼동이 올 수가 있다. 그러나 삶의 원칙을 정해 놓고 살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고 정말 우리가 지켜야할 삶의 원칙은 어떤 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은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인간이 법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즉 법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어떤 특정인만을 위해서 또는 인간을 법이라는 굴레에 메어 놓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삶의 질을 높이고 공동선을 위해 만들어 놓은 법이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공동선을 해치는 경우도 있게 된다. 그런 일은 법을 만들어 놓은 본래의 취지를 잘 못 알거나 공동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인만을 위해 잘못 이용될 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인간이 만든 법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해야 하고 올바른 해석이 뒤 따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하더라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게 되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이의를 들으시고 그들의 이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다. 그래서 율법의 본래의 의미를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레위 24,8과 민수 28,8-9에 나오는 내용을 들어 설명하시는 것이다.

 

구약의 예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 '내가 원하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인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로 바리사이들이 이의에 대답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바리사이들의 잘못은 인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본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도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죄없는 이들을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마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가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무시하거나 죄없는 이들을 단죄해버리는 어리석은 일들이 얼마나 우리 생활 속에서 자주 일어나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 1-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 안식일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는데 그것이 잘한 일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이 잘한 것인지 아니면 잘 못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바리사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만 설명해주셨을 뿐이다. 그러니까 바리사이들의 행동에 가장 큰 잘못은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보다는 법을 우선시 하였다는 것이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들이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 '내가 원하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무엇보다 사랑의 법이 우선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법도 사랑을 막는 법은 없고 사실 사랑의 법보다 우선시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단 한 가지의 법만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법이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릉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바오로의 말씀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코전 13, 1-7)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안식일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는데 바리사이들은 그런 행동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를 올바로 알아 들을 수 있다면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들은 안식일에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한 것이고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말인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라는 말은 단순히 밀 이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밀 이삭이란 예수님의 몸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 미사 참례 때에 밀떡으로 만들어진 성체를 받아 모시듯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성체를 받아 모셨다는 것이다.

 

한편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였다."는 것은 주일에 성체를 받아모시지는 않고 다시 말해서 주일 미사참례는 하지 않으면서 미사 참례하는 다른 사람들을 잘못했다고 판단는 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그들이야 말로 안식일에 해야할 주님께 찬미를 드리고 주님을 모시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이야 말로 안식일(주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주일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님에 대해서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먹어야 한다. 매일 먹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주일만이라도 주님을 먹어야 한다.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표현은 성체성사를 표현하는 언어이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우리는 늘 주님에 대한 배고픔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주님을 먹어야 한다. 주님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낀다는 것은 제자들의 참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주님의 제자이면서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 전혀 주님에 대한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주님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는데 어떻게 주일 미사를 기다릴 수 있으며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겠는가? 주님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는 사람만이 아침 저녁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린 배를 채우고 목마름을 해갈시킨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마태 5, 5)이라하고 진복팔단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배부르지 아니하고 목마름이 해갈 되지 않는다. 오늘 부터라도 우리가 진정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즉 나를 안식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또 나 자신이나 주위 환경도 아닌 바로 사람의 아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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