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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16주일 /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작성자신희상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0 조회수481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16주일 / 조재형가브리엘 시흥5동 성당 주임신부


제 방은 성당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습니다. 방에 누워서 가만히 있으면 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그렇습니다.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어떤 비행기는 멀리 떠나는 것이고, 어떤 비행기는 이제 돌아오는 것입니다. 멀리 떠나가는 비행기 소리보다, 돌아오는 비행기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더군요. 평소에 분주한 일상에서는 거의 듣지 못하는 소리입니다. 지난번 ‘성모의 밤’ 때도 조용한 밤이어서 그런지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희 성당은 나은 편입니다. 제 친구가 있는 신월동은 비행기가 훨씬 많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항에 가까워서 거의 모든 비행기는 바퀴를 내린 채로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비행기를 그리라고 하면 다른 동네 아이들과는 달리 바퀴를 내린 비행기를 그린다고 하네요. 아이들은 본데로 그리는 거니까요? 우리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마음을 열면 이웃들의 아픔과 슬픔, 희망과 기쁨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쥐들을 한데 모아놓고 맛있는 치즈를 주면 치즈를 먹기 위해서 싸운다고 합니다. 충분히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치즈를 주어도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고 합니다. 동물의 왕 사자들도 먹이를 앞에 놓고 서로 으르렁 거리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냉엄한 법칙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동물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어느 장애인 달리기 대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등으로 달리던 장애인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2등으로 달리던 장애인이 앞서 가다 돌아와서 넘어진 장애인을 일으켜 세우고 함께 걸어갔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결승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늦게 들어온 이 두 사람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고, 이 두 사람이 진정한 승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제 1독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관대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들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와 같은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하십니다. “밀밭에 뿌려진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십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장애인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의 기반 시설들을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걷는 것도, 차를 타는 것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이용하는 시설들에 대해서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교도소에 수감을 시키고 일정기간 사회와 격리 시키는 것이 우리의 교정방법입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몇 번을 다녀와도 진심으로 마음이 바뀌고 뉘우치는 것을 보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교도소에서 진심으로 ‘교정’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재활의 기회를 줄 때 ‘교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본당 공동체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분위기를 어색하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 교우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공동체에 평화가 오고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데, 정말 이상하게 이사를 가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된 사람이 없어진다고 해서 참된 평화가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암에 걸렸지만 완쾌된 사람들은 대부분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봅니다. ‘결코 암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암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암을 미워하고 저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내안에 들어온 손님으로 맞이하였다. 나의 삶이 암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한 면도 있기에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였다.’ 이런 마음가짐이 암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통을 주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암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암과 투쟁하고 싸우면 싸울수록 더 힘든 상황에 이르는 것도 보게 됩니다.

적과의 동침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걱정도 되고, 힘들게 만들어 놓은 공동체가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넘어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버림받은 이들, 잘못한 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관대함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성가432 주여 날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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